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도 넘은 책이라는 것을 감안하고 보았음에도 읽는 중에는 지나친 편견과 차별주의자 같은 발언들 때문에 좀 불편했다. 그렇지만 막상 다 읽고 나면 오히려 극단적인 평등주의자였구나 싶다. 대략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겠다.
'집단지성? 웃기지마라. 모든 인간은 군중의 일원이되면 예외 없이 이성을 잃고 멍청해진다. 개인적으로 지적 수준이 아무리 뛰어나도 소용없다. 군중이란 구성원의 개별성을 완전히 무시한 완전히 새로운 존재다. 그 새로운 존재인 군중은 언제나 백치이고 이성이 결여된 멍청이다. 아무리 똑똑한 자들도 군중의 일원이라는 정체성을 덮어 쓰면 똑같이 머저리가 된다.'
이 책을 쓸 때 귀스타브 르 봉 할아버지가 화가 많이 났던 것 같다. 이런 강렬한 모두 까기가 거부감이 들게도 하지만 조금 참고 계속 읽어보기를 권한다. 어느 순간, ' 아니, 이게 뭐야~ㅋㅋㅋ' 하면서도 그의 세밀한 논리와 가끔씩 통쾌한 사회 비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읽게되는 마력에 사로잡히게 된다. 르 봉 할배도 시대적 한계로 인한 편견은 있다. 그 자신도 그 시대의 군중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걸 감안하고 너그럽게 읽다 보면 대단한 통찰의 지평을 보게 된다. 130 년이나 된 연구임에도 여전히 의미있는 분석들이다. 사실 인간 본성은 겨우 백 년 정도로 바뀌는 게 없으니까. 백년은 커녕, 유전학적으로 의미있는 진화는 최소 2만년은 지나야 겨우 보이는 차이가 있다고 한다. 훌륭한 통찰이라면 몇 천 년의 세월이 지나도 의미가 퇴색하지 않는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여러가지 '우리'라는 집단에 무비판적으로 소속되려 하는가. 어쩌면 그것은 본성적인 내면의 불안함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혼자 있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 인정받지 못하는 두려움, 내 존재를 타인이 알아주기를 바라고 내 실존을 공감 받아야만 안심이 되는 심리. 불과 수 만 년 전에 들판에서 맹수에게 쫓기던 그 인류와 지금의 인류는 생물학적 조건이 별로 다르지 않다. 그래서 인간은 혼자 있으면 무의식적으로 공포를 느낀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그래서는 제대로 인간다울 수 없는데도 공포는 사그라들지 않는다. 어쩌면 르 봉 할배는 어디에 소속되지 않아도 인간은 존귀하다라는 역설을 주장하려했는지도 모르겠다.
[책에서 꼽은 문장] 1. 눈에 보이는 사실 뒤에는 때때로 보이지 않는 무수한 원인이 숨어 있다. 눈에 보이는 사회현상은 우리 능력만으로 정확하게 분석할 수 없는 거대한 무의식 활동의 결과일 수 있다. 우리가 지각하는 현상을 비유하자면 바다의 수면에 드러나는 파도에 불과하다. 파도는 해저의 격변이 드러난 것이지만, 우리는 해저에서 일어나는 격변 자체는 전혀 알지 못한다.
2. 이성은 인류가 비교적 최근에 얻은 데다가 그 속성이 너무나 불완전해서 무의식의 법칙을 우리에게 다 알려주지 못한다. 더구나 무의식을 대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의 모든 행위에서 무의식이 차지하는 비율은 엄청나지만 이성의 비율은 극히 적다. 게다가 무의식은 여전히 미지의 힘으로 작용한다.
3. 심리적 군중에게 가장 두드러진 점은 다음과 같다. 군중을 구성하는 개인이 누구든 간에, 즉 삶의 방식, 직업, 성격과 지능이 비슷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그들은 군중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일종의 집단 심리를 갖게 된다. 따라서 독립된 개인으로 있을 때 하던 방식과 완전히 다른 식으로 생각하고 지각하고 행동한다. 개인이 군중을 형성한 경우에만 나타나 행동으로 옮겨지는 생각과 감정이 있다. 심리적 군중은 이질적 요소들이 잠깐만 결합해서 형성되는 일시적 존재다. 비유하자면 어떤 생명체를 구성하는 세포들이 결합해 각자가 지닌 특성과는 확연히 다른 새 생명체가 되는 것과 비슷하다.
4. 그 무리를 구성하는 개개인과 무척 다른 특성을 드러낸다. 의식을 지닌 개성은 사라지고 개인의 감정과 생각이 집단화되어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한다. 그리고 일시적이지만 매우 뚜렷한 특징을 보이는 집단정신이 형성된다.
5. 반복되는 이야기는 우리 행동의 동기가 생성되는 무의식 깊은 곳에 자리를 잡는데, 반복의 힘은 여기서 비롯된다. 상당한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누가 그런 확언을 반복했는지 잊어버리고 결국 그 확언을 믿게 된다. 광고의 놀라운 힘도 여기서 비롯된다.
6. 군중심리를 꽤 깊이 연구해야만 군중에게는 법과 제도가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자신들에게 강요된 의견 외에는 어떤 의견도 독자적으로 갖지 못하며, 순전히 이론적 공정함에 기초한 법칙이 아니라 인상 깊고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것으로 그들을 끌어가야 한다는 걸 알게 된다. 예컨대 입법자가 새로 세금을 부과하려고 할 때 이론적으로 가장 공정한 세법을 선택해야 할까? 절대 그렇지 않다. 현실적으로 가장 부당한 세법이 군중에게는 최선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세법이 애매하고 부담이 적어 보일수록 사람들은 쉽게 받아들인다. 간접세가 터무니없이 높게 책정되어도 군중이 이를 받아들이는 이유가 여기 있다. 매일 소비하는 물건에 몇 푼씩 부과되는 간접세는 군중의 소비 습관에 방해되지 않으며, 그만큼 거의 인식되지 않고 넘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접세를 임금이나 각종 소득에 부과하는 누진세로 바꾸어 한꺼번에 납부하도록 하면, 이론상 총액이 10분의 1에 불과하더라도 총체적인 조세 저항이 일어날 것이다. 매일같이 내는 소액은 별것 아닌 것 같아도 특정한 날에 한꺼번에 내면 상대적으로 목돈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평소에 조금씩 저축해둔 사람이라면 총액이 크다고 느끼지 않지만, 군중에게는 미래를 대비해서 이런 경제 행위를 할 만한 능력이 없다.
7. 군중 속의 개인은 더 이상 그 자신이 아니다. 자기 의지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8. 군중의 의견과 신념은 이성적 추론이 아니라 전염으로 퍼져 나간다.
9. 현대의 독자가 호메로스의 작품을 읽으려면 지겹기가 이를 데 없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