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계셔
할머니의 발인을 위해 새벽같이 일어났는데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상주인 아빠가 사라진 것이다.
그야말로 소리 없이, 가버렸다.
아니 '도망갔다'라는 말이 적절했다.
빈소에 모여있던 어르신들 모두 황당해했다. 상주가 가버리다니.
고모들은 욕을 했다. 할머니의 그 많은 땅을 다 해 먹어 버리고 달랑 하나 남은 초라한 초가집에서 혼자 돌아가시게 한 장본인이 빈소도 끝까지 지키지 않았다고. 대체 언제 사라진 거냐며.
외할머니의 장례식에선 부의금을 형제별로 정리해 장례식 비용을 정산한 뒤 남은 금액도 형제별로 나누었는데, 자식이 그보다 두배나 많았던 친할머니의 장례식에서는 들어온 모든 부의금을 탈탈 털어도 장례식 비용이 모자랐다. 그래서 부담해야 하는 금액을 형제별로 나누었는데 아빠의 몫은 오빠와 내가 부담했다. 그 와중에 큰고모는 ‘내가 늙어 일도 없고 돈도 없다’며 낼 수 없다고 했다. 어릴 적부터 왕래가 별로 없어 더더욱 친하지 않았던 큰고모는 우리에게 불만이 많았다. 할머니의 그 많던 재산, 난 구경도 하지 못했다며.
사실이 그렇긴 했다. 사업이다 뭐다 하며 야금야금 할머니 땅에 손댄 건 큰아빠와 내 아빠뿐이었으니.
고모는 얘기했다.
"네 오빠 결혼할 때 너희 아빠가 청첩장 안보내줬다고 하길래 너희가 너무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청첩장 두 번이나 보내줬다는 네 말을 다 믿지는 않았어. 설마 너희가 얘기했는데 안 갔으려나. 무슨 사정이 있었겠지 라고. 그런데 오늘 보니 알겠네. 너희가 참 고생 많았다.."
우습게도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웃음이 나왔다.
사람은 너무나 어이없고 황당한 순간이 찾아오면 울음이 아니라 웃음이 나온다. 내 경험상.
아빠는 그랬다.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기대하지 않았으므로 실망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빈소를 지키는 내내 주차장 빈 차에서 기다리는 여자 때문에 초조했을 것이고, 결국 함께 떠났을 것이다.
그리고 아빠에 대한 내 마음도 그렇게 결론이 났다.
이제는 나와 정말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나는 잘 지낼 것이므로.
아이가 자라니 궁금한 게 많아졌다.
"아빠의 엄마는 할머니지?"
"엄마의 엄마는 또할머니(외할머니를 이렇게 표현하곤 했다)지?"
"아빠의 아빠는 할아버지인데, 그럼 엄마의 아빠는 어디 있어?"
처음 내 아버지의 존재를 물었던 그 순간부터 깨끗했던 머리가 다시 복잡해졌다. 뭐라고 얘기해야 하나.
- 응, 외국에 계셔.
"아, 살아계시긴 한 거야? 하늘나라 가신 건 아니지?"
- 응, 일하느라 외국에 계셔.
내 아버지는 내가 태어날 적에도, 내 아이가 태어난 뒤에도 외국에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