뉴욕과의 재회 넷째 날
아침부터 또! 비가 쏟아지는걸 보고, ‘아! 오늘은 조금 게을러져보자.’ 결심했다. 침대에 곧게 누워서 요즈음 건강음식으로 유행이라는 콤부차 음료도 마시고, 유튜브도 보며 나름의 여유를 만끽하다보니 어느새 12시. 이제 밖으로 나가야지! 다행히도 밖에 나갈 때쯤 되니 비도 그치고 날씨가 점점 좋아졌다. 오늘은 Union Square 한번 가보지 뭐.
공사하는 곳이 많아져 어딘가 모르게 못생겨진 Union Square였지만, 길에서 체스하는 사람들, 보드 타는 사람들은 여전히 인상적이었다. Union Square를 지나 다운타운쪽으로 향하다보니, 평소 좋아했던 중고서점이 나왔다. 오, 생각해보니 어렸을적 나는 여행을 가면 그 지역에 있는 중고서점에서 사진책을 사는게 나름의 취미였다. 나이가 들어 감정이 메말라졌는지 이 귀여운 취미가 조금 흐릿해졌지만.
회사 후배도 왠지 나의 이런 감성을 좋아할 것 같아, 몇 시간의 고민 끝에 그녀를 위한 책 한권과 내 취미용 책 몇 권을 골랐다. 고르는 시간도 너무너무 행복했고, 어찌보면 흔한 화장품이나 악세서리보다 이런 선물이 더 뜻깊지 않을까 나름의 의미부여를 했다.ㅋㅋ
아, 그런데 아뿔싸! 책 몇권의 무게는 정말 상당했다. 백팩도 아니고 에코백 하나 덜렁 들고 나온 나. 게다가 브런치를 쓰겠다고 랩탑까지 있으니 길을 걸으면 걸을수록 어깨가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애초에 계획했던 멋진 카페는 바로 포기하고 NYU 근처 스타벅스로 쏙 들어갔다.
아이스 커피를 한잔 시키고, 한국에서는 못하는 ‘room for milk’ 요청. 복작복작 사람 많은 스타벅스에서 브런치도 쓰고 서점에서 산 사진책도 보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걷는 시간이 많아서인지 뉴욕에서는 시간이 참 빨리도 간다.
이번 여행의 목표 중 하나였던 지갑을 구매하려, Greenwich Village에 갔는데. 오잉? 마크제이콥스 1호점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알수없는 옷브랜드가 들어서 있었다. ‘Greenwich Village의 랜드마크는 마크제이콥스 1호점인데! 내가 몇 시간을 걷고 걸어 여기를 찾아왔는데! ㅠㅠ’ 어마어마한 허무감과 함께, 왠지 매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매장을 소호로 옮긴것 같은 근거 없는 추측으로 씁쓸한 감정이 몰려왔다. 정말 엄청난 오지랖이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케익은 하나 사가자. 한국에도 이미 들어온지 오래된 메그놀리아에서 레드벨벳 치즈케익을 하나 테이크아웃했다.
제가 또 레드벨벳 케익 참 좋아하는데요.
그리니치 빌리지를 떠나려는 차 급 허기가 져서 근처 Five Guys에 들러, little fries와 little hamburger 주문! 나는 분명 리틀을 시켰는데 양이 상당했다. 맛은 정말 너무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음식남기기를 시전하게 되니, 뉴욕 레스토랑에서 서빙되는 음식의 25%는 무조건 버려진다는 통계가 문뜩 떠올랐다.
무거운 짐에, 오래 걸어다닌 시간에. 모든게 날 피곤하게 만들었지만, 오늘의 목표인 ‘그 곳’엔 꼭 가봐야지 결심했다. 바로 나와 미영언니가 함께 살던 동네. United Nations 근처라서 미드타운치고는 나름 한적하고 운치있었던 곳. 바로 41st Street & 2nd Avenue다.
이 곳은 우리의 눈물과 웃음, 꿈과 인생이 스쳐지나가던 장소다. 아무리 힘든일이 있어도, 여기서 미영언니와 수다 1시간과 함께 시원한 공기를 마시면 그걸로 됐다. 그때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간호사 준비생이었던 미영언니는 대체 뉴욕에서의 삶을 어찌 그렇게 잘 견뎠나 존경스럽다. 철저하게 부모님의 재정적 도움을 받아서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었던 나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던 미영언니. 나와 12살 차이가 나는 미영언니는 본인이 한국에서 간호사로 일하며 모아둔 자금으로 미국 간호사의 꿈을 안고 뉴욕에 날아들었다. 이제는 어느덧 미영언니가 처음 뉴욕에 왔을 나이와 가까운 나이가 된 나를 돌이켜봐도, 내가 과연 그렇게 용기있는 결정을 할 수 있을까 싶다.
그냥 이것저것 생각하기가 피곤해서 뉴욕에서 불법인 길맥을 포기했던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려 동네에 있는 리쿼샵에 들렀다. 이것저것 종류가 많았지만, 10달러짜리 로제 한 병으로 하루를 마무리한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