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퇴사를 앞두고 있다.
9월30일에 2년그리고 6개월간 일했던 회사를 떠난다.
2년반동안의 많은 부딪힘이 나를 성숙하고 독립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2
회사에는 내가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대표가 있었다.
좋은 사람이었으나 배울것이 많지 않은 평범한 어른이었다.
이 사람이 아니었으면 나는 여전히 나보다 남을 더 의식하는 사람으로 세월을 보냈을 것이다.
정말 좋은 반면교사다.
3
한창 회사일로 힘들던 도중 우연히 신사임당 유튜브 채널에서 정신과 전문의 정우열 선생님의 영상을 보게되었다. 나의 안테나가 나보다 남을 향해있을때 받는 정신적인 고통을 명쾌하게 설명해준 영상이다.
회사생활 2년반은 그 전까지의 나의 정신적 상태의 결과였다 라는 명쾌한 결론이 나왔다.
4
회사의 대표는 교회에서 만난 사람이다.
비슷한 전공을 했지만 그 전공을 살려 밥벌이를 못하고 작은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입사전부터 적당히 친하게 지냈고 같은 전공을 했던 사람으로 나를 많이 이해하는 모습을 보여줘 의지를 했었다. 그렇게 작게나마 내 삶에 영향을 미쳤던 사람임은 틀림이 없다. 인정하긴 싫지만
5
5년 10년이 지나도 분명 기억에 오래 남을 사람이다.
왜냐하면 내 두번의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이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첫 선택의 기로에서는 끊임없이 나를 쫒아다녀 내 꿈에 대한 부정적인 말을 늘어놓았고 결국엔 포기하게 만든 30%의 지분을 갖고 있다. 거기에 당시의 상황을 해결? 해줘 본의아니게 고맙게 된 아이러니까지 갖고있다.
두번째 선택의 기로에서는 그 영향력이 별것 아니었구나를 깨닫고 난 후 이 사람을 떠날 수 있게 된 것이다.
2년반동안 나는 일을 했지만 동시에 그 사람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경험을 했었다. 탐구할 정도의 정신적 에너지를 쏟은 것은 아니지만 수많은 사건들을 통해 그 사람을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6
이 사람을 통해 나는 나의 성향과 성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고통이 사람을 성장시키듯 이사람과 있는 긴 시간동안 나는 나를 굉장히 많이 돌아보게 되었다.
'가까이서 보면 정말 별볼일 없는 하필 이사람의 말이 나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까?'
그의 성품과 행동이 오히려 나의 거울이 되었다. 그에게 비춰지는 나의 모습이 나에게 직관적으로 비춰졌다.
7
나 자신에게 집중하지 않고 다른사람들을 더 의식했던 세월의 결과가 그를 만난 2년 6개월이다.
8
내게 집중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자신없는 내모습을 보는것 보다 남들이 사는거 보는것 그것이 더 쉬운일이다. 쉬운것만 선택해서 살았던 인생의 교훈이다. 쉬운것 선택해서 쉬울 줄 알았는데 더 고통스럽다.
그것 깨닫고 나서 비슷한 고통이면 차라리 내게 집중한 인생을 선택해서 고통스러운게 낫겠다 싶다.
.
.
.
번호를 써서 정리하면 연대기처럼 정리가 될 줄 알았다.
나는 남들 눈치를 많이 보고 살았던 보통의 한국사람이다.
한국에서 그냥 그렇게 살았더라면 그닥 이상한점을 많이 못느끼고 고통스러워 하며 근근히 살았을텐데
개인주의가 좀더 발전한 유럽에서 살다보니 그리고 남들 눈치 안보고도 잘 살고있는 주위의 유럽친구들을 보고있으니 꽤나 많은 혼란이 있었다.
유럽은 어려서 부터 '개인' 을 배우지만 한국은 '사회성' 을 배운다고 생각한다.
물론 유럽이라고 사회성 없이 개인만 주장하는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남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된다는 철저한 교육을 받는다. 이것은 '배려'의 차원이며 본인의 개인이 중요하면 타인의 개인 또한 중요해 그 '개인성' 을 해치는 일을 절대 하지 않도록 교육한다. 반면에 한국의 교육은 전체적이다. 한국의 '사회성'은 개인의 문제를 다룬다기 보다 전체를 다룬다고 생각한다. 어려서부터 '분위기 해치지 말아라' 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필자의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유독 특별한 한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의 행동을 선생이 지적할때마다 분위기 해치지 말아라, 다른애들이 따라한다, 라며 다그치는 것을 본적이 있다.
또한 필자의 아내는 유치원 선생님이다. 유독 한 아이가 반 전체의 분위기를 흐트려 놓는다 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이처럼 개인보다 전체의 분위기와 환경을 더 생각하는 특징이 있다.
이 '사회성' 은 성인이 되어 실현된다.
우연히 영상에서 문재인 전대통령과 그의 수행원들, 그리고 연예인 공효진씨와 스텝들이 함께 식사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부산영화제 방문 후 영화인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였던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어느 한 중국집이었는데 메뉴를 고르는 과정에서 문화부장관이 '짜장면' 이라고 외치자 옆자리에 있던 공효진 씨가 '모두다 짜장면으로 통일해주시면 될것 같습니다' 라고 한다. 그러자 옆에 계시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저는 해물짬뽕, 아니 장관님이 먼저 짜장면이라고 해버리시면 어떡합니까' 하고 웃으며 다그치던 영상이 떠오른다.
이 모습은 이 영상에서 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아주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식사자리에서 상급자가 메뉴를 선정하면 부하직원들은 그보다 비싼 메뉴를 주문하면 안되고 같은 메뉴이거나 더 싼 메뉴를 선택해야 하는 '사회성' 이 실현되고 있다.
또 하나의 광고가 생각난다. '모두가 예 라고 할때 아니오 라고 하는 용기' 라는 슬로건을 가진 광고였는데 이 광고도 한국의 사회성은 개인보다 전체적인것을 중요시 여긴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한국의 '사회성' 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곳은 다름아닌 교회라고 생각한다.
'신앙' 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교인들이 한마음으로 같은 행동을 하는곳. 교인 모두가 같은 교리교육을 받고 같은 봉사를 하며 같은 생각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교육하는 장소. 한국사회에 교회는 한국 국민들의 삶속에 뿌리깊게 영향을 주고 있어 그 영향력이 교회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회성 이 중요한 분위기에서 남들의 눈치를 보며 사는것은 아주 자연스럽다.
동창회에서 소개팅에서 나보다 남이 어떤 사람인지를 기준으로 자신을 판단한다. 그걸 나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서로들 나를 자랑하고 과시한다. 아이러니 하게 순수한 나를 자랑하는게 아니라 '남들이 판단할 나' 를 자랑한다. 타인의 판단기준에 나를 세워놓고 나를 만들어 간다. 개인의 나 는 없고 사회의 나 만 남는다. 그래서 남들의 판단 기준에 내가 충족되지 못할때 자괴감이 생기고 우울증이 생긴다. 한국 사회는 이미 그런것들이 만연해 있다.
남들이 보기에 내가 어떻게 살았으면 좋을까 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가 더 중요함을 깨닫는 요즘이다. 한국의 '사회성' 에서 헤어나오고자 발버둥 치고 있다.
나에게 오롯이 집중하는 '개인' 의 삶을 더 살고자 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