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를 샀다.
피아노가 생겼다.
내가 피아노를 처음 치기 시작한 게.. 아마 여섯 살 정도일 테니, 무려 32년 만에 피아노를 갖고 싶었던 막연한 내 어릴 적 꿈이 이루어졌다.
단독주택 1층에 세 들어 살던 여섯 살 시절 - 그 건물 1층엔 엄마 아빠가 운영하던 가게가 있었고, 가게 뒤편으로 한 칸짜리 방이 있었더랬다. 가게와 방 사이에는 신발 신고 지나가는 주방이 있었다. 그러니까 가게 뒷문으로 나와 주방을 거쳐, 신발을 벗고 계단 두 개를 올라가면 방이 있는. 그런 구조였다. (글을 쓰며 기억을 더듬다 보니, 화장실이 어디 있었지? 문득 궁금해진다. 아마 방을 나오면 있는 작은 마당 건너편에, 주택에 세 들어 사는 가구들이 무려 '공동'으로 쓰던 화장실이 있었던 것 같다! 세상에. 집 밖에 있는 화장실이라니.)
집안 형편이 그리 좋지 않았던 것 같은데, 다섯 살 위의 오빠는 학교에서 보이스카우트 단원이었고, 나는 늘 단정한 원피스 차림이었다. (그 시절 사진을 보면 난 늘 원피스 차림이다ㅎㅎ) 그 원피스를 입고 나는 2층 - 아마도 주인집으로 추정되는 - 에서 피아노 레슨을 받았다. 피아노 학원도 있었을 텐데, 그러고 보니 엄마는 그 시절에 개인 레슨을 시켜주셨었네. 늘 '난 혼자서 컸어'라고 주장했던 내 모습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그즈음부터였던 것 같다. 벽지 말고, 반짝반짝 빛나는 나뭇결 벽 한편에 까만색 유광의 업라이트 피아노가 있었던 집. 1층 우리 집에서 마당으로 나와, 돌계단을 올라가면 나오는. 우리 집과는 다른 화려한 현관의 그 집. 마치 우리 집인 양, 빨간색 원피스를 입고 피아노를 치던 똑 단발의 소녀는 마음속에 막연히 '우리 집에 피아노가 있었으면 좋겠어'라는 꿈을 품었던 것 같다.
학교에서 받은 음악책 뒷면에 있었던 피아노 건반 그림을 피아노라 상상하며 - 실제로 머릿속에선 멜로디가 흐르고 있었다! - 손가락을 움직이고, 멜로디언이 피아노라 상상하며 음계를 눌렀었다. 그리고 저학년 때 키보드가 생겼다. 다리가 없는, 건반이 88개에서 약간은 모자란. 카시오 키보드.
아마도 그 키보드 덕분에 (나의 피아노 레슨은 바이엘에서 끝났지만) 지금 피아노 연주 흉내 정도는 낼 수 있게 된 것 같다. 특별한 장난감이 없었던 나에게 건반 수가 약간 모자란 다리 없는 키보드는 최고의 장난감이자 친구였으니까. 물론 한번 치려면 방에서부터 낑낑거리며 전기 콘센트가 있는 곳까지 끌고 가서 연결해야 했다. 바닥에 키보드를 대충 놓고 앉아 구부정한 상태로 띵 똥 땡 똥.
큰 아이가 피아노를 시작한 7살, 1년 동안 열심히 치면 내년 생일엔 엄마가 피아노 사줄게! 했던 내 약속은, 아마도 날 위한 약속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1년이 지나 드디어 우리 집에 피아노가 생겼다. 비록 어릴 적 꿈꾸던 반짝반짝 빛나는 까만색 업라이트 피아노가 아닌, 아파트라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했던 무광의 디지털 피아노지만. 피아노를 샀다. 내 돈으로!
32년이 걸렸다.ㅎ
엄마와 통화를 했다.
내 기억과는 다르게 피아노 레슨을 받았던 그 집은 주인집이 아니었단다. 내가 작은 아이 나이었던 여섯 살에 피아노 레슨을 받았다며 엄마는 감격했다. 그리고 엄마는 그땐 돈이 없어서 피아노를 꾸준히 못 가르쳐줬다며 나에게 미안해했다. 난 뭔가 진득하니 오래 못 하는 내 성격 때문이라고 엄마를 위로했다.
피아노 앞에 나란히 앉아 깔깔거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말랑말랑해졌다. 금세 투닥거리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