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시험을 함참 보러다니던 시절
지방으로 갈 때면 일찍부터 몹시 바빴다.
깜깜한 새벽부터 메이크업 샵에 가서 변장도 하고
커다란 정장 가방과 높은 구두를 담은 쇼핑백,
왕만한 거울부터 각종 미용 도구가 가득한
짐 가방을 바리바리 싸들고
서울역으로 달려가 열차를 타거나
고속터미널역에서 시외버스를 타곤 했다.
그날도 어두운 새벽에 길을 나서 택시를 타고
메이크업 헤어를 받으러 갔다.
거의 눈꼽만 뗀 채 나와주신 선생님들은
최선을 다해 사람으로 만들어주셨고
부랴부랴 또 택시를 타고 서울역으로 갔다.
KTX 표를 끊고 정해진 자리에 앉아 기다리니
나와 같은 시험장에 가는 것이 분명한,
정장가방을 든 응시생들이 여럿 보였다.
머리가 눌릴까봐 편히 기대지도 못하고
앞으로 꾸벅꾸벅 졸면서 갔는데,
슬쩍 보니 다들 그런 것 같았다.
이제 막 시험을 보기 시작한 때였다.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그래도 어떻게든 잘해보고픈 맘에
방송국 입구에서부터 인사를 열심히 하며 들어갔다.
지방 방송국의 경우 멀리서 시험을 보러 오는 경우가 많아
효율성을 위해 하루 동안 카메라테스트부터 최종면접까지 진행되기도 한다.
그날 나는 얼떨결에 카메라테스트를 통과했고
면접을 앞두고 대기실에 있었다.
잠시 후 들어가보니 무대 앞에 여러 명의 면접관들이 있었다.
미리 홈페이지와 방송을 통해 보았던 분들도 계셨다.
한 분의 질문이 뚜렷하게 기억이 난다.
"그 헤어스타일을 한 이유는 뭔가요?"
단발만 하다가 그날 처음 올백 올림머리를 해보았는데,
왜 물어보시는지 아리송했다.
미소 지으며 있는 그대로 답했다.
"엄마가 잘 어울린다고 해서요."
갑자기 면접관들이 크게 웃었다.
차가운 면접에서 티 타임 분위기가 되었다.
면접관들의 말투가 우쭈쭈로 변한 것 같았다.
한 분은 뉴스하기에 얼굴이 좀 어려보인다고 했고
또 다른 분은 앞으로도 열심히 힘내라는 류의 말을 건넸는데
숨어 있는 괄호 속 이야기가 들려오는 듯 했다.
'더 큰 다음에 오세요.'
결국 그날은 합격 못하고
다시 돌아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갔다.
표를 끊기 전 넓은 로비에 가만히 서서 생각해보니,
오늘 하루 수지 타산이 너무 안맞았다.
택시비, 헤어, 메이크업 비용에
이번에 시험 본다고 의상도 새로 구입한 참이었다.
문득 돌아갈 때는 KTX를 탈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표를 보니 곧 도착하는 새마을호 열차가 있었다.
서울 가는 새마을호 표를 끊고
빵이랑 우유 하나를 사서 내려갔다.
마침 해당 승강장을 사이에 두고
운명처럼 KTX와 새마을호가 마주하고 있었다.
쌩 ㅡ 하고 달리는 KTX를 뒤로 하고
칙.칙.폭.폭. 도착한 새마을호에 올랐다.
창가 자리에 앉아 밖을 내다보며
소보로빵과 우유를 먹었다.
새벽부터 아무것도 못먹어서 배가 고팠다.
종일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에게 잘 안됐다고 문자했다.
'그 사람들이 보는 눈이 없네.'
엄마 말이 맞다면 내가 만난 수많은 면접관들은 시력검사부터 받아야 했다.
차라리 넌 왜 또 떨어졌냐고 하지.
눈물이 났다.
소보로빵을 입에 잔뜩 물고
앞좌석에 들릴까 소리없이 울었다.
소보로는 달달한 맛에 먹는 건데,
짠 덩어리가 목구멍으로 흘러들어왔다.
햇살은 참 예쁜 날이었다.
풍경도 푸르르니 아름다웠다.
집으로 돌아와서 컴퓨터를 켰다.
다시 그 방송국의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오늘 본 면접관들의 소개글 밑에 이메일 주소가 있었다.
그 중 나에게 질문을 많이 해주었던 한 분께
용기내어 편지를 썼다.
[안녕하세요.
오늘 몇 번째에 시험을 봤던 이윤지 라고 합니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개선해야 할 점을 아주 짧게
한 말씀이라도 주시면 정말 감사드리겠습니다.]
답장에 대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다만, 애쓴 나의 오늘 하루가 너무 아까웠다.
도대체 왜 떨어졌는지
이유를 단 한가지만이라도 알고 싶었다.
기적적으로 다음날 답장이 왔다.
정말 감사하게도 그 분은 내 이메일을 받고
다시 내려가서 테스트 부분을 모니터하고 오셨다고 했다.
다른 무엇보다 의상과 헤어가 어울리지 않았다고 했다.
평소 밝은 이미지로 시험 보다가 그날 처음으로
CNN 앵커같이 시크한 느낌을 줘보겠다고
검정색 정장에 올백머리를 해본 건데
아무래도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이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분은 본인의 준비생 시절이 생각난다고 했다.
학교 도서관에서 외로이 공부하다가 최종합격 연락을 받고
미련없이 두꺼운 책을 버렸다고 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으니 힘내라는 말씀도 해주셨다.
그때는 아나운서 시험의 합격과 탈락이
내 인생 전부를 결정짓는 것 같았는데,
이제는 집앞 문구점의 100원 짜리 뽑기처럼 느껴진다.
100원인데 모.
넣고 돌려보고 넣고 돌려보고.
안 나오면 1000원짜리 바꿔 와서 또 해보면 되지!
프랑스 어느 마을을 지나던 기차에서
달달한걸 좋아합니다. 뉴욕 세렌디피티 카페의 달다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