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있던 인어공주 이야기

나를 숨 쉬게 하는 공기는 거품이 되어준 사랑 덕분이리라

by 이윤지

아이와 저녁밥을 먹고 거실 책장으로 향했다.

자동차 책을 보려다 오랜만에 동화책을 함께 읽어볼까 싶었다.

바로 앞 책장으로 손을 뻗어보니 ‘인어 공주’가 있었다.

“우와 바닷속이네! 아까 낚시 놀이했던 물고기다!”


33개월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다 왕자가 바다에 빠지는 스토리가 펼쳐지면서

나도 모르게 동화 속으로 깊이 져들었다.


인어공주는 힘겹게 왕자를 구하여 모래밭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왕자가 눈을 떴을 때 처음 마주한 여인은 지나가던 이웃 나라 공주였다.


“당신이 나를 살려준 공주이군요!”


‘앗! 아닌데여. 당신을 구한 건 인어공주라고요!’

바위 뒤에서 이 모습을 바라보는 인어공주에 이입이 된 나는 이때부터 가슴이 아려오기 시작했다.


내 맘도 모르는 왕자를 만나기 위해 마녀에게 목소리를 선뜻 내어준 인어공주.

그녀는 다리를 얻고 걸을 때마다 칼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꼈지만 아픈 와중에도 왕자와 행복하게 춤을 추었다.


그러나 왕자는 결국, 자신을 살려준 의인인 줄 알고 있는 이웃나라 공주와 결혼하기로 한다.

왕자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물거품이 되어 버릴 그녀.

인어공주를 위하여 언니들은 머리카락을 잘라 동생을 구할 길을 얻어온다.

마녀가 준 칼로 왕자의 가슴을 찌르면 그녀는 다시 인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왕자를 진정으로 사랑한 인어공주는

그의 행복을 빌며 해가 뜬 뒤 바다 위로 몸을 던다.

인어공주의 몸은 물거품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착한 마음을 가진 인어공주는 영원히 사라지지는 않고

공기가 되어 구름 속으로 날아올랐답니다.”


동화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마지막 장을 펼쳐보니, 부모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야속하리만큼 덤덤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인어공주의 숭고한 사랑은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인어공주는 용기, 모험, 사랑, 희생, 인내 등을 골고루 담고 있어요. 아이와 함께 이러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어보세요.'


숭고한 사랑이 담긴 이 책을 앞에 두고 우리 아이는 록달록 폭죽 그림만 보고 있었다.

“이거 보고 싶구나? 엄마가 아빠한테 불꽃놀이 가자고 말해볼게!”

하고는 부엌으로 가서 설거지를 시작했다.


인어공주 이야기가 원래 이렇게 슬펐던가?

그릇을 감싸 안은 퐁퐁이 거품을 보노라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왕자가 인어공주를 몰라보았듯 나 또한 나를 위해 물거품이 되어준 누군가를 잊고 사는 건 아닐까?’


마음 착한 인어공주는 공기가 되었다.

나를 숨 쉬게 해주는 이 무한한 공기는

나를 위해 희생한 생명의 사랑임을 되뇌어 본다.


끊임없이 사랑을 받고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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