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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te Mar 10. 2024

빛 좋은 개살구

샤또 팔머 1992 빈티지

와인이 참 인생과 비슷한 점이 있다는 것을 와인을 보고 배운다. 사람은 다 똑같지만 특히 남자일 경우 이 비유가 찰떡같이 맞다. (나는 남자다.)


필자는 다른 매거진에서 훌륭한 어른에 대한 언급을 한 적이 있는데 훌륭한 어른을 만나는 것은 잘 숙성된 올드빈티지 와인을 만나는 것과 같을 수 있다. 인간도 와인처럼 잘 숙성돼야 한다.


잘 숙성된 와인을 마신 소믈리에들은 이렇게 말한다.

‘처음에는 오래 숙성된 한원취(오래된 숙성 와인에서 나는 오래된 불쾌한 향)가 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와인이 공기와 접촉해 한원취가 사라지고 숨어있던 과실의 향이 나타난다. 잘 숙성된 와인은 그 과실향 뒤에 복합적이고 오묘한 맛과 향이 나며 그 다채로움은 그 와인의 가치를 말해준다 ‘


잘 숙성되지 못한 와인의 경우 오픈을 하고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 불쾌한 향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번의 내가 경험한 경우가 그렇다.


Chateau Palmer는 보르도의 3등급 그랑크뤼 등급의 와인이다. 같은 지역에서 생산되는 샤또 마고의 그늘에 가려 항상 2급 취급을 당하지만 마고지역 전체 중 2등급에 비견할 정도로 항상 좋은 평가를 받는 와인이다.


어떻게 저렇게 선물 받은 이 와인을 기대감을 품고 오픈하였다. 올드 빈티지라 코르크가 부서질까 아소 오프너로 조심스레 오픈하려 캡슐을 열려던 찰나,

와인이 코르크 바깥까지 샌 흔적을 발견했다. 이는 산소가 와인병을 왔다 갔다 했다는 증거이다. 와인은 이미 산화되어 그 생명을 잃었다는 뜻이다...

바깥가지 축축해진 와인 코르크

그러나 희망을 품고 침전물을 걸러내기 위해 디캔팅까지 하고 와인 색깔을 보았다.

와인의 바깥뿐 아니라 중심부를 빼고 진한 갈색이 깊숙이 침범하였다. 이런...

향을 맡으니 한원취에 깊이 젖은 종이냄새가 코를 진동했다. 상했구나...

경험이 많이 없으니 디캔터 안에서 1시간 이상을 두었다. 과실향은커녕 더 심한 냄새가 진동을 하는 것이다. 테이스팅을 해보니 텁텁한 종이 젖은 맛, 알코올맛, 바디감은 일절 없는 빈 깡통 같은 맛과 향이었다.

불쾌했다.

이 좋은 와인도 잘못된 숙성을 거쳐 이렇게 상하게 되었구나...


잘 숙성된 와인에는 까다로운 조건이 전제된다.

1. 16 정도의 온도를 항상 유지하고

2. 햇빛은 들지 않아야 하며

3. 이상적인 습도는 60%~70% 사이어야 하고

4. 항상 가로로 눕혀 놓아야 한다


내 와인의 경우에는 온도가 높아 와인이 끓어 넘친 경우에 속한다. 이는 실제로 와인이 끓은 것이 아니라 와인의 보관 과정에서 높은 온도에 방치되었을 경우 와인이 끓었다(영어론 Cooked wine)라고 한다. 이렇게 끓은 경우 코르크가 끝까지 젖어 산소가 투과하기 아주 좋은 환경이 되어 와인이 상하거나 식초가 되는 경우가 있다.


사람을 만나다 보면 특히 어른들, 잘 숙성되어 좋은 향을 내는 사람이 있는 반면 식초나 부쇼네 같은 향을 내는 사람이 있다. 사람도 온도가 너무 높아 끓어 넘치게 되면 상한 모습이 되기도 한다. 숙성에는 철저한 자기 관리가 수반된다. 지금 처한 환경이 자신에게 맞는지 지금 어떤 생각을 품고 세상을 살아가는지 인생과 사람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말이다.


와인은 참 인생과 비슷하다. 마시면 마실수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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