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되러 갑니다
독거노인들은 홀로 산다. 가족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함께 살고 있을 형편이 아니거나 버림받았다. 이들에게 외로움이란 무섭고 괴로울 때 아무도 위로해 주지 않는다는 데서 비롯한다. 무서울 때 누구에게 말해야 할지 모른다. 힘들 때 누구에게 말해야 할지 모른다. 주변에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언젠가 감당할 수 없는 공포를 맞이하게 된다. 죽음이다. 사람이 죽음을 평온하게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사랑과 위로가 필요하다. 그래서 신의 가장 큰 축복은 죽음을 직면할 때 얻는 그의 위로다. 그러나 신의 위로를 1:1로 이해하고 직관할 수 있는 사람들은 드물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다른 주변 존재들의 위로에서 안정을 얻는다. 죽음이라는 가장 큰 공포를 예로 들었지만 사실 우리는 작은 외로움과 고통도 타자의 위로가 없이 견뎌내기 힘들다.
방문하던 노인 중 한 분이 자다가 이부자리에 실수를 했다. 자기는 기억이 안 난다고, 똥이 마려웠는지도 모르겠고 싼 줄도 모르고 계속 잤다고 했다. 일어나 보니 속옷과 자리가 엉망이 되어 있었다고 했다. 완전히 공포에 질린 눈으로 자기를 좀 구해달라고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순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 일단 전화해서 복지관 담당자가 달려왔고 노인을 안정시키면서 같이 주민센터 사회복지 직원에게 연락했다. 어떻게 해야겠냐고 물어보니, '그런 분들은 시설 수배해서 입소시키는 방법밖에 없어요.'라고 했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 이분을 안정시킬 수 있는 답변은 없냐니까 없다고 한다. 곧 자기들이 방문하겠다 약속하고 끊었다.
노인은 공포에 빠진 눈빛으로 울먹이며 자기 좀 살려달라고 했다. 곧 동사무소 직원들이 올 거라고 달래고 왔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내 모습에 일주일 내내 너무 힘들다.
주변에 누가 아프다면 얼마나 아프냐고 안부를 묻고 위로를 해 준다. 그런데 독거노인들은 주변에 그런 존재들이 극히 적거나 없는 사람들이다. 새삼 그걸 알았다. 갑자기 깨달았다. 그들이 느낄만한 외로움의 공포가, 두려움이 머리를 때렸다. 번쩍하는 느낌과 함께 나를 휩쌌다. 독거노인들은 사실 고독사가 시한부처럼 예정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누구나 자기 죽음이 가깝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사람의 뇌는 외면하고 싶은 미래를 차단하려 하지만 현실로 다가오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외로움의 공포에서 자아를 보호하려 하지만 본능은 어렴풋이 느낀다. 그래서 사소한 안부 인사와 눈 맞춤에도 노인들은 위로를 얻고 감사를 표한다.
이런 얘기를 깊이 나눌 사람이 내 주변에 별로 없더라.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마치 나 혼자 쓸데없는 고민에 지나치게 빠져있는 사람처럼 대화가 흘러갔다.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근심을 한다고 해서 복지 시스템이 갑자기 업그레이드될 수도 없고, 내가 노인의 삶에 줄 수 있는 도움은 흔적을 찾기도 어려울 만큼 작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것은 달라지는 시스템이나 눈에 보이는 봉사자의 기여가 아니다. 사람들의 관심이다. 세상 속속들이 관심을 가지고 살 수는 없겠지만 공감 거울이 맑은 사람들이 많으면 좋겠다. 나이를 먹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아픈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아픈 사람들에게 위로가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다. 무관심은 인간들이 만드는 또 다른 재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