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지 않은 삶이 지나갔다

1부

by 그냥

“이노옴~~~”


계산대 앞에서 여자아이가 큰 소리로 동생을 부른다. 동생은 매대 안쪽에서 쪼그리고 앉아 과자를 고르는 중이다. 단골이라 얼굴은 익숙하지만 이 자매에 대해 아는 건 없다. 둘 다 초등학생일 거라 짐작할 뿐이다.


언니가 동생을 잘 챙기는 것 같고, 둘이 사이도 좋아 보인다. 그렇더라도 동생한테 ‘이놈 저놈’ 하며 재촉해도 되나? 나도 어린 시절 똑똑하고 야무진 언니에게 꽤나 당하고 살아서인지 불쑥 한마디 끼어들고 싶었다.


- 동생을 이놈이라고 불러?


언니가 경쾌하게 대답한다.


- 이놈이 아니고요, 이름이에요.

- 이름?

- 네. 이. 노. 을.


동생 이름을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발음한다. 내가 잘못 들은 게 확실하다. 민망하고 미안해서 얼른 사과했다. 그러자 언니가 다시 큰 소리로 말한다.


- 아니에요, 그렇게 많이 듣더라고요.


또랑또랑한 목소리. 갑자기 생각난 게 있어 다시 물었다.


- 그럼, 혹시 네 이름은 가을이야?

-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어떻게 알긴. 그 정도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지. 가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신기한 듯 웃는다. ‘을을 자매’는 젤리와 과자 한 봉지를 계산하고 편의점을 나갔다. 아이들이 남긴 출입문 종소리가 자분자분 마음을 흔들었다.


*


중학교 1학년 수업 시간에 ‘20년 후의 나’를 주제로 글쓰기를 한 적이 있다. 서른 중반의 나를 상상해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당시 내 생각에 가장 ‘훌륭하고 무난한’ 직업은 교사였다. 나는 중학교 과학 교사가 되어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퇴근 후 된장찌개로 저녁 식탁을 차리는 일상을 일인칭 시점으로 썼다. 소소함 속에 낭만적인 감성을 한껏 흩뿌렸다. 아마 지금 읽는다면 손끝이 오그라드는 걸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냥 이대로 끝났다면 지금쯤 이 일은 기억에서 흐려졌겠지만, 미래의 나를 주인공 삼아 하루를 묘사한 설정이 특이했는지 다음 시간에 선생님이 그 글을 낭독했다. 갑작스러운 호명에 비밀을 들킨 듯 부끄러웠다. 다행히 반 친구들이 흥미롭게 들어주었다. 특히 내가 두 딸과 저녁을 먹는 장면에서 친구들이 “와~”하며 감탄하는 소리를 냈다. 그때 내가 지은 딸 이름이 ○가을, ○노을이었다. (역시, 오그라든다.)


여러 사람 앞에서 공개된 글은 마치 예언처럼 나에게 되돌아왔다. 정말 그런 미래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아서 한동안 꿈꾸듯 설렜다.


그러나 20대에 난 비록 공언하진 않았어도 비혼주의자처럼 살았고, 서른 후반엔 또 갑자기 결혼을 했다가 마흔 후반이 되어 이혼을 맞이했다. 주사위에서 기대하지 않은 숫자가 나올 때마다 저항없이 따른 결과다. 그럼 재혼은 어떨까. 지금은 아무 생각없지만 또 모르는 일이다. 주사위 놀이에선 같은 숫자가 실수처럼 연거푸 나오기도 하니까. 싱거운 웃음이 나왔다.


*


이사 후 첫 주말 근무를 마쳤다. 일요일 밤 10시가 넘은 시간, 정류장엔 아무도 없다. 버스는 10분 후 도착한다. 어둡고 조용한 거리의 적막함에 마음이 가라앉았다. 집까진 마을버스로 세 정거장. 앉아서 기다릴까 하다가 버스비도 아낄 겸, 기분도 끌어올릴 겸 걸어가 보기로 했다.


날이 부쩍 더워졌다. 시간이 흐른 만큼 몸도 많이 적응했다. 여전히 쩔쩔매는 일이 많지만 부딪히며 하나씩 터득해 나가는 중이다. 다 똑같아 보이던 손님들 사이사이에 아는 얼굴이 섞이기 시작했다. 가을, 노을이처럼. 안 그래도 밝고 활기찬 기운에 얼굴도 예쁜 아이라 눈이 갔는데 이름을 알고 나니 괜히 더 친근한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티를 내지는 않을 것이다. 손님들과 사적인 대화나 감정을 나누고 싶지 않다. ‘을’의 입장에선 손님과 얽힐수록 복잡하고 고달파지니까.


이제 횡단보도만 건너면 아파트 입구에 도착한다. 일주일 중 가장 피곤한 시간이며 가장 달콤한 휴식을 맞이하기 직전의 시간이다. 아픈 발도, 뻐근한 어깨도 곧 쉴 수 있다. 어서 녹색 신호가 들어오길 기다리며 서 있었다.


그때 마을버스가 내 눈앞으로 천천히 지나갔다. 아까 정류장에서 잠시 기다렸던 그 버스다. 순간, 버스 안에서 내릴 준비를 하며 뒷문으로 걸어가는 내 모습이 환영처럼 잠시 보였다가 사라졌다.


버스를 탔다면 지금 ‘나’는 저 안에 있을 것이다. 걷지 않은 ‘나’는 지금의 나보다 덜 피곤하겠지. 곧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향할 테고, 미미와 코코를 나보다 먼저 만나고 먼저 씻고 먼저 잠자리에 들 거다. 매 순간 새 가지를 뻗다가 맨 마지막 갈라진 가지 끝에 매달린 잎사귀 하나, 이게 지금의 내 모습 같았다. 수많은 잎사귀만큼이나 나일 수 있었던 무수한 ‘내’가 있다. 며칠 전까지 머물렀던 집에 여전히 살고 있는 나, 결혼식장에 들어가지 않기로 결정하는 나, 안정된 직장에 사표를 내지 않은 나, 어쩌면 가을과 노을이란 이름의 딸들과 사는 나까지도...


버스는 정류장에 멈추지 않고 그대로 지나갔다. 내가 살지 않은 삶이 저만치 지나갔다.


초록 불이 켜졌다. 발이 부었는지 운동화가 꽉 끼어 걷기가 불편하고 고관절도 살짝 뻐근했다. 잠들기 전 스트레칭을 하고 발바닥을 주물러주어야겠다. 내일 낮엔 운동화 끈을 느슨하게 다시 고쳐 맬 작정이다. 오늘과 아주 조금 다른 모양의 잎사귀가 돋아날 것이다.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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