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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nduwinetasting Jul 05. 2020

밭을 마신다: 그랑 크뤼 피노누아

mandu의 와인 이야기 및 테이스팅 노트

프랑스 부르고뉴 (Bourgogne) 지역은 정말 매력적이다. 올해 갈 수 있을 줄 알고 작년부터 조금씩 준비했었는데 코로나로 발이 묶이면서 아쉬움이 가득하다. 그리 크지 않은 면적에서 다양한 와인이 생산되는 것을 보면 놀랍다. 부르고뉴 지역은 크게 꼬뜨 드 뉘 (Cote de Nuits), 꼬뜨 드 본 (Cote de Beaune), 꼬드 샬로네즈 (Cote Chalonnaise), 마꼬네 (Maconnais) 그리고 샤블리 (Chablis)로 나뉜다. 그중, 꼬뜨 드 뉘는 유명한 피노누아 산지로 24개의 그랑 크뤼 포도밭 (빈야드: vineyard)이 자리 잡고 있다. 


빌라쥬가 표시되어 있으며 빌라쥬 별로 프리미에 크뤼와 그랑 크뤼 밭이 나뉜다. 여러 명이 1개의 밭을 공동 소유하면서 와인을 빚어낸다. (출처: winefolly.com)


간략히 설명하자면 밭의 구분 없이 생산되는 피노누아는 일반적으로 부르고뉴 피노누아 (Bourgogne Pinot Noir) 또는 Rouge (루즈)로 표기된다. 부르고뉴 내 다양한 지역에서 수확한 포도로 와인을 양조하는 경우를 말한다. 그리고 빌라쥬 (Village)는 지역을 분류해 놓은 것으로 마르사네 (Marsannay), 지브리 샹베르땡 (Gevrey-Chambertin),  본 로마네 (Vosne-Romanee) 등으로 표기된다. 그다음 등급이 프리미에 크뤼 (Premier (1er) Cru)이고 가장 높은 등급이 그랑 크뤼 (Grand Cru)인데 포도밭의 크기가 점점 작아진다고 보면 된다. 엄선된 작은 밭에서 자라는 포도는 품질은 물론이고 개성과 매력이 철철 넘치기에 와인메이커의 양조 스타일이 더해지면 색다른 느낌의 와인을 경험할 수 있다.


부르고뉴 전 지역에서 생산되는 레드와 화이트 와인 중 그랑 크뤼 등급으로 생산되는 와인은 5% 미만으로 알려져 있다. 생산량은 한정적인데 맛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가격은 비쌀 수밖에 없다. 도멘 드 라 로마네 꽁띠 (그 로마네 꽁띠 맞다!)가 생산하는 와인도 생산량은 적은데 어마어마하게 비싸다. 지불할 능력이 있어도 해당 와인을 못 구할 확률이 높다. 여하튼 공급-수요의 법칙에 의해서도 비싸고 "부르고뉴 (버건디)"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 (퀄리티도 좋긴 하지만) 때문에도 비싸다.


설명이 길었지만 그랑 크뤼 피노누아를 한꺼번에 마시는 일은 드물다. 그러다 보니 밭의 특성을 이론적으로 공부할 수는 있어도 시음하면서 맛과 향을 비교하기란 쉽지 않다. 일단, 제법 돈이 들기도 하지만 해당 와인을 모두 구해주는 신뢰할만한 공급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러 병의 와인을 혼자 시음하기란 쉽지 않고 와인 테이스팅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야 꽤 기억에 남는 시음을 할 수 있다.


2014년 빈티지의 올리비에 번스타인 (Olivier Bernstein)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4종의 그랑 크뤼 등급인 피노누아를 비교 시음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포도) 밭 찾기를 했다. 물론, 같은 밭에서 수확한 포도라 할지라도 와인 양조가에 의해서 느낌이 사뭇 달라질 수 있다. 

끌로 드 부조 (Clos de Vougeot), 본 마르 (Bonnes-Mares), 끌로 드 라 로쉬 (Clos de la Roche) 그리고 샤름 샹베르땡 (Charmes-Chambertin). 모두 그랑 크뤼 피노누아이며 시간을 두고 천천히 시음을 했다. 보통 그랑 크뤼 와인은 열리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열린다"라는 의미는 와인 자신이 가진 모습을 드러낸다는 의미와 같다. 산소와 접촉하면서 와인은 자신의 매력을 드러내기도 하고 금방 풀이 꺾기 기도 하고 꽁꽁 닫힌 모습을 보이며 다음을 기약하라고 강요하기도 한다. 이게 와인의 찐 매력이지.


올리비에 번스타인 (Olivier Bernstein)은 클래식 음반회사를 경영하는 집안에서 태어나 천재 와인 양조가인 앙리 자이에 (Henri Jayer)를 만나면서부터 피노누아 매력에 빠졌다고 한다. 2007년, 네고시앙 (negociant) 사업을 시작하면서 올드 바인 (old vine; 심은 지 오래된 포도나무)에서 수확한 품질 좋은 포도를 구매할 수 있게 되었고 매우 적은 수량의 프리미에 크뤼와 그랑 크뤼 피노누아를 생산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끌로 드 부조"가 내 취향이었다. 체리와 딸기향이 피어오르고 부드럽다고 생각한 순간에 여운에서 각종 향신료가 뒤섞이는 그 느낌. 여러 레이어의 아로마가 느껴지는 건 그랑 크뤼 피노누아의 공통적인 모습이다. 여기서 본인이 좋아하는 아로마나 부케가 있다면 혹은 산도와 타닌의 적절한 밸런스를 느꼈다면 마음속에 훅 들어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본 마르"는 강렬했다. 힘이 넘치는 남성이 연상되었는데 나는 힘이 센 쪽보다는 부드럽지만 반전이 있는 느낌을 좋아한다. "끌로 드 라 로쉬"는 내가 최고로 뽑은 "끌로 드 부조"보다는 조금 더 무거운 느낌이었는데 붉은 과실보다 검붉은 과실이 더 생각났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샤름 샹베르땡"에서는 육향 (고기 구울 때 나는 향)이 났다. 그래서 더욱 맛있게 느껴졌다는 이도 있었다.


4병의 피노누아는 모두 훌륭했다. 와인 스펙테이터 (Wine Spectator)는 올리비에 번스타인의 시음 적기를 2020년~으로 보고 있다. 물론 몇 년이 더 지난 후에 마신다면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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