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의 새벽 방송을 처음 맡았을 때
YTN 건물은 서울역 3번 출구에 있었다.
방송 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반드시 첫차를 타야 했다.
첫차 시간은 새벽 5시 즈음이었다.
첫차를 타고 정해진 시간 안에 도착하려면 시간이 빠듯했는데
절대로 늦지 않기 위해서는
3번 출구가 가까운 1호선 맨 앞칸에 탑승해야 했다.
처음으로 첫 차를 타러 가던 날
어둑어둑한 길을 나서면서,
나는 새벽을 여는 고독한 잔다르크가 되었다.
청취자들의 하루를 힘차게 열기 위해
나 홀로 텅 빈 열차에 앉아
투철한 사명감을 안고 출근하는 고독한 여전사랄까.
사뭇 결연하면서도
실은 고독한 마음을 안고 지하철로 향했다.
세찬 바람과 함께 열차가 도착하고
문이 열렸는데,
앗!
자리가 없었다.
설마......
정말 없었다.
'아니, 새벽 첫차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단 말이야?'
서서 가다가 겨우 자리를 발견하고는 얼른 앉았다.
열차가 서울역에 도착한다는 안내 음성이 나오자
나는 누구보다 빠르게 뛰어갈 각오로
가방을 앞으로 껴안고 문 앞에 섰다.
그런데 그럴 필요도 없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1호선 첫차 맨 앞 칸에 탄 사람들은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다 같이 잽싸게 달리기 시작했다.
무늬만 에스컬레이터지 다들 뛰어올라가느라 바빴다.
'모두 나처럼 5시 반 출근인가 봐!'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흐르고
1호선 첫차 맨 앞칸 사람들 얼굴이 눈에 익기 시작했다.
맨날 여기 앉는 분은 여기 앉았고
저기 앉는 분은 다음날에도 저기 앉아있었다.
며칠이 더 지나니
가면서 혼자 별 생각을 다했다.
'어! 저 아주머니 파마하셨네?"
'오! 오늘 처음 보는 옷 입으셨네?'
걱정도 사서 했다.
'엥? 분홍색 옷 아주머니 맨날 요 앞에 앉으시더니 오늘 안 타셨네? 무슨 일 있나?'
'어머머 열차 놓치신 거 아니야? 지각하면 어떡해. 오늘은 택시 타셨으려나?'
그분들도 내 얼굴을 아는지
한분은 내가 서있으면 다른 쪽에 자리가 나자마자
눈짓으로 힌트를 주기도 했다.
턱을 들어 톡톡. 알려주기도 하고.
그러면 멍 때리고 있다가 감사합니다! 목례하고
후다닥 가서 앉기도 했다.
그렇게 1년 여가 흐르고 방송 시간대가 바뀌었다.
새벽 방송 마지막 날 진지하게 고민했다.
'오늘까지만 첫차 타는 거라고 인사드릴까?'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혼자 오버하는 것 같아서
결국 그냥 내렸다.
하루 종일 못내 서운했다.
1호선 첫 차 맨 앞칸 동지들을 떠올리면,
축 쳐져 있다가도 깊은 곳 어디에선가부터 힘이 솟아난다.
열차 문이 열리자마자 100m 달리기하며
정신없이 뛰어 올라가던 힘찬 발소리를 떠올리면,
정말이지 못할 게 없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