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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혜진 May 23. 2020

공모전에서 떨어졌다

글 쓰는 일상

며칠전 지원사업 공모전에서 떨어졌다. 2월에 원고를 보냈으니 석 달을 기다린 결과였다. 경쟁률이 20대 1이 넘는다기에 큰 기대를 걸진 않았다. '선정 안 되면 출판사에 투고하면 되지'라고 다짐해왔는데 막상 떨어지니 헛헛했다. 투고를 하자니 딱히 떠오르는 출판사도 없었다. 이제 나.. 무얼 해야 하지?


이미 책 두 권을 펴냈지만 투고를 한 건 아니었다. 9년 동안 써온 수많은 글 중 어떤 글이 운 좋게 출판사 편집자의 눈에 띄었고, 출간 제안을 받았다. 그것도 두 군데 출판사에서 각각 다른 주제의 글로. 책을 내려고 쓴 글들이 아니어서 얼떨떨했다. 한편으론 드디어 내 글이 세상에 제대로 드러나려나보다 싶기도 했다. 글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 글이 독자를 만난다는 것만큼 기쁘고 설레는 일은 없으니까. 지난한 교정 끝에 다섯 달 간격으로 내 이름의 책이 두 권 발간되자 지인들이 갑자기 나를 '작가'라고 불렀다. 어색하고 쑥스러웠다.


어쩌면 그 작가란 호칭에 내가 너무 들떠 있었는지 모르겠다. 붙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사실 떨어질 줄도 몰랐다. 그 원고는 지역신문에 연재한 기사를 모은 것이었다. 독자의 반응이 좋았고, 인터넷 언론사에 중복 송고를 했을 때도 줄곧 탑에 배치되었다. 작년에 한 출판사와 출간 계약을 했으나 계약금 문제로 내 쪽에서 취소를 하기도 했다. 이미 여러 방면으로 검증된 원고라 믿었는데, 뭐가 부족해서 떨어진 걸까. 생각이 공회전을 하니 매연을 내뱉듯 한숨이 자꾸 쉬어졌다. 원고지 900매의 방대한 원고가 쉽게 구겨지는 껌종이 나부랭이처럼 느껴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저녁이 되어 있었다. 온종일 밥도 안 먹은 상태였다.


문득, 나 말고 다른 탈락자들은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지원자 2500여 명 중 떨어진 이들은 2400여 명. 그들이 모두 나와 같을 리 없겠지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아쉬운 마음은 매한가지일 터. 그들 중 행동력 있는 몇몇은 벌써 마음을 추스르고 출판사에 투고를 하고 있진 않을까. 더군다나 내가 지원한 인문교양 분야는 가장 많은 수의 탈락자를 배출했으니, 인문교양서적을 펴내는 출판사들의 이메일 함에는 이들의 원고가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나도 그 대열에 참여해야 하는 것 아닐까.


노트북을 열고 석 달 묵은 원고를 다시 읽었다. 이와 비슷한 책을 펴내는 출판사를 찾아 몇 곳의 투고 메일 주소를 적어 두었다. 내 책꽂이에 꽂힌 책들의 출판사 목록도 메모했다. 이 중 가장 맘에 드는 출판사 네 곳을 우선 골랐다. 대형출판사보다는 양질의 책을 펴내는 곳이 우선 욕심이 났다. 이메일을 열고 원고의 집필의도와 저자 소개를 간단히 적었다. 원고를 첨부해 '보내기' 버튼을 누르는데, 가슴이 떨렸다. 같은 행위를 네 번 반복하고 나니 긴장이 풀리면서 갑자기 배가 고팠다. 라면을 끓여 밥까지 말아 한그릇 뚝딱 해치웠다.


다음날 저녁, 한 출판사로부터 메일이 왔다. "저희 출판사의 출간 분야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출간이 어려울 듯하다는 회신 드립니다." 헉, 출간 분야가 다르진 않을 텐데, 하여간 거절은 거절이다. 껌종이만 한 원고가 코딱지만하게 구겨졌다. 다른 출판사의 연락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점심 무렵 또 다른 출판사에서도 답장을 보냈다.


"저희가 보통 일주일 정도 검토의 시간을 갖는데요, 다음주 중에 연락드리겠습니다"


우왓! 거절이 아니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검토의 시간'이란 말이 신경 쓰였다.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검토의 시간'은 중립적인 표현일 뿐이다. 그래도 이게 어디야. 구겨진 껌종이가 반반하게 펴진 것 같았다.


다음 주면 나머지 두 출판사의 답변이 올 수도, 어쩌면 안 올 수도 있을 거다. 선배 '투고자'들의 경험담을 인터넷에서 찾아 읽어보니, 연락이 안 오는 출판사도 부지기수라 한다. 처분을 마냥 기다리는 초보 투고자의 심장은 하루에도 열두 번은 벌렁거린다. 수요일까지 답변이 안 오면 다른 출판사를 찾아 다시 투고를 해야겠지. 언제까지? 될 때까지! 이 투고의 전쟁이 마무리되는 날까지, 나의 멘탈과 심장이 부디 잘 견뎌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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