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자들의 에세이는 우아함이 필수다. 자연과학의 극의를 탐구하다보면 그렇게 전혀 관련없을 것 같은 문학적 감수성에도 도달하는 걸까. 감각으로는 알 수 없는 우주의 진면이 조금씩 드러날 때마다 사람이 느끼는 경외감과 찬탄은 자연과학자들이나 보통사람들이나 다름 없다. 물리학자들이 열어 둔 새로운 문으로 들어가면 마치 처음 비행기를 탔을 때처럼 세상의 넓음에 놀라고 우리 인식의 불완전한 한계에 또한 놀란다. 어째서 물리학자들이 세상을 표현한 방정식을 두고 우아하다고 표현하는지, 그것이 설명하는 세상의 모습이 무엇인지 깨닫는 순간 머릿속에서는 새로운 생각의 지평이 열린다. 방정식을 쓰지 못해도, 설명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미켈란젤로의 유작 '론다니니의 피에타' 를 보고 -사진으로 본 거지만- 느꼈던 충격과 여러가지 감동을 잊을 수 없다. 나는 그 감정을 예술적으로 표현할 줄을 모른다. 그러나 노년의 미켈란젤로가 깨달은 피에타는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그리스도와 그 어머니의 마음에 다가가게 했다. 내가 보기에 물리학자들도 예술가와 같아 보인다. 자신들이 발견한 우주의 모습이 놀랍도록 우아했기에 가장 우아한 방정식에 집착하는지도 모르겠다. 미켈란젤로의 시선에 감동하였듯 방정식의 메세지를 통해 우주의 우아함에 빠져드는 기분이다.
이 책을 읽었던 지난 해 가을 어느 아침 출근길에 산이 단풍으로 예쁘게 물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보는데 갑자기 저 단풍이 들기까지의 긴 시간의 역사가 하나의 뜨거운 감정으로 북받쳤다. 아무것도 없던 돌덩어리가 혜성과 유성과 수도 없이 충돌하다가 태양과 딱 1억 5천만 킬로미터의 거리에 자리 잡고 46억 번을 공전한 끝에 이루어낸 귀하고 아름다운 '나만의 현재 장면'이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증명할 수 없지만 지구는 태양의 중력장에 초대되어 1억 5천만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자리 잡았다. 이렇게 자리 잡은 지구는 태양의 중력장(重力場)이 만든 -빈 공간처럼 보이는- 길 위에서 직선으로 주행하고 있다. 태양의 중력장이 주변 시공간을 굴절시켰기 때문에 지구 입장에서는 직선으로 달리지만 휘어진 공간의 길을 타고 태양 주위를 도는 것이다. 마치 거대한 깔때기 옆면을 타고 도는 구슬처럼. 또는 우리가 지구 위를 직선으로 걸어가지만 결국 지구 위를 한 바퀴 돌아오는 것처럼. 우리는 그 길을 못 보지만 아인슈타인은 그 길을 보았다! 우리가 빈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우주는 중력장으로 가득한 일종의 바다였다. 잔잔한 호수에 떨어진 돌멩이가 동그란 파문을 일으키듯, 큰 질량을 가진 별은 우주 공간에 자신의 중력장 파문을 형성한다. (자석 주위에 철가루가 만드는 둥근 자기장을 떠올리면 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자석은 항상 그런 자기장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그 우주 물결이 지구가 태양을 도는 길이다. 태양계의 행성들이 공전하는 길이다. 우주 공간은 그러한 우주 물결로 가득차 있다. 그렇게 우주 공간은 곡선이다. 그 곡선을 따라 빛도 휘고 심지어 시간도 휜다. 우리가 사는 우주는 그런 곳이다.
루트비히 볼츠만의 엔트로피 방정식에 따르면, 극단적으로 낮은 확률의 사건이 지구에서 연달아 일어났다. 태양을 공전할 수 있는 여러 길 중에 반지름 1억 5천만 킬로미터는 물이 액체로 존재할 수 있는 적절한 온도를 유지하고 지표면이 생명이 살 수 있는 적절한 온도 범위를 유지하게 했다. 생명체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지구의 물은 생명을 품을 수 있는 어머니의 태와 같았고 그 물에서 생명은 번성하였다.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극단적으로 낮은 확률의 사건이 발생하였고 질소와 산소와 아르곤과 이산화탄소 등이 적절하게 배합된 대기가 안정되었다. 이런 환경에 적응한 생명들이 물에서 나와 온 땅을 뒤덮으며 아름답고 푸른 행성 지구를 이루었다. 생명이 탄생한 후 푸른지구가 되는 데까지 27억 년이 걸렸다. 열역학 제1법칙(에너지보존 법칙)에 의해 지구에서 태어난 모든 생물은 지구의 모든 무생물과 본질적으로 '데모크리스토스의 원자'를 공유했을 것이다. 아직 인류는 데모크리스토스가 정의한 가장 근본적인 입자를 확인하지 못했지만 (어쩌면 인간의 기술력으로 영원히 확인할 수 없는 수준의 작은 것일 수도 있지만) 반드시 존재하는 그 가장 작은 기본 입자는 지구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46억 년 동안 지구의 모든 것이 되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2천 년 전에 사람이 원자에서 비롯했고 결국 원자로 돌아갈 것이라는 통찰로 세계를 바라보았던 것처럼 내 육신을 이루는 근본 입자는 어머니 지구에서 와서 언젠가 다시 그에게 돌아간다. 내가 먹는 모든 음식과 물, 호흡하는 공기 1ml에는 지구 상의 모든 모래알을 합친 것보다 많은 수의 원자들로 들어차 있다. 이 원자들은 지구의 중력에 묶여 세계를 떠돌다가 우리 몸에 들어와 50조 개의 세포를 구성한다. 내 호흡에 드나든 원자들이 다른 생명의 호흡에도 드나든다. 나를 구성하던 원자들이 다른 생명의 원자가 된다. 지금 내 몸의 원자들은 여러 번 교체되어 이미 태어날 때의 그것들이 아니다. 우리가 일생동안 호흡하고 먹고 배설하면서 몸은 다른 원자로 몇 번이나 교체된다. 나의 원자는 너의 원자였고 너의 원자는 우리의 원자이다. 지구의 모든 존재들은 원자를 공유하는 사이다. 지구의 나이 46억 년 동안이나! 46억 년의 시간이 저 단풍 든 예쁜 풍경을 만들었다. 저 단풍은 나의 형제다!
단풍을 보고 3차원의 입체 영상으로 구현하는 내 뇌는 46억 년 동안 진화하여 지금의 정교함에 이르렀다. 지구가 우주에서 온 것을 따지면 135억년 전 빅뱅부터 거쳐온 시간이다. 이 여러 생각이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억겁의 진화를 거친 인간의 정교한 뇌는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고 우주의 신비와 아름다움에 감동할 수도 있다. 갑자기 밀려온 생각의 해일이 어찌나 뜨거운 감동으로 벅차오르는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회사에서 이 이야기를 했더니 우리 직원 중 하나가 감정에 겨운 듯 초롱한 눈망울로 말해주었다. 우주의 기운에 의해 갱년기가 온 것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