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스타브 르 봉의 '군중심리'가 화가 많이 나 있는 책이라면, 톰 필립스의 '인간의 흑역사'는 풍자와 해학으로 푼 군중심리다. 인류 역사 전체를 아우르는 인간의 멍청함에 놀랄 준비를 하시라. 아니 사실은 그 멍청이 유전자가 내 안에 켜켜이 쌓여있음을 발견하고 놀라야한다.
인간의 태생적 어리석음에 대한 최초의 책은 아마도 성경일 것이다. '저것은 먹으면 안된다.'고 한 하느님의 가르침 조차 의심하는 존재가 인간이다. 인간은 일단 편향에 빠지면 자기가 틀렸다는 것을 발견하기 싫어한다. 못하는 게 아니라 싫어해서 하지 않는다. 모든 의지를 동원하여 진실을 깨닫게 해 주는 증거들을 외면한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성경을 (부분적으로) 읽으면서 '아니, 그럴 거면 선악과를 처음부터 만들지 말던가!' 라며 분노한다. 인간의 잘못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잘못도 있다는 거다. 그런데 심지어 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무신론자이거나 비신자다. 신을 믿지 않으면서 하필 저런 구절은 기막히게 찾아서 문자 그대로 믿고 하느님의 비논리성을 주장한다. 믿는 건지 안믿는 건지 잘 모르겠다. 아담과 하와도 그들과 같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성경이다. '내가 무슨 큰 잘못을 했다고.'하면서 내가 마치 세상의 기준인 줄 생각하기 시작한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인과관계를 따지지 않고 내 위기를 모면하는 일에만 급급해진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복잡한 세계의 거시적, 미시적 관계를 두루 꼼꼼하게 살피려하지 않는다. 복잡하기 때문이다. 복잡한 세상을 자신의 단순한 시야로 좁히고는 그것이 진리라고 주장하는 게 인간이다.
그 때 하느님은 그냥 '저건 먹지 못하는 과일이야.' 라고 다정하게 알려주셨을 뿐인지 모른다. 그런데 인간은 착각을 시작하고 음모론을 만든다. '저걸 먹으면 하느님처럼 전지전능한 존재가 될지도 몰라. 자기만 소유하려고 그러는 거야.' 착각이 아무렇게나 결론을 만들고 그런 의심을 품는 순간 관계는 깨어진다.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을 불신했다. 이것이 이 이야기의 진실이다.
신이 정해둔 규칙이 있다면 모든 자연법칙과 같은 것이다. 그 제한은 '지구의 자연을 파괴하면 인간은 파멸한다.' 쯤과 같은 선상에 놓아야하는 규칙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거기까지 가려하지 않는다. 물론 이와 반대로 인간들이 멋대로 하느님의 법이 아닌 것을 하느님의 법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마찬가지 편향이다. 문외한이라 잘은 모르겠지만 문득 아담과 하와의 머리에서 일어났던 최초의 편향을 뜯어보는 것도 재미있는 심리학 소재가 될 것 같다.
과학과 인간학의 발전은 역설적으로 인간이 얼마나 비합리적인 존재인지 드러내고 있다. 톰 필립스의 표현에 따르면 "우리 뇌는 바보 중에 상바보 짓"을 상시로 한다. 정보의 가치가 전혀 없는 것에서 중요한 근거를 발견한 줄 확신하거나, 패턴이 전혀 없는 것에서 패턴을 찾는다. 확증편향이니, 선택적지지편향이니, 더닝크루거효과니 하는 각종 편향이 어찌나 많은지 뭐 이런 머저리 같은 종이 현재까지 우주에서 발견된 가장 지적인 생물종인가 싶을 정도다. 톰 필립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래도 책을 읽는 지성인들은 가능성이 있다. 독서의 힘을 아는 분들이라면 이 책에도 소개된 대니얼 카너먼과 나심 탈레브, 제레드 다이아몬드, 레이첼 카슨 같은 학자들은 꼭 읽어보아야 할 저자들이다. 내가 속한 인간이라는 종이 얼마나 지독한 머저리인지를 깨닫고 조금 덜 머저리로 살기 위해서다.
인간이 좀 덜 머저리가 되는 것은 지구 생명체들에게 존폐가 걸린 일이 되어가고 있다. 지구를 가루로 만들만큼 수많은 핵폭탄을 만들어 놓고 군사력이 평화와 안녕의 도구라고 주장하는 이 서글픈 현실을 생각해보라. 의식주와 전기와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 지구의 재생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자연을 훼손하면서, 그래서 이제 곧 모두가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 닥칠 수 있다는 데도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인류를 생각해보라. 반면에, 기후협약에서 탈퇴하는 대놓고 멍청한 선택을 한 트럼프가 그 쇄국정책 덕분에 세계경제를 마비시킴으로써 오히려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는 이 책의 백미일 것 같다.
너무 까칠하고 어두운 평을 해 버린 것 같은데, 실은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무릎을 치면서 깔깔거렸다. 내 주변인이나 사회현상이나 유명한 누군가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들도 이 책을 읽는다면 나를 떠올릴지 모른다. 좌우지간 50%의 확률로 그들이나 나 둘 중 하나는 분명히 바보라는 뜻인데, 톰 필립스에 의하면 둘 다 바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