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클은 오이, 양배추 같은 채소나 과일을 식초·설탕·소금·향신료가 섞인 액체에 담가 절인 음식이다.
우리말로는 장아찌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우리 방식의 장아찌와 피클은 이름도, 맛도, 쓰임도 다르다.
어제 피자를 먹으며 곁들인 피클 한 조각.
시큼하면서도 혀끝을 알싸하게 스치는 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그 순간 떠오른 것은 오래전 이별의 기억이었다.
잠시 아려오는 감각은 이별의 아릿함과 닮아 있었다.
오이가 그 속살까지 소금과 식초, 설탕 등 여러 재료에 저며들 때의 시간,
그 기다림이 바로 이 알싸함의 정체일지도 모른다.
장아찌는 밥상과, 피클은 피자·파스타와 잘 어울린다.
둘 다 ‘곁들임’이지만, 혼자보다는 함께일 때 맛이 완성된다.
가끔은 느끼함을 덜어주고, 때로는 중심이 되는 맛을 돋운다.
너무 슬플 때는 명치 부근 어딘가가 깊숙히부터 저며온다.
코끝이 찡해지는 것 말고도, 사람 몸에는 아려오는 구석이 더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피클을 먹으며 나는 여러 이별을 떠올렸다.
예전 연인과의 이별, 유산으로 태아를 잃었던 시간, 앵무새 파랑이와의 작별...등
아린 감정은 누구도 원하지 않지만, 삶을 살아가며 피할 수 없는 과정이기도 하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남편의 친할머니는 해마다 오이 장아찌를 담그셨다고 한다.
그러나 24년, 할머님이 돌아가신 뒤 멈춰졌다.
남은 건 장아찌의 맛이라기보다, 그것을 만들던 사람의 온기다.
몇달 전 아버님이 오이를 한 포대 사다주셨는데 그 오이가 냉장고에서 곰팡이를 피우고 있었다.
그 즈음에야 비로소 장아찌를 담글 생각을 했다. 사다주신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어쩌면.. 그 장아찌가 이어지길 바라셨을까? 하고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리움이 낳은 무의식적인 행동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오이는 생각보다 금방 썪는다. 타이밍을 놓친 것이 아쉬움으로 오래 남았다.
아마 앞으로 오이 장아찌, 피클을 먹을 때마다 오늘의 기억과 그 주변의 생각들이 함께 떠오를 거 같다.
피클의 알싸함 속에서, 나는 삶의 이별과 기다림, 그리고 그리움을 돌아본다.
나도 언젠가.. 엄마의 김치를 떠올리며 눈시울이 벌게지는 날이 오면..
무심코 배추를 사러, 무를 사러 다닐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