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이의 하얀 운동화가 흙더미에 색이 변해, 세탁소로 향했다. 이날 나는 몇 달 전 호기롭게 XL로 산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뱃속의 아이가 자라서인지 유난히 몸에 밀착되어 그날따라 더욱 배가 두드러져 보였다. 상가로 걸어가는 동안 불룩 나온 배를 보며 흠칫 놀라는 학생도 있었고, 말은 하지 않아도 ‘임산부시군요’ 하는 눈빛을 보내는 분들도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쩌겠나 싶어 씩씩하게 목적지를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세탁소.
“안녕하세요. 운동화 맡기려고요.”
말씀드리고는 숨을 후후 내쉬고 있는데 어디선가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힘들다... 힘들어.”
오잉? 무슨 소리지? 혹시 나에게 하는 말씀이신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다 세탁소 안 수선집의 할머님과 눈이 마주쳤다. 할머니께서는 지긋이 웃으시더니 고개를 끄덕끄덕하며한 번 더 말씀하셨다.
“아이고... 힘들다.. 힘들어.”
그 말씀은 마치, ‘많이 힘들지? 그래 힘들겠다.. 힘내요’ 하고 다정히 응원해 주는 말씀처럼 들려왔다.
“아! 네에. 지금 막달이어서요. 괜찮아요.”
그제야 내게 해주신 이야기인 줄을 알고 답변을 드리자 할머니께서는 두 눈을 감으며 찡긋 하고 웃으셨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계산을 하고 세탁소 아주머니와 수선집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나오는데 마음이 이상했다. 그동안 여러 분들이 임신 주수를 물어보시고 힘들겠네. 힘내요. 할 때는 활짝 웃으면서 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하고 발걸음을 이어가곤 했는데, 오늘 할머님의 말씀에는 마음이 요동쳐 눈물샘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어떤 점이 달랐던 것일까?
할머님은 그저, 내 마음을 알아주셨다.
워낙 힘든 류의 생각은 잘하지 않으려 하고 혹시나 그런 마음이 들더라도 대개 금방 없던 셈 치는 내가. 나도 잘 바라보지 않던 깊은 곳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자 뭉클했던 것이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어떤 멋진 명언이나 화려한 미사여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다.
살면서 진정 가슴을 움직인 말들은 그저 ‘마음’을 알아주는 작은 공감의 한 마디였기 때문이다.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마법사 할머니를 뵙고 온 기분이다. 묘약을 담으셨는지 '힘들지?' 하는 세글자를 떠올리면 힘이 나고 정말로 괜찮아지는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