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형 사무용 의자 브랜드, 사이즈오브
하루에 몇 시간이나 의자에 앉아서 업무를 하시나요? 적어도 5시간, 10시간씩은 의자에 앉아 계실거에요.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 정말 많은 분들이 200만 원을 호가하는 사무용 의자에 투자합니다. 네이버, 카카오, 야놀자, 하이브가 사무용 의자계의 샤넬이라고 불리는 '허먼밀러' 의자를 사무실에 도입해 큰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좌식 생활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지금. 모든 사람들의 신체 사이즈에 맞춘 다양한 파츠(부속품)를 개발하여 무려 2만 가지 옵션의 의자를 판매하는 맞춤형 사무 의자 스몰 브랜드, '사이즈오브'를 만나보았습니다. 사이즈오브는 창업 5년 차인 2022년 연 매출 100억 원을 바라보고 있다고 하는데요. 투자받은 이력이 전혀 없는데다가 언뜻 스케일업이 불가능할 것 같은 '맞춤형' 제품을 취급하는 사이즈오브가 이렇게 멋지고 단단한 행보를 만들어가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강남 한복판에 의자를 깔아놓고 제품 테스트를 하고, 고객의 불평이 들려오면 직접 고객의 집까지 찾아가서 그 원인을 주의깊게 듣는다는 사이즈오브. 왜 이렇게 고객의 목소리에 집착하는지를 들어봤어요.
"친구와는 동업하는게 아니지!"라는 말, 한 번쯤은 들어보지 않으셨나요? 사이즈오브는 학창시절 친구 3명이 초기 멤버로 모여 만든 작은 브랜드입니다. 세 명의 멤버는 어떻게 시너지를 내고 있는지, 친구가 함께 일하는 것에 불편함은 없는지 궁금했어요.
드라마 '미생'에서 "현장을 모르는 사람은 상사로 치지 않는다!"고 외치던 한석율 캐릭터를 기억하시나요? 실제로 제조, 물류, 시공, 매장 등의 현장 직군과 사무실 직군 간의 괴리로 성장통을 겪는 브랜드가 무척 많은데요. 제조와 물류를 중심에 두는 사이즈오브는 이를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 물어봤어요.
사실 저희 아버지는 관공서와 기업에 의자를 납품하는 공장을 운영하셨던 분인데요. IMF로 아버지께서 운영하시던 공장이 폐업 위기에 처하게 됐어요. 힘들어하시는 아버지를 도와 공장을 폐업 처리하기 위해, 기존에 하던 일을 그만두고 공장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폐업 처리를 돕다보니 오히려 리브랜딩을 해서 이 비즈니스를 제대로 탈바꿈해보고 싶다는 묘한 도전 의식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여러가지 위험 부담과 비용을 감수하고 아버지 공장을 인수하는 결정을 내리게 됐습니다. 일반적으로는 가업을 잇는다고 하면, '승계'를 많이 떠올리시만 제 경우는 '인수'인 것이죠.
공장을 인수하고 처음으로 만든 제품은 ‘근본 체어'라는 기본에 충실한 의자였어요. 그런데, 하나의 의자를 대량으로 납품하는 B2B 거래를 진행 하다보니, 같은 제품에 대한 다양한 고객 반응을 한꺼번에 받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아무리 좋은 사양으로 제품을 만들어도 불편해하시는 고객분들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이었어요. 고객 분들이 주시는 피드백을 잊지 않고 사례를 모아 끈질기게 분석하다보니 고객이 궁극적으로 불편을 느끼는 지점은 ‘기능’이나 ‘소재’보다는 오히려 ‘사이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점차 ‘사이즈'에 방점을 두고 브랜드의 돌파구를 모색했어요. 처음에는 제 키(173cm)에 맞는 173의자를 만들었고요. 그 이후로는 키가 169cm인 사람부터 175cm인 사람까지 쓸 수 있는 6975의자를 출시했습니다. 이렇게 개념을 확장하다보니 현재는 모든 사람의 신체 사이즈에 맞춘 맞춤형 의자, ‘사이즈오브’가 탄생했습니다.
서울팀(6명)과 마석팀(12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마석팀'은 초기에 인수한 공장 인원이 거의 그대로 일하는 제품팀과 물류팀으로 구성되어 제가 직접 매니징하고 있고요. 서울팀은 마케팅팀, 전략팀, 운영팀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COO와 CMO가 진두지휘합니다.
초기부터 함께하고 있는 COO와 CMO는 모두 학창 시절 친구들입니다. COO인 창훈은 인테리어 업계에서 일하던 친구였어요. 디자인 능력이 뛰어난 창훈에게 제가 그림판으로 만든 조악한 버전의 상세 페이지를 보여주며 도움을 요청했고, 그렇게 합을 맞추다보니 COO로 합류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CMO인 태규는 장난감 회사의 제품 기획팀에서 촬영을 포함한 다양한 업무를 하고 있던 친구였는데, 퇴근 후에 저희 제품 사진을 찍어주며 도와주다가 합류하게 됐죠.
