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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nduwinetasting Jul 15. 2020

미국 와인의 반란: 파리의 심판

mandu의 와인 이야기 & 테이스팅 노트

파리의 심판 (The Judgement of Paris).

1976년 5월 24일. 파리 와인 테이스팅 (Paris Wine Tasting) 대회에서 블라인드 테이스팅이 이루어졌다. 이미 유명한 보르도 와인과 당시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미국 와인 간 대결이라 볼 수 있는 흥미로운 행사였다. 프랑스 와인이 최고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때라 테이스팅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당연히 탑에 오르는 것은 프랑스 와인이겠거니 했을 거다. 그러나 상위권에 들어간 와인은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이었으며 당시 이 행사를 이끌었던 Steven Spurrier는 자신의 예상이 빗나갔음에 놀라워했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에 참가했던 와이너리로는 스택스 립 와인 셀러 (Stag's Leap Wine Cellars), 샤또 무똥 로칠드 (Chateau Mouton-Rothschild) 등 지금 우리에게도 익숙한 와이너리들이다. 전문가들은 20점 기준으로 와인에 대한 평가를 내렸는데 일관된 평가 기준이 없었기에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여하튼 그들은 자신의 역량과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와인에 점수를 부여했다. 그 결과, 레드 와인 부문에서는 스택스 립 와인 셀러 (1973년, 미국), 화이트 와인 부문에서는 샤또 몬텔레나 (Chateau Montelena, 1973년 미국)가 1위를 차지했다.


뭐야, 다 미국 와인이잖아.


그러나 결과에 승복하지 못한 일부 전문가들은 프랑스 와인이 숙성되면 더욱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숙성된 와인이 매력적이긴 하지...) 20개월 후에 동일한 와인을 두고 2차 블라인드 테이스팅 대회를 열게 되었다. 1978년 1월, 레드 와인 부문에서는 스택스 립 와인 셀러와 하이츠 와인 셀러 (Heitz Wine Cellers), 화이트 와인 부문에서는 샬론 와이너리 (Chalone Winery)와 샤또 몬텔레나가 각각 1위와 2위를 차지하면서 미국 와인의 저력을 보여주게 된다.


당대의 고정관념을 뒤엎는 결과로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은 프랑스 와인들 사이에 우뚝 서게 되었다. 또한 파리의 심판 10주년을 기념하며 열린 French Culinary institute Tasting에서는 끌로 뒤 발 (Clos Du Val, 미국)이 1위, 릿지 빈야드 몬테 벨로 (Ridge Vineyards Monte Bello, 미국)가 2위를 차지하고 샤또 몽로즈 (Chateau Montrose, 프랑스)가 3위를 차지하면서 미국 와인이 재조명을 받았다.


2006년에는 파리의 심판 30주년을 기념하는 와인 테이스팅이 이루어졌으며 타임지는 테이스팅 결과를 두고 "첫 블라인드 테이스팅에 참가했던 많은 프랑스 와인 전문가들은 미국 빈야드가 결국에서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 예상했지만 미국 캘리포니아 까베르네 쇼비뇽이 다시 한번 승리를 거머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라고 평했다. 이로 인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은 지금까지도 많은 와인 애호가들이 애정 하는 와인으로 남아있다.


내가 좋아하는, 그리고 사진으로 남아 내 기억 속에 존재하는 미국 와인 몇 가지를 골라봤다.

(맨 위 왼쪽부터 차례대로)


1. 그리기치 힐스 에스테이트 나파 밸리 샤도네이

Grgich Hills Estate Napa Valley Chardonnay

영화 "와인 미라클 (원제: Bottle Shock)"에 등장하는 화이트 와인, 샤또 몬텔레나를 1위에 올려놓은 와인 메이커가 만드는 샤도네이다. 오가닉 인증을 받은 곳으로 와이너리가 소유한 빈야드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들어지니 원재료부터 최종 산물인 와인까지 와이너리의 세심한 케어가 담긴 와인이다. 상큼한 자두 한 입을 베어 문 듯 산뜻한 산도가 기분을 좋게 한다.


