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오신 골프 선생님

by 이윤지


골프를 배운 지 한 달 조금 넘었다.
아나운싱을 가르칠 때는 힘을 빼야 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데
골프 칠 때는 이 세상 힘은 혼자 다 주고 있다.

잘 맞다가도 안 맞고
안 맞다가도 계속 안 맞는다.

얼마 전 골프 선생님이 새로 오셨다.
보이는 모든 회원들에게 큰 소리로 인사하시는 열정 선생님이다.

이 분께 배우면서 나는 한때 핑계 대는 재미에 빠졌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다 내 말이 맞다고 해주시기 때문이다.

"잠을 못 잤어요."
"네 회원님! 못 자면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피곤하면 채 드는 것도 힘들어요."

"물려받은 채라 그런가 봐요."
"아! 그러면 그럴 수 있죠. 골프채도 예민하거든요."

테스트 겸 내 채로 쳐보시니,
대충 톡 치신 것 같은데 족히 두세 배는 거리가 더 나간다.
채 탓이 아닌 것이다.

골프를 얼마나 치셨나고 물었다.
30년이 넘었다고 했다.
30일이 까불면 안 되겠다 싶었다.

이분께 배우다 보면
내가 아나운싱을 가르쳤을 때의 모습이 떠오른다.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짓고
이게 다 너를 위한 것이라는 마음 세팅을 한 뒤,
부담스러운 눈빛과 지나치게 넘치는 열정
두 가지 비호감 콤보를 장착한 뒤
쉬지 않고 교정할 점을 알려주었다.

물론 중간중간 칭찬도 건넸지만
앞선 말들이 너무 강하여 칭찬은 귀에도 안 들어왔을 것 같다.

만약 골프 선생님이 내가 한 번 휘두를 때마다
AI처럼 나를 관찰하며 하나부터 열까지 지적하셨다면?
나는 정말로 수업에 가기 싫었을 것이다.

어릴 적 처음으로 깊은 물에서 수영을 배우던 날
선생님은 물에 대한 겁을 없애주겠다며
내가 잡고 있던 판대기를 빼앗았다.
오랫동안 물속에서 허우적대며 정말 무서웠다.
한 번에 강하게 교정을 해주겠다는 의지셨을텐데,
결과적으로 나는 그 뒤로 수업에 나가지 않았다.
지금도 물에서 발이 안 닿으면 겁부터 난다.

골프를 배워보니 알겠다.
나는 칭찬이 반복되면 학생이 거만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칭찬을 들어보니 그렇지도 않다.
지금 얼마나 갈길이 먼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오히려 주눅이 들어있는 와중에 칭찬을 들으면
잘 못 하지만 한 번 더 해볼까 용기를 내게 된다.
잘하지 않는데도 칭찬을 해주시니 머쓱함에 더 열심히 하게 된다.
피곤함이 몰려와도 칭찬을 들으면 말 그대로 고래처럼 힘이 난다.


가르치는 목적이 '능력 향상'이라면
당장 하나 더 알려주는 것보다,
스스로 너무 재미있어서 열이 궁금해지고
스스로 더 잘하고 싶어서 시키지 않아도 연습하도록 만들어주는 게
진짜 좋은 선생님일 것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친구들이 힘들었을까.
얄상한 골프채를 야구 방망이처럼 휘둘러대며
회개의 아멘을 되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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