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머니

by 달콤햇살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나던 날, 누구보다 나의 탄생을 기뻐했던 사람이 있다. 바로 우리 할머니.

지금은 어린 시절처럼 자주 찾아가지도, 어떤 표현도 잘 하지 못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단단히 다져 보석이 된 것 같은 기억이 살아가면서 툭툭 캐질 때가 있다. 우연히 떠오른 단단한 기억들이 내 삶을 기둥처럼 받쳐주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들을 귀하게 여겼던 시대에 살았던 할머니는 그 시대의 영향이었을지도 모를, 혹은 세대의 어떤 중요성이 이어지듯 아들을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 앞에서는 한 번도 그런 티를 내지 않았다. 첫 손녀서 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를 그렇게 예뻐했고 첫사랑이라고 했다. 어떤 드라마에서는 딸을 낳았다고 손녀를 보러오지 않는 시어머니도 있던데, 그런걸 보았을 때도 우리 할머니는 나나, 남동생도 평등하게 사랑해주었던 것 같다. 처음에 받는 사랑이 좋은 것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살면서 처음에 대한 의미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니 말이다. 첫 만남, 첫 음식, 첫 사랑.. 등등. 그러니까 난 첫 손녀.


할머니 집에 놀러가는 날, 그 밤이면 할머니의 손을 잡고 잠이 들었다. 농사를 짓는 할머니는 흙에 늘 손을 가까이 하여 거칠 법도 한데 손가락 끝마디만 조금 거칠 뿐 손바닥은 부들부들 했다. 그 여리하고 부드러운 손이 내손을 보고 고사리 손이라며 쓰다듬었다. 퉁퉁한 내 손가락이 어디가 예쁘다는 거지? 속으로 생각했지만 어색한 기분 속에서도 그 말이 좋았다. 그렇게 여러 번 할머니 손을 잡고 잠이 들었지만 자다보면 어느새 잡은 손이 풀어져 있었다. 어릴 땐 그게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왜 손을 잡고 잤는데 풀어져있을까? 하고 말이다. 그러다 어느 밤에는 이번에는 꼭 손을 놓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잠이 들었다. 꿈결에도, 어떤 뒤척임 속에서도 할머니의 손의 감촉을 확인했다. 새벽쯤 되어 손이 풀어졌다. 할머니가 새벽기도 가시면서 손을 놓았던 것 같다. 다음날 아침에도 손이 풀어져 있었다. 8살쯤이었던 듯한데, 그 때의 나는 그렇게 할머니를 좋아했었나보다. 손을 잡고 자면서도 할머니와 연결되어 있고 싶었던 건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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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 쯤 할머니 집에 놀러 가면 참외가 있거나, 오이가 있곤 했다. 몸빼바지에 쓱쓱 참외의 겉흙을 털어내고 옷에 문질러 참외를 깎으셨다. 또 오이의 오돌도돌한 껍질을 부드럽게 하고 오이를 반으로 꺾어 먹어보라며 주시기도 했다. 종종 500원을 쥐어주시며 하드 먹고와! 라고 하셨다. 밭일을 모두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봉선화 잎와 꽃잎을 땄다. 봉지에 초록 잎과 분홍, 빨간 꽃잎을 담았다. 할머니는 봉숭아물을 들여주셨다. 절구에 백반과 따온 잎들을 넣어 빻으셨다. 그러면 그 뭉쳐진 잎들에서 짙은 물이 배어나왔다. 손톱 위에 잎 덩어리를 올리고 긴 네모로 자른 비닐 봉지 사이에 손가락을 하나씩 감싸 실로 동여매고 잠이 들면 다음날 쪼글하고 실자국이 남은 아릿한 감각의 손마디와 붉게 묽든 손톱을 만나게 된다. 실을 풀 때 검은 봉지 속, 잎뭉치 아래 바뀔 손톱의 변화를 늘 기대했던 것 같다.


내 손을 볼 때마다 예쁘다는 생각이 드는 건 그때 할머니가 심어준 마음인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진짜로 내손을 예쁘다고 생각 하는 건 아닌데, 나도 모르게 예쁘다는 생각이 드는 손이라고나 할까. 그런 기억은 할머니가 주신 그때의 기억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인사이드 아웃이라는 영화를 보면 핵심감정이라는 것이 있는데 어쩌면 할머니와의 추억이 그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섭섭할 때는 그 기둥이 흔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다. 또 이렇게 툭툭 살아가면서 캐내어진 추억이 보석처럼 내 안에서 빛나는 느낌이 든다. 그로 인해 나의 존재가 사그라지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다. 할머니가 알려준 귀한 단어들, 하드, 봉숭아물, 참외, 오이, 복숭아 나무.....

보석 같은 추억이 담긴 어떤 기억들을 또 캐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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