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 위해 달린다
달리기를 하려고 집을 나섰다. 짙푸른 하늘을 보니 저절로 깊은숨이 쉬어진다. 어느새 가을. 8월 말 더위가 채 가시지 않았을 때 달리기를 시작했다. 한 일주일이나 할까 싶었는데 어느덧 두 달이 되었다. 이쯤 되었으면 ‘달리는 나’에 대한 글을 써도 되겠지.
어제는 가을가을한 날씨 때문인지 하늘과 바람에 기분이 묘했다. 이럴 때면 유독 20년, 때론 30년 전 노래가 자꾸 생각난다. 그때라고 특별히 아름답고 행복했던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닌데 희한하게 그렇다. 낮에 도서관을 오가는 동안 윤도현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와 정엽의 <Nothing better>를 반복해 들었다. 바싹 말라가는 나무와 풀, 쨍하게 파란 하늘과 노란 햇살에 한없이 느리고 부드러워진 감성엔 역시 발라드가 어울린다.
여섯 시쯤, 햇빛이 사라져 공기가 푸르스름하게 변해갈 무렵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햇빛과 파란 하늘이 사라진 풍경이 어쩐지 내겐 더 깊어진 가을처럼 느껴졌다. 그동안 내 사랑 방탄소년단과 소녀시대의 강렬하고 빠른 노래를 들으며 달렸는데, 어젠 이들을 그만 배신하고 싶어졌다. 어두운 가을 저녁, 낮에 듣던 노래가 자꾸 생각났다. 한편으론 망설였다. 혹 느린 비트가 내 심장 박동과 다리의 움직임을 느리게 만들지 않을까, 다리에 힘이 풀릴 때 ‘파이어~’하는 가사를 들으면 다시 허벅지 근육이 단단해지는 듯했는데 이제 어느 가사에서 에너지를 받지, 어쩌면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라는 가사에 울컥해 달리다 멈춰 설지도 모른다.
일단 가을 노래를 들으며 공원까지 걸었다. 귓속을 가득 채우는 진동이 달라지니 두 달 동안 걷고 달리던 공원길도 새롭게 보였다. 하늘 끄트머리에 남았던 붉은 기운은 모두 사라지고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었다. 하늘을 향해 달리는 기분으로, 달리기 앱을 켜고 그냥 달렸다. 천천히 흐르는 박자가 시간의 체감 속도를 더디게 만든 걸까. 1분 정도 뛴 것 같은데 2분이 지나 있었다. 5분씩 다섯 번 달리기를 무사히 마쳤다. 6분 50초대로 전날 페이스와 별 차이 없었다. 발라드가 발을 느리게 만들거나 달리기 의욕을 떨어뜨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느낌으로 지루하지 않게 달릴 수 있었다. 댄스곡만이 달리기와 어울릴 거란 것도 고정관념일 뿐, 사람의 감정과 신체는 그리 단일하게, 일정하게 반응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앞으론 그날그날의 감정과 몸 상태에 맞는 음악을 들으며 달릴 수 있도록, 다양한 곡들로 여러 개의 플레이리스트를 미리 만들어 두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