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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지 Mar 13. 2023

어머니 전상서

해바라기 밭에서

“혹시 촬영하고 싶은 장소 있으시면 알려주세요!”     


가족이 함께 제주도에 놀러 가기로 계획한 후 이참에 가족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모습에 소중한 순간을 남기고 싶었다.      

7월의 제주는 어디가 유명한가. 여행 책자를 찾아보니 제일 먼저 추천하는 곳은 해바라기 꽃밭이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아도 마찬가지였다. 7~9월은 해바라기 철이니 반드시 가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순간 심장 깊은 곳에서 울컹. 하는 몽우리가 올라왔다. 그래도 일단 사진작가님께 해바라기가 예쁜 곳으로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해바라기는 엄마를 떠올리게 하는 꽃이었다.

우리가 한 번도 손을 잡고 해바라기를 본 적은 없지만 이상하게도 해바라기 밭은 꼭 우리 엄마 같았다. 어린 시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벤허> 등 엄마가 좋아하는 명화 이야기를 들을 때면 꼭 소피아로렌 주연의 <해바라기(Sunflower)>라는 영화가 등장했다. 엄마는 그 영화를 보며 너무 슬퍼 펑펑 울었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려주었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도 같이 가슴이 아프곤 했다. 그래서일까, 내게 해바라기는 화사하고 아름답지만 남모를 슬픔을 간직한 꽃처럼 느껴졌다.

     

엄마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뒤 4년 후 결혼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 늦은 밤 꿈을 꾸었다.

나는 둑방길 같은 곳의 어느 언덕을 타고 올라가고 있었는데, 그 경사가 어찌나 심하던지 풀잎들을 손으로 쥐고 언덕 벽에 찰싹 붙어 있어야 했다. 저 위로 더 올라가야 하는데, 햇살은 너무나 눈부셨고 따스하지만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고개를 90도로 들 저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곳에 엄마가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저 위로 올라가야만 해. 언덕만 넘어가면 엄마를 볼 수 있어.’

그때 엄마의 목소리가 마음으로 들려왔다.    

‘윤지야, 엄마는 아름다운 이곳에서 정말 잘 지내고 있단다. 걱정하지 말고 행복하거라.’

     

직접 눈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엄마가 해바라기 꽃잎을 닮은 황금 치마를 입고 바람에 너풀거리며 예쁘게 미소 짓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행복해서인지 슬퍼서인지 아련해서인지 이유 모를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눈을 겨우 뜨고 언덕 위를 바라보며 한참을 펑펑 울었다.

      

불현듯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꿈속에서와 같이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잠든 남편 곁에서 그렇게 몇 분을 더 꺽꺽 흐느꼈다. 그래도 엄마가 행복하게 지내시는 것 같아 점차 마음이 평온해졌다.

      

“아우! 나 사진 안 찍을래. 당신이랑 드니 둘이서 찍어.”     


햇살이 따사로운 7월의 제주. 스냅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남편은 예상대로 당일 아침 갑자기 사진을 찍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서 이날 나는 내 평생 온 소원을 동원하여 두 남자를 어르고 달래면서 해바라기 밭으로 데리고 갔다. 다행히 사진작가 님은 포근하고 따스하신 분이었다.

      

“엄마, 괜찮아요. 이런 분들 많아요. 중간에 가시는 분들도 있는걸요. 아빠! 제발 부탁해요. 내가 괴롭히지 않을게요. 몸뚱이만 잠시만 빌려주셔요. 요기서 조기까지 딱 한 번만 걸어줄래요?”     


다행히 남편은 말은 안 한다면서도 어그적 어그적 촬영에 협조를 해주었고 작가님과 나는 한 팀이 되어 온 마음으로 우쭈쭈와 사랑을 모아 후다당 촬영진행했다. 맙게도 아이가 연신 신이 나서 깔깔 웃으며 해바라기 밭을 뛰어다녀준 덕분에 함께 웃으며 예쁜 사진들을 남길 수 있었다. 활짝 핀 해바라기는 아이와 남편 얼굴이었다. 황금빛 너울진 풍경은 감사히 펼쳐주신 축복이었다.

       

한편, 나는 엄마를 떠올리면 괜스레 뭉클해질까 봐 아이에게는 외할머니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언제나 먼저 '외할머니'란 단어를 건네는 사람은 우리 아이다.      


“엄마, 혹시 하늘에도 전화를  수 있어?”

“하늘에? 음.. 하늘에 전화는  수는 없고 간절한 마음으로 생각하면 내용은 전달할 수 있을 거야.”

“아.. 그렇구나.”

“이든이 누구한테 전화하려고?”

“응. 외할머니”

“아... 무슨 이야기하려고? 엄마가 대신 전해줄까?”

“아니, 괜찮아. 내가 밤에 기도할 때 말할게.”

그러더니 잠들기 전 기도를 하는 마지막에 외할머니 단어를 넣어주는 아이다.

“하나님 오늘도 감사합니다. 외할머니 아멘”

    

그 외에도 아이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마다 외할머니를 챙겨주고 있다. 어제는 온 가족 그림을 끼적끼적 그린 가운데 한 사람이 더 있어 물어보니 외할머니란다. 크리스마스 카드 메시지를 나눌 때 하늘의 외할머니에게 보낸다며 보이지 않는 할머니를 기억해준 드니였다.

       

이제 나에게 해바라기는 슬프지 않다.  

바라보면 예쁘고 때로는 황홀하게 다가온다.       


엄마가 하늘로 떠난 지 꼭 10년이 되는 오늘.

그녀가 말해주는 것 같다.   

   

네가 마주하는 그 무언가에 과거의 어떤 기억이나 감정을 끌어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이다.

현재의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다가오는 순간을 행복하게 즐기라고..

기쁨 또한 당시의 즐거움으로 넘길 뿐  

곧바로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 오늘을 순수하게  맞이하라고 말이다.


이는 우리가 마지막으로 나누었던

'그 어느 순간이 다가와도 씩씩하고 예쁘게 엄마딸답게 멋지게 살아가기'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마음가짐이기도 다.      


그녀는 세상을 떠난 것이 아니었다.

엄마가 남겨준 사랑은 시간이 흐를수록 마르지 않는 향기로 다가오고 있다.

엄마가 황금빛 꽃밭에서 오늘 하루 유난히 더 행복하고 기쁜 날을 보내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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