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 로벨리
카를로 로벨리,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2019
시간에 대한 고정관념을 지워야 한다. 인간의 직관은 시간이 과거에서부터 현재로, 현재에서부터 미래로 끝도 없이 이어져 있다고 느낀다. 시간은 선형이며 우주의 전체를 이끄는 하나의 흐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게 틀렸다! 그런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주를 이끄는 하나의 시간은 없다. 빨라지지도 않고 느려지지도 않는 일정한 시간의 흐름은 인간의 인지한계 때문에 그렇게 밖에 느낄 수 없는 것이지, 실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개미가 지구 생태계나 우주의 구조를 관조할 수 없듯 인간도 물리적 한계 때문에 시간을 이렇게 밖에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시간과 공간이 같은 것이라는 것을 밝힌 지 100년이 흘렀지만 (이것 참! 흐른게 아니면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우리는 여전히 시간에 대한 직관 한계를 넘어서기 어렵다. 우리가 시간을 느끼는 이유는 열역학 제2법칙 때문이다.
굉장한 것을 읽었는데 읽었다고 하려니 기억이 '흐릿'하고, 아는 척 할만한 것이 있는 듯하다가도 막상 얘기를 해보려 하면 멍청이가 된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라는 시적인 제목에 이끌렸을 뿐, 시간이라는 주제에 대한 물리학적 궁금증이나 지적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란 무엇이더냐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여전히 동태눈이다. 그러나 나는 낚였다. 아무것도 모르던 때로 되돌아 갈 수가 없다. 카를로 로벨리의 책을 연달아 4권을 읽었다.
로벨리는 따뜻한 선생님이다. 책 읽는 동안 유일하게 또렸했던 생각이다. 이름만 들어도 위축되는 상대성원리와 양자역학을 이토록 친절하고 부드러운 글로 설명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나처럼 동태눈을 한 답답한 학생이 눈앞에 있지 않아서 그 친절함을 유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친절하다고 학생이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같은 문장을 몇 번이나 다시 읽고 문단과 장을 다시 읽어도 어렵다.
한편으로 내 우뇌는 알듯 말듯한 이 신비한 지식과 상상의 우주에서 마음대로 떠다니며 꽤 즐기고 있다. 반대로 좌뇌는 내가 얼마나 무식한 사람인지 들통났다 한다. 내용을 요약하거나 개념을 정리해 두는 일은 어림없는 일이다. 여전히 동태눈인 나이지만 우주와 세계의 다른 측면을 상상하는 범위는 분명히 새로워졌다. 단풍을 보고 지구의 46억년을 주제로 명상에 빠지고, 물질의 최소 단위 양자물리학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상상이나 우주 공간 가운데에 떠서 태양계와 은하계와 전우주를 바라보는 상상을 해 본다. 영화 '앤트맨'처럼 미립자의 크기만큼 작아져서 날아다녀 본다. 일정하게 배열된 빌딩 같은 원자들 사이를 지나고 보니 방금 빠져나온 곳이 단단한 화강암 덩어리였다. 원자보다 작아져서 보면 작은 돌멩이 속 공간도 우주처럼 크다. 멀리서는 단단한 바위로 보이던 것이 가까이서 보니 구름처럼 경계가 모호하다. 그런데 이 상상은 틀렸다. 미립자의 크기가 되어 원자를 본다면 원자핵과 원자핵의 사이는 별과 별 사이처럼 멀다. 텅텅 빈, 그야말로 암흑 가운데 있는 외로운 위치에 서 있다. 다시 나로 돌아와 내 몸을 본다. 내 몸도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아까 보았던 것처럼 원자들이 무엇으로 결속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안개처럼 흩어지지 않고 이 몸을 유지하는 걸까.
이제는 내가 1000 천문단위만큼 거대한 존재가 되어 우주를 바라보는 상상을 해본다.(1천문단위, AU = 지구와 태양 사이의 평균거리, 약 1억 4960만 km) 고개를 숙여 내 발을 바라보니 138시간 전의 발이 보인다.(1000 천문단위 = 약 1500억 km, 빛의 속도 30만 km/초)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려고 하면 지구의 시간으로 뇌에서 신호가 출발한 후 47,564년 뒤에 발가락이 꼼지락 한다.(신경 자극 전달 속도 약 100m/초) 이렇게 거대한 상태로는 우주에서 존재하는 게 어려울까? 발이 간지러우면 간지럽다는 것을 아는데 47,564년이 걸리고 내가 움직여서 긁는 데까지는 우사인 볼트처럼 빨리 움직여도 47만 년은 더 걸릴 것 아닌가. 그런데 다행히 그건 아니다. 지금 나는 지구인의 시간과 다른 시간을 산다. 모든 물질은 질량을 가지고 질량을 가진 물질은 중력을 가지며 질량이 클수록 중력의 크기도 크다. 중력은 잔잔한 물에 돌멩이가 떨어졌을 때처럼 하나의 장(場)을 만들어 우주의 시공간을 물결치게 한다. 중력의 장 주변 시간과 공간은 휘어져 있다.(일반상대성이론) 나의 거대한 질량 때문에 내 시간은 외부에서 보는 시간과 다르다. 지구에서 볼 때 나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느리게 보일 테지만 나는 전혀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반대로 지구를 현미경으로 살펴보니 사람들이 어찌나 빠르게 움직이는지 눈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다. (1000 천문단위로 커진 나에게 지구는 먼지만큼 작기 때문에 현미경으로 봐야한다.) 때때로 순간이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시간은 절대적인 실체이고 모든 우주가 동시에 손잡고 과거에서 현재를 지나 미래로 나아간다는 흐름은 상식에 부합하는 하나의 지식이었다. 그러나 이 지식은 거짓이다. 개인적으로는 고등학교 때 미적분 이후 최대의 지적 난관이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너무나 어렵다. 그래도 이해해보려고 온갖 상상력을 동원했다.
시간은 절대적인 실체도 아니고 흘러간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관념일 뿐이라 한다. 당장 지구 중심에서 가까운 위치와 중심에서 먼 위치는 중력 때문에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 실험으로 증명된 결과다. 높은 질량은 더 큰 중력을 가지고 더 큰 중력은 시간을 느리게 한다. 이것이 '일반상대성원리'다. 지표면은 시간이 더 천천히 흐르고 인공위성에서는 시간이 더 빠르게 흐른다. 그래서 인공위성을 이용하는 GPS는 이 시간의 속도 차이 때문에 반드시 보정하게 되어있다. 평지에 사는 사람보다 고도가 높은 곳에 사는 사람들의 시간이 더 빠르게 흐른다. 고층 아파트가 하나도 좋을 게 없다는 자연의 법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