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보다 특별한 것

by 그냥

며칠 전 늦은 밤, 정류장에서 마을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머리가 덥수룩한 노숙자가 내 옆을 지나쳐갔다. 그 거리에서 이따금 마주치곤 했던 이다.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흠칫 놀랐다. 바지 뒤쪽이 찢어져 허벅지 부위가 훤히 들여다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얼굴이 검고 몹시 마른 체격에 나이는 아직 중년이 되지 않은 듯했다. 작은 짐꾸러미 하나를 허리춤에 끼고는 한여름에도 위아래로 두꺼운 군복을 입고 다녔다. 아마도 가진 옷의 전부일 그 군복이 해어지고 말았으니 초가을 찬바람을 어찌 막아낼지 걱정이 됐다. 쫓아가 단돈 몇 푼이라도 쥐어 주어야 하나 머뭇거리는 사이, 바지를 너풀거리며 그는 저만치 가버렸다.


예전엔 노숙자는 그저 피해야 할 대상이었다. 왠지 나를 위협하거나 내게서 무언가를 빼앗아 갈 것 같았다. 한 번도 해코지당한 적이 없는데도 그랬다. 고물이라도 모아 팔면 한데서 자더라도 굶지는 않을 텐데. 아무것도 안 하고 무기력하게 있는 그들을 이해 못 하겠다며 속으로 흉보고 비난했다.


생각이 바뀐 건, 삶에서 누구든 원치 않는 고비를 맞닥뜨릴 수 있고, 한 번 무너진 이에게 우리 사회는 웬만해선 재기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걸 자각한 후부터다. 몇 차례의 불운과 불행이 겹치면 누구나 노숙자가 될 수 있다. 이 말은 저주가 아니라 현실이다. 노력하면 된다고 쉽게 이야기하지만, 그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능력과 자본의 유무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이루었다’고 표현할 수 있는 성과도 돈과 물질적인 것에 한정되어 있다.


나는 권위적인 관계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자의식이 강해서 돈보다는 의미 있는 일에 관심이 많다. 웬만한 직장생활을 견디지 못한다는 얘기다. 다행히 내겐 가난한 탓에 많은 걸 해주진 못했어도 다양한 책과 신문을 자유롭게 읽게 하고 상급학교를 가려는 의지를 꺾지 않은 부모님이 있었다. 또한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일기 쓰기를 장려한(강제한) 선생님을 만난 운도 따랐다. 장애가 없는 몸, 문해가 가능한 평균 수준의 지능도 주어졌다. 이러한 나의 이력은 특별한 재능도, 물려받은 재산도 없는 내가 글 쓰는 삶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인 자원이 되었다. 이마저 없었다면 사회성 부족한 내가 어떻게 입에 풀칠이나마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아찔하다.


‘문화자본’이라는 말이 있다. 현금이나 부동산 같은 실체가 있는 자본과 달리 취향이나 취미 또는 학력, 태도, 생활 습관과 같은 무형의 형태를 띠면서 계급을 구분 짓는 자본의 역할을 하는 것을 말한다. 문화자본은 물려받는 것이라서 개인의 의지로 얻어낼 수 없고, 문화자본 없이 노력만으로 ‘가치 있는 무언가’를 이루기란 더욱 어렵다. 어떤 목표를 품고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문화자본이 갖춰져야만 가능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나는 노숙인을 마주할 때마다 그들에게 우리 사회가 마련해 주어야 했던 것, 그러나 현재 그들이 갖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돈과 문화자본을 그들과 나누지 않은 채, 그들에게 ‘자활’이나 ‘노력’이란 말을 함부로 사용해선 안 된다는 것만큼은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바지가 찢어진 그를 떠올리며 글을 쓰다 보니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겼다. ‘모든’ 국민에게 주어진 상반기 긴급재난지원금을 그는 과연 받았을까. 정보가 없어 신청을 못 했거나 신청했더라도 거주지가 없다는 이유로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서울시에선 노숙인 밀집지역에 전담 상담창구를 마련한 덕분에 106명의 노숙인이 재난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전체 노숙인의 수에 비하면 적은 숫자다. 그러나 어쩌면 그들은 돈보다 더 특별한 것을 먼저 받았을지 모른다. 자신도 이 사회의 일원이라는 소속감 말이다. 더는 그들을 소외된 채로 내버려 두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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