저희 셋은 강점과 성향, 역량이 모두 다르지만, 세 명 모두 ‘성공'에 대한 간절함이 있어요. CEO인 저도, COO인 창훈도 아이가 있기 때문에 절실하게 성공해야 하는 상황이 같았고요. 목표가 너무나 명확하기 때문에 나머지 부분은 충분히 맞춰갈 수 있는, 그리고 맞춰야만 하는 부분이죠. 그래서인지 COO인 창훈은 제가 의자가 아닌, 다른 아이템을 가져왔어도 함께 사업을 했을 것이라고 말하더라고요.
마석팀 인원의 평균 연령대는 40대입니다. 반면 서울 사무실은 상대적으로 연령이 낮은 편이죠. 당연히 현장과 사무실 간에는 문화적 격차가 존재하는데요. 저희 브랜드는 무엇보다도 '제품'이 본질이기 때문에, 제가 직접 비둘기처럼 서울과 마석을 왔다갔다하며 오해가 없도록 비전과 방향성을 전달합니다.
생각날 때마다 우리가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지를 끊임없이 반.복.해.서. 말하는 것이죠. 업무 방식과 문화 자체가 다른 두 조직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대표인 제가 나서서 반복적으로, 부지런하게 설득하고 전달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어요.
폐업 위기에 처해있던 공장을 인수해 리브랜딩과 피봇팅을 반복하고 이를 통해 얻은 고객 피드백 데이터를 기반으로 탄생한 사이즈오브. 이동진 대표의 집념과 생존력이 정말 놀라운데요. 마석팀과 서울팀의 괴리를 줄이는 전략에도 이동진 대표의 집념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어떠한 대단한 업무 툴과 시스템보다 강력한 것은 바로 대표의 집념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입니다.
사이즈오브는 객단가가 60만 원 정도로 높은 편입니다. 그래서 의자에 진심인 고객분들을 찾아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는데요.
의자에 관심이 많은 사용자들이 모여있는 커뮤니티인 의사모(의자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모임)라던지 디젤매니아 등의 카페에 "의자에 대해 무료 상담해드리겠다."고 포스팅하고 연락 오시는 분들과 직접 만나서 상담해드렸어요.
고객을 직접 찾아가서 저희가 만든 의자에 앉게 하고 고객의 몸에 딱 맞을 때까지 조정해드렸습니다. 당시 20만 원 대에 의자를 구매해주신 고객 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사이즈오브의 가능성을 확신했고요. 그 때 모인 초기 고객분들이 저희 브랜드에 큰 힘이 되었죠.
마케팅 비용은 매출의 10% 정도로 쓰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마케팅 목표는 브랜딩 퀄리티를 높이는데 집중되어 있었고, 앞으로는 마케팅에 더욱 적극적으로 투자하려고 합니다. 저희의 주요 고객은 오래 앉아서 컴퓨터를 하거나 통증이 있는 분들인데, 이 분들을 적극 타깃팅하는 마케팅 전략을 검토 중에 있습니다.
'겨울서점'님과의 협업은 특별히 기억에 남아요. 저희가 먼저 '겨울서점'님을 유튜브로 찾아 연락을 드렸고요. '겨울서점'님께서 쇼룸에 직접 방문하셔서 의자를 경험하시고는 너무나 좋아하셨어요. 원래는 짧게 노출되는 광고를 진행하려고 했는데, 겨울서점님께서 오히려 영상 한 편을 통으로 제안주셔서 20분 분량의 브랜디드 광고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영상 자체도 20분 내내 상세하고 진정성 있게 나와서, 60,000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고요. 오래도록 정보성 콘텐츠로 유지되는 유튜브 콘텐츠의 특성 덕에 아직까지도 고객 분들 중 '겨울서점'님의 영상을 보고 알게됐다는 분들이 종종 계세요. 이렇게 저희 고객 층과 구독자 층이 잘 맞고, 제품에 대해 이해도가 높은 인플루언서와 협업한다면 인플루언서 마케팅에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저희는 인플루언서에게 콘텐츠 방향에 대한 지시를 거의 안하는 편입니다. 제품을 한 달 이상 써보고 좋으면 리뷰를 솔직하게 남겨달라고 말씀드려요. 그렇다고 해서, 제품만 덜렁 보내드리고 "알아서 해주세요!"라고 하는 건 아니고요. 꾸준히 연락하고 만나며, 인플루언서와 라포를 쌓고 우리의 미션과 가치를 사람 대 사람으로 전달하려고 해요. 저희 회사 문화와도 정말 유사한 방식이죠!
고객이 전무할 때부터 묵묵히 자기 확신을 가지고 고객을 찾아나서고, 인플루언서와도 진정성 있는 소통을 하며 임팩트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사이즈오브의 마케팅 방식 어떠세요? 모두가 주목할만한 천재적인 마케팅보다는 집요하게 시간과 정성을 쏟는 전략이 작은 브랜드에게는 훨씬 더 강력한 경우가 많답니다.
