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사람에게 철이 드는 순간이라는 게.. 있을까.
24년 지기 친구 H에게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하나님이 나에게 남자 복을 참 많이 주신 것 같아. 아빠만 빼고."
하나밖에 없는 형제도 남자.
자식도 남자. 그것도 둘이나.
중학교 이후 나의 모든 역사를 알고 있는 H는 웃었다.
이 죽일 놈의 남자복.
사실, '아버지'란 단어는 내 평생의 숙원이다. 좋은 의미의 그것 말고.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어린 소녀에게
'세상이란 그런 거야.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거든'을 몸소 알게 해 준 나의 피붙이.
어린 소녀는 '기대하지 않는 법'을 스스로 깨우쳤고, '주어진 것에 순응하는 삶'을 살며 어느새 30대의 끝자락을 지내고 있다.
아홉이라는 숫자-
스물아홉, 결혼을 앞두고 '청첩장에 아빠의 이름을 넣을 것인가? 넣는다면 아빠에게 나의 결혼 소식을 알려야 할까?'를 고민했는데. 서른아홉이 된 지금의 나는 ‘내 인생에서 아빠의 이름 석자를 어떻게 남겨야 할까’를 고민하고 있다.
"엄마가 어젯밤에 꿈을 꿨는데.. 아무래도 시골에 계신 할머니께 다녀와야겠어. 이번 주말에"
전라북도 고창까지 대중교통으로 어떻게 다녀오시려고, 그것도 당일치기로. 오빠랑 나랑 강서방도 같이 다녀오자 말씀드리니 엄마는 미안하지만 그렇게 해준다니 다행이라는 반응이었다.
나와 오빠는 오랜만에 할머니 얼굴을 뵙는 것이기도 하고, 남편은 처음으로 처가 할머님께 인사드리는 것이니 그렇다 치지만, 이혼한 지 10년도 넘은 전 남편의 어머니를 챙기는 엄마는 무슨 심리일까. 뭔가 내가 알 수 없는 의리의 조각이라도 남아있는 건가, 아니면 그저 연민인 것일까.
약속했던 주말은 돌아왔고 아침 일찍 서둘러 출발한 엄마와 친정오빠, 남편과 나 우리 넷은 읍내에서 질 좋은 고기와 약간의 간식거리 - 어르신들이 가볍게 드실만한 두유, 사탕, 과자를 사서 할머니 댁에 도착했다.
초가집 지붕을 현대식 하늘빛 지붕으로 바꾼 시골집. 아궁이는 기름보일러로, 두꺼운 통나무 문의 창고는 은색 새시의 수세식 화장실로 바뀌어 있었지만 할머니 집 둘레의 대나무는 내 어릴 적 기억과 같이 여전히 우거져있었고 고동색의 대청마루도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우리가 뒷마당에 도착해 주차를 하는 동안에도 집 안에선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가니 그제야 이불속에서 겨우 몸을 일으키는 할머니를 발견했다.
할머니는 매우 수척했다. 가녀린 몸에서 뿜어져 나왔던 총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고 그저 늙어 쇠약해진 노인만이 내 앞에 있었다.
사실 친정오빠의 결혼 이후로 나는 원래도 멀었던 친가 식구들과는 거의 연을 끊은 상태였다.
오빠의 여자 친구.. 그러니까 나의 올케가 될 이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뒤 우리 가족 - 외할머니와 엄마, 오빠와 나는 급하게 결혼식을 준비했다.
엄마는 아빠가 무책임하게 남기고 간 사업빚을 이혼 후 10년이 넘도록 갚고 있었고(20여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거의 다 갚았다고 한다..) 그 빚이 아니더라도 아빠는 평소 양육비조차 한 푼 준 적이 없었기에 우리 가족에게 당장 단칸방 하나 구할만한 여윳돈이 있을 리 만무했다. 오빠 역시 할 수 있는 한의 모든 빚을 끌어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던 시기 었기에 더더욱.
나는 아빠에 대한 내 마지막 자존심을 곱게 갈아 최대한 구질구질하게 이메일에 담았다.
아빠.
오빠 결혼해요.
딴것도 아니고, 결혼한다고요.
