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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혜진 Jan 21. 2024

프리랜서의 새해 첫 수입

킹받는 글쓰기 4

프리랜서로 글 쓰고 강의도 하는 내겐 정해진 월급이나 연봉이 없다. 해가 바뀌면 늘 올해 첫 강의는 어디에서 하게 될지, 첫 수입은 얼마나 될지 걱정 반, 궁금증 반이다. 그런데 얼마 전 뜻밖의 돈이 통장에 들어왔다. 입금자는 재작년에 책을 낸 출판사였다.


잠시 갸우뚱했으나 곧 돈의 출처를 알아차렸다. <밀리의 서재>나 <크레마클럽> 같은 전자책 구독 서비스 업체에서 지급한 인세가 출판사를 통해 내게 들어온 거다. 그러고 보니 작년 이맘때도 약간의 돈을 받은 기억이 난다.


그래봐야 피자 두 판 사 먹을 정도의 아주 소액이지만, 올해의 첫 수입을 마주한 내 마음은 뭐랄까, 흐뭇했다. 아직 내 책이 누군가에게 읽히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니까. 한 사람의 독자라도 만난다는 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인지!


그 책은 완성까지 5년이나 걸릴 만큼 공을 많이 들였더랬다. 손톱깎이나 고무장갑 등 현대의 발명품들이 없던 시절 우린 어떻게 살았는지, 이 물건이 등장하면서 세상은 어떻게 변해갔는지, 옛 신문 기사와 당시 살았던 이를 인터뷰해 글을 써 나갔다.


신문 기사 검색부터가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포털사이트 ‘뉴스라이브러리’에는 1920년부터 1999년까지 80년 치 신문이 저장되어 있다. 여기에 ‘세탁기’를 검색하면 11,178개의 기사가 10개씩 정렬되어 나온다. 나는 제목과 미리보기 기사를 하나하나 살피고 중요한 내용은 따로 파일에 저장해 두었다. 기사를 읽고 정리하는 데에만 보통 이삼일이 걸렸다.


그다음은 그 변화를 온몸으로 겪었던 사람을 인터뷰할 차례다. 그는 바로 1950년생인 나의 엄마였다. 엄마는 이야기하는 걸 즐기고 기억력도 무척 좋은 편이다. 나와 평소 대화를 자주, 많이 나누는 터라 별걱정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인터뷰를 제안했다. 엄마 역시 별 고민 없이 승낙했다.


그러나 어렴풋이 알고 있다고 짐작한 것들이 막상 되살리려고 보면 기억의 경계가 흐릿하다는 걸 알게 될 때가 있다. 서로 다른 시절의 사건이 뒤섞여 있기도 하다. 칠순의 엄마는 아이 셋을 낳아 기르던 1980년대의 사건 선후 관계를 종종 뒤바꾸었다. 팩트가 중요한 정보를 대략 짐작해 이야기하고는 한참 후에 정정하기도 했다. 서른 번이 넘는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나는 점점 엄마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파악하느라 신경이 잔뜩 곤두섰다. 딸내미의 작업에 도움을 주려 했을 뿐 아무 잘못도 없는 엄마는 인터뷰를 마칠 때면 가끔 한숨을 쉬곤했다.


원고를 모아 책으로 엮는 과정에선 더욱 치밀하게 사실관계를 따져야 했다. 신문기사는 물론 인터뷰 내용도 재확인했다. 이때 엄마를 대하는 내 모습은 어쩌면 무뢰한을 취조하는 형사에 가까웠을지 모른다.


이외에도 글로 다 쓸 수 없는 별사건을 다 겪은 끝에 책이 나왔고, 이후로 한동안 나는 글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쭉 멀어졌다. 마라톤을 완주한 선수처럼 뼛속까지 에너지가 소진된 느낌이랄까. 나는 차갑게 식은 트랙에 누운 채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글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내 안에 차오를 때까지.


그땐 글 한 편 쓰는 것이 세상이라는 뾰족한 바늘 끝에 나를 세우는 것처럼 조마조마했다. 글은 말처럼 흘러가는 것도 아니고 활자로 남는 것이니 그만한 책임이 따른다. 겁이 나도 어쩔 수 없다. 이런 과정을 거쳐 나온 책을 독자들이 계속 읽어주길 바라는 건 당연하지 않나.


 몇만 원에 감동한 사연을 이렇게  구구절절 쓰고 있으니, 잠시 ‘글이란 뭘까생각하며 허공을 라본. “ 쓰는 사람은 태생이 ‘관종’”이라는 어느 작가의 말도 떠오른다. 관심은 받고 싶고, 혹여 오류에 책잡힐까 겁나고, 그래서 그만 쓸까 싶다가도 태생을 버리고 살긴 어렵고.  정신적 부조화의 부담을 어깨에 훌쩍 짊어지고 가는 . 이것이  쓰는 사람, 작가의 정의가 아닌가 싶다. 적어도 내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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