브랜드 초기부터 의자에 앉아보고 구매하고 싶어하는 고객 분들이 더러 있었어요. 심지어 마석 공장에 오시기까지 했죠. 그래서 광진구 사무실 한 켠에 조그맣게 공간을 내어 운영을 해봤는데 이렇게 방문하시는 고객분들의 70%가 결제를 하시더라고요. 고객 만족도가 무척 높다고 판단하고 쇼룸을 확장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저희는 하루에 고객 5-10명 정도만 수용하는 '유료 예약제'로 쇼룸을 운영하고 있고요. 전담 매니저가 즉석에서 고객의 사이즈에 맞춰 1차적으로 의자를 조립합니다. 고객은 본인의 사이즈에 꼭 맞는 의자에 앉아 데스크 세팅법을 배우고요. 기존에 쓰던 의자에 불편함이나 통증 문제가 있었다면 이에 대해 상담도 진행합니다. 전체 케어 세션을 진행하는데 1시간 정도 시간을 소요하죠.
초기에는 사무용 의자에 대한 지불 용의 가격(Willingness To Pay)을 확인하고 싶어서 선릉역 부근 테헤란로 한복판에 의자를 깔아놓고 고객에게 체험을 유도하고 의자에 얼마까지 지불할 의향이 있는지를 물었어요. 5만원 이상이 나오지 않더라고요. 이렇게 잠재 고객을 직접 만나 날 것의 의견을 들으면 고객에 대한 감을 익히는 귀중한 시간이 돼요.
그래서 사이즈오브를 론칭했던 초기에는 구매하시는 거의 모든 고객 분들께 직접 찾아갔습니다. 지금도 클레임 건들은 종종 제가 직접 방문해서 제품을 살펴보고 해결해드립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문제의 원인이 즉각 파악되지 않는 경우도 생기거든요. 이런 상황이 제가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상황인데, 저는 끝까지 문제의 원인을 파악해서 고객에게도 내용을 공유합니다. 문제를 한 번 해결하게 되면 제품이 많이 개선될 수 밖에 없거든요.
고객이 무언가를 오해해서 클레임을 걸었더라도, 브랜드가 명확하게 대답을 하지않고 회피하면 화가 나거든요. 고객과는 사실 여부를 토론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적으로는 감정을 헤아리는 말 한 마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는 제품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점에 대해 명확히 사과를 드려요.
그리고, 저희는 어떠한 이유에서는 환불을 원하시는 고객분들께 정책적으로 63일 안에 반품을 해드리고 있고요. 계속 쓰고 싶은데 불편함이 해결되지 않는 분들을 위해서는 제품을 수거해 사이즈를 재조정해 보내드리는 '재조정 서비스'를 해드립니다. 재조정 서비스는 63일이 지나도 언제든 가능하기 때문에, 의자를 쓰면서 키가 크게 된 청소년 고객들이 자주 이용합니다.
네, 맞아요. 사이즈오브의 성장 비결에는 관통하는 하나의 맥락이 존재합니다. 팀 빌딩, 제품, 마케팅, 고객의 모든 맥락에서 '집요함'이 눈에 띄는 브랜드죠. 워렌 버핏의 성공 비결이 타고난 천재성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들여서 세부 내용까지 꼼꼼하게 확인하는, 남들은 하지 않는 선택을 한 덕이라는 문장이 절로 떠오르네요.
저희는 별도의 매출 전략이 있지 않아요. 그저 생존을 위해 노력하죠. 더 나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수 십 개의 보수적인 부품 제조 업체를 모두 설득했고요. 직원들과 고객들도 계속해서 설득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점차 고객분들이 저희를 알아봐주시더라고요. 그리고,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사무용 의자가 주목받는 트렌드가 만들어졌고요. 운이 좋았습니다.
저희의 목표는 유니콘이 되는 거예요! (웃음) 국내에서 손꼽히는 가구 브랜드인 '퍼시스'는 매출이 3,200억 원이면, 기업 가치도 거의 비슷하게 3,200억 원이거든요. 저희는 가구 제조 브랜드의 가치가 매출을 훨씬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요. 그래서 'Data of Size'라는 사이즈를 기반으로 한 알고리즘도 구축하고, 실리콘밸리와 뉴욕, 일본 등의 글로벌 마켓에도 진출할 생각입니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찾아온다는 말이 떠오르시나요? 생각이 너무 많아져 어떤 실행도 망설이게 되는 작은 브랜드에게 사이즈오브 사례가 힘이 되길 바래요.
우선, 모든 분들의 건투를 빕니다! 저희도 성장하는 과정이니, 어떤 조언을 드리면 좋을지 고민이 되지만 ‘시작'에 대한 말씀은 하나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만약 '시작' 그 자체가 주저된다면, 우선 같이 일할 파트너를 구해 보실 것을 추천드려요. 결과가 좋든, 나쁘든 어쨌든 무언가를 시작할 수는 있을테니까요. 뭐든 시작을 하면 어떻게든 결과는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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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그래퍼: 신윤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