새언니 될 사람 뱃속에 오빠 아이도 있어요.
지금 살고 있는 집, 아빠도 아시다시피 500 보증금에 30만 원짜리 월세방이에요.
안방에서 할머니, 엄마, 오빠, 저 이렇게 넷이 매일 같이 자요.
안방에서 먹고, 자고, TV 보고, 화장하고.. 그러고 살아요.
하지만, 아빠 원망 안 해요.
각자의 삶이 있는 거니까..
지금 월급의 반이 학자금 대출로 나가고 있어도 아빠 원망 안 한다고요.
이미 오빠는 일 때문에 대출받을 만큼 받았어요.
전, 지금 있는 학자금 대출 때문에 더 이상 대출도 안돼요.
알아서 해보려고 했지만, 이젠 정말 한계예요.
살면서.. 그래도 아빠 노릇 한 번은 하셔야죠.
오빠 결혼하는데.. 정말 돈이 하나도 없어요.
방 한 칸 얻을 돈도 없고, 새언니 될 사람 한복 한벌 해줄 돈도 없어요.
단 돈 얼마라도. 아빠가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청첩장에 아빠 이름 석자는 들어가야 하는 거잖아요.
이번에도 아빠가. 그야말로 "아버지"로서의 마지막 역할. 거절하신다면,
그렇게 알게요.
더 이상 이런 말. 아니, 연락도 안 할게요.
아빠가 그렇게도 소원하시던 메일로 말씀드리는 거니까, 답장 부탁드려요.
아빠는 천만 원 정도는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했다. 두바이에서 사업을 새롭게 시작한 터라 나중에 더 준비를 해보겠다는 말도 덧붙여. 보내준 메일은 잘 보았으나 실수로 지워졌으니 식장 주소가 적혀있는 청첩장 파일을 다시 한번 보내달라고 했다.
그렇게 두 번의 이메일을 보냈고, 오빠의 결혼식 당일.
아빠는 결국 오지 않았다.
9살의 어린 소녀에게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 아빠가 많이 보고 싶다고. 보고 싶어 학교 앞에 갈 테니 예쁜 옷 사러 가자고. 그렇게 소녀의 마음을 며칠 동안이나 설레게 하고선 결국 전화 한 통 없이 잠적해버렸던 그 날처럼.
아빠는 오지 않았다.
전화는 꺼져 있었다.
엄마는 시골집 찬장을 여기저기 뒤져 점심상을 차려냈다. 할머니는 드시지 않았고 우리 넷만 억지로 밥을 떴다. 평소 비위가 약한 남편은 쿰쿰한 내가 나는 오래된 된장 냄새에 특히 힘들어했다.
할머니는 여기저기 몸이 아프다고 하셨다. 그래서 읍내에 있는 약국에서 산 약을 먹는다며 알 수 없는 하얀 가루가 가득 담긴 통을 내보이셨다.
교회를 다닌다고 하셨다. 목사님 부부가 잘해 주신다고. 평일엔 사회복지사가 와서 돌봐준다고 하셨다. 약간은 마음이 놓였다. 완전히 혼자 계신 게 아니니.
할머니의 이른 저녁상을 봐놓고 우리는 돌아갈 채비를 했다.
할머니는 엄마를 붙잡았다. 마치 일 나가는 엄마의 치맛자락을 잡는 아이처럼. 가지 말라고.
마음이 약해진 엄마는 하룻밤 자고 내일 첫 차로 올라가겠다 했지만 나는 단호했다.
- 엄마 내일 교회 시간 맞춰 어떻게 올라오려고. 여기서 내내 할머니랑 함께 있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일 새벽에 올라오는 거면, 그냥 편하게 우리랑 차 타고 가셔.
모르겠다. 정말 엄마가 편하게 오기를 바란 건지. 아니면 아빠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할머니를 향했던 건지. 계속 망설이는 엄마의 팔을 붙잡아 차에 태웠다. 다음에 또 오면 되지.
색이 바랜듯한 늙은 노인은 우리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계셨다. 나무마루 한편에 우두커니 앉아.
손도 흔들지 않고 차가 나가는 모습을 끝까지 바라보는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리고 3일이 지난 그다음 화요일.
할머니는 돌아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