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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지 Jan 04. 2022

당신의 이야기가 멜로디로 다가오는 순간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그의 이야기가 멜로디로 다가오는 순간이 있습니다.

함께하는 그 시간은 OST가 흐르는 하나의 영화 속 장면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얼마 전,

남편의 지인 가족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초대에 감사하며 조금은 긴장된 마음으로 찾아뵈었지요.

우려와는 달리 지인 부부께서는 시종일관 환한 미소로 저희 가족을 배려해주셔서

편안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아이도, 친절한 형아들 덕분에 자연스럽게 어울리기 시작했고

덕분에 두 부부는 편안하게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첫 만남이란 늘 그렇듯 서로 알아가는 시간이 조금은 필요하기 마련입니다.

저는 꽤 털털한 편이라 한 털털 두 털털하는데요.

남편 지인의 아내분도 못지않게 다섯 털털은 하신 분이었어요.

덕분에 우리는 형식적인 대화는 빠르게 건너뛰고

진솔한 대화로 금세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

그녀는 저와 어떠한 대화를 나누다가

문득 본인이 요즘 되뇌던 생각들을 들려주기 시작하였습니다.

매우 깊고.. 신중하고.. 조심스러우면서도 내면의 진솔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들을 전해주었습니다.

    

송구스럽게도 그녀가 들려준 이야기의 세세한 내용들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녀가 진짜 이야기를 시작한 그 순간부터 저는 잠시 그곳에서 빠져나와 그녀가 들려주는 연주의 멜로디를 듣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주 묵직하면서도 여리고 가냘픈.. 바이올린 선율 같았습니다.

멜로디는 때로 똑똑하기도.. 진지하기도 했고 때로는 굉장히 감정을 절제하고 있었는데, 이는 배려의 마음으로 다가왔습니다.

메시지를 전하며 그녀는 저와 눈을 맞추기도 하고, 자주 이따금 손으로 꼭 쥐고 있는 잔을 바라보며 심장 혹은 뇌에 담겨있던 그간의 실타래들을 고심하여 꺼내는 듯했습니다. 그렇게 제게 정성스럽고 귀한 연주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녀가 이야기를 다 마치고 제게 미소를 지어 보였을 때,

저는 이 훌륭한 연주에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찰나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차마 가볍게 박수를 칠 수는 없었습니다. 연주가 너무도 진중했기 때문입니다.


잠시 생각에 잠긴 뒤 저는 전혀 다른 맥락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제가 왜 A에 대한 말씀에 Z를 전해드렸는지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일부러 더 횡설수설하며.. 멋진 클래식에 대하여 동요 같은 음색으로 답변을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올해 3월부터 불현듯 글을 쓰기 시작했거든요.. 정말 제가 글이란 걸 쓸 줄은 몰랐는데, 갑자기 글쓰고 싶단 마음불꽃처럼 일면서 미친 듯이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혹시 브런치란 곳을 아시나요? 네. 이곳에는 우리처럼 아이를 키우고.. 일을 하고.. 여러 가지를 챙겨가면서.. 시간을 내어 글을 쓰는 분들이 참 많아요. 음.. 저는 때로 어떠한 글들을 마주할 때면 글쓴이의 치열한 마음이 다가와 심장이 일렁일 때가 있어요. 아이를 재우고 잠을 자야 할 시간에 기어이 '나'를 찾아간다는 건.. 살기 위한 몸부림일 수도 있으니까요.. 저 또한 엉겨 붙은 실타래들을 하나하나 풀어내고 정리해나가며 치유도 되고 행복을 느꼈던 것 같아요.. 어떨 땐 너무 날 것의 글을 써놓고는 이거 올리면 난리 나는 거 아니야? 했는데 세상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괜찮더라고요. ”     


주절주절 이러쿵 저러쿵 저의 말씀을 드리고 있는데...

   

이럴 수가,


갑자기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 제 마음을 어떻게.... ”     


그녀의 눈물을 보고는 저도 너무 놀라 얼른 말씀드렸어요.

     

“아고 제가 너무 생뚱맞은 말을 했지요.”     


“아니에요. 무슨 말씀 하시는지 다 알 것 같아요.”     


그녀의 남편분은 서둘러 티슈를 가져다 주었고 두 남자는 몹시 어리둥절했지만.. 저는 그녀를 눈으로 꼬옥 안아주었습니다.. 이 마음을 알아주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쁜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고 그녀는 말해주었습니다. 사실 어릴 적부터 작가가 꿈이었다고요..

저는 그녀의 꿈이 작가인 줄은 몰랐지만, 그녀가 글을 쓴다면 얼마나 깊이 있는 울림이 전해질지는 알 것만 같습니다.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가. 눈빛이.. 태도가 진실했기 때문입니다.

     

정경화 바이올리니스트와 정명훈 피아니스트가 함께 연주하는 G선상의 아리아 곡을 좋아합니다. 어머니를 추모하는 연주회에서 두 사람이 전해주는 멜로디는, 한 음절 한 음절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아이에게 밥을 차려주며 이 곡을 듣는데 문득 그녀가 떠올랐습니다.

두 거장이 온몸에 힘을 다 빼고 온전히 엄마를 향한 메시지를 들려주는 G선상의 아리아는, 온 가식을 날려버리고 처음 만난 제게 순수하게 이야기를 들려준 그녀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저마다의 소망과 사연을 안고     

서랍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 드는,

키보드에 토닥토닥 간절히 타자를 쳐내려가는,  

아픈 목의 통증을 잊고 바이올린의 활을 들어 올리는,

그렇게 또 피아노 건반에 두 손을 정성스레 올려놓는, 


각자의 자리에서 순수한 열정을 안고 진솔하게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살아가다 문득 멜로디가 들려오면 귀기울여 마음을 전해봅니다.


지금 이 순간은,

제가 ‘그녀’에게 위로를 받아 이렇게 글 한 을 적어 내려 갔네요.

이 글이 또 누군가의 진솔한 메시지에 작은 한 방울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대청소 환기 후 글쓰는 감사한 오후입니다. 맑은 공기가 느껴지시나요..:) 오늘도 더 많이 행복하셨음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qtF7ttfM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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