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 내 별명은 신사임당이었다
헤어스타일이 딱 교과서 속
율곡 이이 어머니 머리였기 때문이다.
멀티플레이를 못 하는 나는
한 가지를 하면 그것만 할 줄 알았다.
그래서인지 공부할 때
잔머리 한 가락만 삐져나와도 집중을 잘 못했다.
짝꿍은 한 번만 앞머리를 내보자고 했다.
그때마다 나는 웃기만 했다.
대신, 시계 모양의 하얀색 실삔 종이를 들고 다니며
총알 장전하듯 하나 씩 채우곤 했다.
중학생 때는 영락없는 몽실이었다.
동그란 얼굴이 더 커 보이는 삼각김밥 머리를 하고 다녔다.
외모에 관심이 갔지만 너무 신경 쓰일 것 같아서
일부러 머리 양쪽을 귀 뒤로 넘기고 다녔다.
그만큼 나는 사소한 것에 예민한 편이다.
지금도 귀걸이는 진주만 하고
옷도 거의 입던 것만 입는다.
그래야 내가 지금 하는 것에 집중이 잘 된다.
쓸데없이 민감한 내가 직장 생활할 때
된통 혼나며 자주 듣던 말이 있다.
"지금 그런 거 신경 쓸 시간이 어디 있냐?"
결혼하면 끝날 줄 알았는데
자주 듣는 소리가 꼭 데자뷰 같다.
"그런 거 신경 왜 써?"
고3 야자 시간 때
우리를 감독하던 담임 선생님이 돌아다니시다
갑자기 내 옆에 멈추어서셨다.
고요한 정적을 깨고 하신 말씀.
"면접 볼 때 윤지처럼 머리하고 가면 됩니다."
친구들은 아마도 진저리 쳤을 것이다.
당시 나는 주머니에 참빗 꼬리를 잘라 넣고 다니며
신사임당 선생님이 아침에 비장하신 각오로 머리 빗은 듯.
하도 빗질을 많이 해 참기름이 좔좔 흐르는
조선시대 머리를 하고 있었다.
귀 뒷부분 양쪽 실삔은
잔머리가 나오든 안 나오든 기본 옵션이었다.
신사임당보다는 청학동 소년에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인생을 다시 가슴 뛰게 살아보고 싶었다.
몇 년 만에 예전에 다니던 샵으로 갔다.
"선생님, 본질만 남겨주세요. 아시죠?"
한 번 미소 지으시고는
한 시간이 넘도록 정성스레 잘라주셨다.
"윤지! 한참 일 할 때만큼 잘랐어. 예뻐!"
거울을 보니
다시 진짜. 숏컷이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저는 삼손이 아니라 손삼인가봐요!
머리를 자를수록 힘이 나요."
이런저런 근심, 걱정, 두려움, 체면 다 날려버리고
신사임당 시절로 돌아가 신경 끄고 살아보련다.
다시, 살아있는 것 같다.
신사임당 선생님이 21세기에 오신다면
숏컷을 권해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