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오전 일곱 시에 시작한 이사가 오후 네 시를 넘겨 끝이 났다. 이사하는 내내 책 좀 그만 사들이자는 혼잣말을 열 번쯤 했다. 옮기기 힘든 건 둘째고, 일단 둘 곳이 없다. 벽마다 책꽂이를 세우고 여기저기에 스크래처와 방석 등 고양이용품을 놓으니 열세 평 집이 빼곡하다. 누군가 “종이책 수납은 부동산 문제”라고 했다는데 정확히 맞는 말이다.
이삿짐업체 직원들이 돌아간 후 미미와 코코는 웅웅 소리를 내며 낮은 자세로 집안 곳곳을 조심스럽게 탐색했다. 나 때문에 덩달아 고생하는 고양이들이 안쓰럽다. 얼마 후 물을 먹고 화장실도 다녀오는 걸 보고 나서야 내 마음도 편안해졌다. 그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온몸에 힘이 풀리면서 무지막지한 피로가 몰려왔다. 지난 두 달 동안 제대로 쉬지 못했다. 내일은 강의를, 그다음 이틀은 편의점 일을 해야 한다. 휴식이 이렇게나 멀다니. 일단 짐꾸러미들을 큰방에 다 몰아넣고, 침대에 이불부터 펼쳤다.
어쩌다 나는 지금 이곳에 와 있는 걸까. 미미, 코코만큼이나 나도 이 집이 낯설다. 누워서 바라보는 천장 넓이부터 새로 산 세탁기, 에어컨, 냉장고까지 모두 줄어들고 작아졌다. 내 삶까지 바짝 쪼그라든 건 아닌지 겁이 난다.
어쩌면 이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일 지도 모른다. 이삿짐을 옮기는 내내 이웃의 시선이 신경이 쓰였다. 내가 이사 온 동네에는 어르신들이 유독 많이 산다. 편견이겠지만, 어르신들은 ‘이혼하고 혼자 사는 여자’를 좋게 바라볼 것 같지 않다. ‘나이 들어 혼자 사는 여자’는 또 어떻게 생각할까. 나라는 사람이 여기 있다는 걸 윗집과 옆집, 아랫집, 건넛집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다. 알려져서 좋은 점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으니까. 입방아에 오르느니 차라리 투명인간이 되어 아는 이웃 하나 없이 사는 삶이 오히려 편할 것이다.
*
깜빡 초저녁잠을 잤나 보다. 어느새 어둠이 깔렸다. 늦은 저녁으로 초밥을 먹으려고 배달 어플을 켰다. 새로운 주소를 입력하고 ‘미미코코네’라고 저장했다.
쪽잠으로 급한 피로가 풀렸는지 낮과는 달리 머릿속이 가볍고 기분도 꽤 괜찮았다. 오늘 밤, 아무도 이 집에 들어올 사람이 없다는 게 어색하면서도 좋았다. 내일 아침에도, 내일 밤에도... 인간 중에선 오직 나만 이곳을 자유롭게 들락거릴 수 있고, 오직 내 몸과 마음만 편히 쉴 수 있다. 온통 내 차지, 맘껏 내 세상이다. 미래에 대한 기대감으로 마음이 부풀려는 순간, 옆방에 밀어둔 짐들이 떠올랐다. 차차 풀어가야 할 내 삶의 이유이자 증거들. 자유에 책임이라는 추가 달랑 매달렸다. 그래도 괜찮았다. 내일은 또 어떨지 모르지만, 이 순간만큼은 마음 가득 평화로운 기운이 부드러운 커튼처럼 살랑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