2. 실버 오크 알렉산더 밸리 까베르네 쇼비뇽

Silver Oak Alexander Valley Cabernet Sauvignon

2013년 빈티지의 경우, 까베르네 쇼비뇽을 주 품종으로 하며 메를로, 까베르네 프랑 등이 블랜딩 되어 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전 빈티지는 까베르네 쇼비뇽과 메를로만 블랜딩 되어 있었다. 다른 품종이 섞이면서 밸런스가 더 좋아졌다는 평을 받고 있다. 속이 꽉 찬 느낌이랄까. 서로 다른 빈티지를 비교 시음해보고 싶어 졌다.


3. 끌로 뒤 발 나파 밸리 까베르네 쇼비뇽

Clos du Val Napa Valley Cabernet Sauvignon

모카, 초콜릿, 커피 등의 향이 올라오는 진한 레드 와인으로 앞서 언급한 파리의 심판 10주년 기념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1위를 차지한 와이너리의 와인이다. 입안 가득 묵직한 느낌을 받고 싶다면 마셔볼 만한 와인이다. 보르도 블랜딩 (까베르네 쇼비뇽, 메를로 그리고 까베르네 프랑의 조합) 레드로 프랑스 메독 지역의 와인을 연상시킨다고 한다. 10년 뒤에 다시 마셔봐야 한다.


4. 샤플렛 나파 밸리 샤도네이

Chappellet Napa Valley Chardonnay

개인적으로 멜론향이 올라오는 화이트를 좋아한다. 샤플렛 샤도네이에도 담긴 아로마. 그리고 오크 터치가 과하지 않게 느껴졌는데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미국 화이트가 전반적으로 프랑스 부르고뉴 화이트보다는 강렬한 인상을 주더라) 그래서 더 마음이 갔다. 살짝 올라오는 꽃향도 좋고.


5. 스택스 립 와인 셀러 페이

Stag's Leap Wine Cellars Fay

파리의 심판에서 당당히 1위를 거머쥔 와이너리, 스택스 립 와인 셀러의 까베르네 쇼비뇽 라인 중 하나인 FAY. 해당 와이너리의 와인을 모두 마셔본 것은 아니지만 마셔본 와인들은 다 맛있었다. 보관 상태가 좋은 거도 있고 오랜 시간 음미하면서 마실 수 있었기에 좋은 인상을 남긴 듯하다. 입안 가득 베리류가 느껴지며 단단하면서도 여운도 길고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부드러워졌는데 몇 년 지나면 어떨지 궁금해졌다.


6. 덕혼 나파 밸리 샤도네이

Duckhorn Napa Valley Chardonnay

덕혼 레드도 좋지만 화이트가 예상보다 맛있어서 놀랐었다. 꿀 향과 허브향이 적절히 섞여서 여운이 오래가는 느낌이었다. 프랑스 오크통에서 숙성을 하는데 새로운 오크통 사용 비율이 60% 정도 된다. 오크 터치를 느낄 수 있는 화이트.


7. 쉐이퍼 나파 밸리 TD-9

Shafer Napa Valley TD-9

실버 오크도 너무 좋지만 쉐이퍼에 마음을 더 주는 이유는 아마 메를로 비율 때문일 거다. 레드 블랜드 와인을 마시다가 '아, 이거 맛있는데.' 하면 메를로 비율이 높았다. TD-9 역시 58%는 메를로이고 까베르네 쇼비뇽과 말벡이 섞였다. 검붉은 과실 향에 라벤더와 흙내음이 더해져 매력 발산 제대로 한 레드 와인이다.


8. 샤또 몬텔레나 나파 밸리 샤도네이

Chateau Montelena Napa Valley Chardonnay

파리의 심판 화이트 와인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샤또 몬텔레나. 와이너리의 스타일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화이트로 아로마가 상당히 풍성하다. 산도도 적당하고 꽃향도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그런 화이트다. 세계적인 명성은 저절로 얻어지는 게 아닌 듯하다. 물론 빈티지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서로 다른 빈티지를 마셔본 결과 꽤 일정한 맛을 내는 화이트가 아닌가 싶었다.



영화 미라클 와인을 보면서 프랑스 와인을 마셨는데 (와인이 나오는 영화를 보면 자연스레 와인이 마시고 싶어 진다..) 다시 보게 되면 미국 와인을 마셔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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