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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nduwinetasting Sep 20. 2021

노동주, 와인

mandu의 와인 이야기 및 테이스팅 노트

노동주 하면 시원한 맥주나 땀 흘리고 마시는 막걸리 정도가 제일 먼저 생각나겠지만 와인도 빠질 수 없는 노동주다. 와인은 더 이상 무슨 무슨 날에나 마시는 혹은 분위기 잡으려고 마시는 술이 아니다. 대형마트에 꽤나 크게 자리 잡은 와인 코너를 비롯해 전통시장 내 작은 슈퍼나 편의점에서도 흔히 볼 수 있게 되면서 와인 접근 장벽이 무너지고 좀 더 캐주얼하게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러니 와인도 충분히 노동주가 될 수 있다.


노동주는 노동의 고단함을 씻어줄 수 있어야 한다. 거기에 퀄리티와 착한 가격까지 장착된다면 더할 나위 없다. 만원이면 편의점에서 맥주 4캔, 마트에서 막걸리 2개 이상은 구매할 수 있기에 가격 면에서는 불리한 게 사실이지만 와인 한 병으로 며칠을 마실 수 있다고 생각하면 머 그리 나쁜 딜은 아니다. 스탠더드 와인 한 병은 750ml로 와인 잔에 적당히 (보울이 좁아지기 시작하는 지점까지만 부을 경우) 채우면 6-7잔이 나오고 (어떤 와인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2~3일 내로 소진하면 되니...


야근이든 뭐든 노동이 예약된 상태에서는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은 부담스럽다. 그리고 첫 잔에서 기분을 무진장 업시켜주는 매력 포인트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가령, 답답함까지 다 쓸어버릴 맥주의 시원함과 톡 쏘는 청량감이나 짜증을 날려버릴 막걸리의 달큰함이나 부드러움 같은 그런 요소가 있어야 한다. 나는 시원하게 마시는 화이트나 로제 와인이 제격이라고 생각한다. 맥주처럼 시원하지만 배부르지는 않고 (와인도 많이 마시면 배부르다) 막걸리처럼 달달한 느낌을 간직하고 있는 그런 와인 말이다. 

맨 좌측이 피에르 앙리, 나머지는 제프 까렐 빌라 데 정쥬 로제


최근에 마신 와인 2종이 딱 그랬다. 먼저, 피에르 앙리 장글랑제 알자스 게뷔르츠트라미너 (Pierre Henri Ginglinger Alsace Gewurztraminer)로 화이트 와인이다. 프랑스 알자스 지역의 게뷔르츠트라미너 품종으로 만드는 블랑으로 분명 드라이한 와인이지만 망고, 리치, 패션후르츠와 같은 열대과일 향에서 비롯되는 달달함에 이를 뒷받침해주는 산뜻한 산도로 기분이 좋아지지 않을 수 없는 맛과 향을 뿜어낸다. 한 잔 마시고 와인 스토퍼나 코르크로 막은 뒤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또 마시면 된다. 맛있다고 홀랑 다 마셔버리면 취해서 일을 못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두 번째 와인은 제프 까렐 빌라 데 정쥬 로제 (Jeff Carrel Villa de Anges Rose)다. 로제는 그 색부터가 기분을 설레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노동에 찌든 느낌이 들 때, 특히 엉덩이 한 번 들지 못하고 화장실 가는 거도 참아가면서 일할 때나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일 또는 육체노동으로 두통과 몸살이 오는 싸한 느낌이 들 때는 이를 한방에 정리해줄 와인이 필요하다. 생쑈 (Cinsault)라는 품종으로 만들어지는 자연주의 와인으로 멜론, 복숭아, 딸기 등의 과실 향에 은은한 꽃향까지 잠시나마 노동의 세계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해 준다. 위에서 언급한 와인과 마찬가지로 차갑게 해서 마시면 되고 스크루 캡 와인이기에 보관도 용이하다. 저 날개 달고 잠깐 쉬어가는 타임. 




오늘도 수고한 당신, 와인 한 잔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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