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자동차를 좋아한다.
아이유님 말마따나 정말 진짜 몹시 엄청 좋아한다.
한 번은 새벽 중에
"포쉐~~~~ 뽀드~~~~"
소리가 들려 눈을 떠보니
잠꼬대로 차 이름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가일 적 사주었던 기본 탈 것 책에 이어
타요타요 자동차, 라이카미 최고의 자동차, 동글동글 자동차, 똑똑박사의 카스토리 등
내가 볼 때는 그 내용이 그 내용 같은데
하루에 한 번씩은 꼭 정독을 한다.
세이펜까지 켜주면 소중한 커피 타임 보장이다.
아이는 아직도 물의 발음이 어려워 '우이'라고 하지만
맥라렌 P1은 '맹나넨 피워언' 하고 또박또박 발음한다.
어린이집에 가기 위해 서둘러 신발을 신게 하는 방법 중 하나는
"자동차 보러 가자!"를 외치는 것이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는
"포쎄~~~~!" 하면서 달려와 신발을 신는다.
아이들 책 속엔 다양한 종류의 차가 있지만
아무래도 슈퍼카 모음집이 내가 보아도 참 재미있다.
색상도 알록달록할뿐더러
디자인이 딱 보아도 멋지기 때문이다.
동그라미 네 개가 아우디인 줄도 몰랐던 나는
덕분에 링컨 제퍼, MG MGB, 사브 96 및 포르쉐와 람보르기니는 대략 종류 별로 때려 맞출 정도가 되었다.
사실 어린이집 가는 길에 슈퍼카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아이는 희망을 품고 창 밖을 내다본다.
하루는 운 좋게도 집 앞 큰길서부터 슈퍼카를 만났다.
땅바닥에 척 하고 붙을 듯한 람보르기니가
내 옆에 나란히 서서 신호를 기다렸다.
그날 나는 애보다 더 흥분했다.
"바바 바바!!! 빠뿌이다!!! 책에서 우리 봤지~~?
람보르기니!!! 이거자너~!!!"
엄마의 성화에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아이는
검은색 람보르기니를 보자마자 격앙된 목소리로 빠뿌이를 외쳤다.
기왕이면 생생하게 보여주고 싶어 창문을 활짝 열까 하다가
시비 거는 줄 알까 싶어 꾹 참았다.
초록불이 되자 검은색 람보르기니는
우렁찬 배기음을 뽐내며 빠르게 출발했다.
당분간은 길엔 신호등이 많아서 어차피 먼저 출발해도
금방 같은 자리에서 만나고 또 만나고 하더만
출발할 때만큼은 F1을 방불케 했다.
세이펜으로 아이와 주구장창 듣던 그 배기음이었다.
"빠뿌이다 빠뿌이!!!!!!"
아이는 신나게 외쳤다.
그러다가 람보르기니가 저 멀리 가버리면 입을 다물고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 심정이 어찌나 절절하게 다가오던지 내가 더 안타까웠다.
앞선 람보르기니는 사거리에서 다른 방향으로 사라졌고
나는 이 생생한 분위기가 사라지는 게 아쉬워
어디 슈퍼카가 더 없나 두리번거리며 찾아보았다.
그러다가 시원하게 뚫리기 시작하는 지점에서
멀리 슈퍼카 한 대를 보았다.
딱 보아도 작고 날쌘 차였다.
순간 어떻게라도 쫓아가서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저 날랜 슈퍼카에 조금이라도 다가가겠노라
차선을 요리조리 옮기면서 따라다니고 있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사고 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나는 안 그럴 줄 알았다.
아이가 좋아한다고 하면 다 해주는 그런 엄마 말고
짐짓 시크한 표정으로 'No'를 우아하게 건넬 줄 아는,
지적이고 세련되면서도 절제력이 배어 있는,
프랑스 엄마 책에서 말하는 그런 느낌.
내가 그려온 엄마의 모습이었는데.
이래서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고 하는 건가?
"너도 니 애 낳아봐라!"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