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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버톡 주인장 Dec 24. 2023

연명의료, 알 것도 같고 모르는 것도 같은...

생각하기 싫어도 원치 않아도, 그런 순간이 온다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다고?

몇 년 전, 구십이 훌쩍 넘은 직장동료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장례식장은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의 안부와 간간이 들리는 웃음소리로 가벼운 분위기였다. 상주인 동료는 갑자기 아버지가 쓰러지셔서 119를 불렀는데 산소호흡기를 다는 순간 ‘낭패구나!’ 싶었다고 한다. “호흡기 한번 달면 법적으로 뗄 수가 없잖아. 돌아가시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하는 상태가 계속 될까 봐 겁이 더럭 나더라고.” 다행히(?) 아버지는 며칠을 못 버티시고 임종을 맞으셨다. 자식들은 내심 안도했을 것이다. 


고령의 부모님이 아니더라도 소생 가능성 없는 환자에게 연명의료를 지속하는 건 당사자나 보호자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연명의료는 살릴 수 없는 환자의 임종 과정을 늘리는 의료행위라고 보면 된다. 예전에는 가족이나 당사자가 원해도 연명의료를 한번 시작하면 중단하기 어려웠다. 의료 행위를 중단해서 환자가 사망할 경우 의료진이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누가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할 수 있느냐도 예민한 문제였다. 반면, 의학과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생명을 연장시키는 다양한 처치가 가능해져서 죽기는 더 어려워진 게 현실이다.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연명의료계획서 대상은 임종기 환자로 제한

그래서 등장한 것이 2018년 2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일명 연명의료결정법)’이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말기환자의 연명의료 중단의 결정과 조건을 법을 통해 정해놓은 제도로, 환자 본인의 의사와 의료진의 전문적인 판단 하에 연명의료를 합법적으로 중단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여기서 연명의료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하는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수혈, 체외생명유지술, 혈압상승제 투여 등 치료 효과는 없고 단지 임종 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것을 말한다.


연명의료결정제도의 핵심은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이다. 연명의료계획서란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 및 호스피스에 대한 결정사항을 문서로 남기는 것인데, 먼저 말기에 접어든 환자 본인이 의료진에게 연명의료에 대한 의사를 밝히면 담당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 1인의 검토를 거쳐 대상 여부가 결정된다. 대상은 말기환자 또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로 엄격히 제한된다. 담당의사는 환자에게 의학적 상태와 연명의료 및 호스피스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하고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해서 환자의 서명을 받는다. 이후 환자가 임종과정에 진입하면 담당의사는 연명의료계획서에 따라 연명의료를 이행하지 않거나 이미 받고 있는 시술도 중단할 수 있다.


환자가 결정, 의식이 없을 때는 가족 2인이 대리

뇌출혈이나 식물인간 상태, 중증치매 등 임종기 환자가 자신의 의사를 결정할 수 없는 상태인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럴 때는 2명 이상의 가족이 평소 환자의 의사를 대신 확인해 연명의료 중단 결정을 할 수 있다. 이 경우 가족의 범위는 19세 이상의 자녀와 손자손녀, 배우자, 부모와 조부모이며, 해당자가 없는 경우에는 형제 자매도 가능하다. 환자가 의사 결정 능력이 없으며 환자의 의사를 대신 확인할 수도 없다면 가족 전원의 합의로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할 수 있다. 이때 가족은 19세 이상의 자녀, 배우자, 부모로 한정한다. 


건강할 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면 도움이 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말 그대로 사전에 연명의료에 대한 의향을 밝혀 놓는 제도로 인터넷에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https://www.lst.go.kr/ 을 검색해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할 수 있는 가까운 기관을 찾아가서 작성하면 된다. 생명과 관련된 중요 사안이니만큼 온라인으로는 등록이 안 되고 번거롭더라도 기관을 방문해서 상담사의 직접 설명을 듣고, 작성, 등록해야 한다. 이렇게 등록을 해놓으면 본인이 의사 결정을 하기 어려운 연명의료의 상황이 생겼을 때 의료기관에서 조회를 해서 본인의 의사를 확인할 수 있다. 


환자 포기가 아니라 호스피스로 방향 유도

연명의료결정제도는 연명의료 중단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으며 가족이나 보호자 대신 환자 본인의 결정권을 존중한다는 의미가 있다.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고 좋은 죽음을 맞기 위한 취지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생명과 관련된 사안이니만큼 윤리위원회 설치 등 복잡한 서류 작업과 절차가 요구되어 현장에서 시행되기는 불편함이 많다. 또한 막상 임종기에 접어들면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을 망설이거나 거부감을 보이는 일도 적지 않다. 


연명의료결정제도는 환자를 포기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연명의료 대신 고통을 완화하고 편안히 생의 마지막을 보낼 수 있도록 호스피스로 방향을 바꾸는 것이 원래의 취지다. 의사결정 능력이 있을 때 논의해서 이성적으로 결정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이상으로 연명의료결정제도를 살펴봤다. 법적, 의료적 용어를 쓰다 보니 안 그래도 딱딱한 내용을 더 어렵게 설명한 것 같다. 다소 단순화시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다. 막상 중증환자가 되었을 때는 결심하기도 쉽지 않고 자식들 부담도 덜어줄 수 있다. 사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당사자가 의사 결정이 불가능할 상황일 때 더 의미가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쓰려고 해도 막상 등록기관을 일부러 찾아가기는 쉽지 않다. 규모가 큰 병원에 갈 일이 있다면 그 병원이 등록기관일 가능성이 높으니 그 기회를 활용하자. 나도 작년에 병원신세를 크게 진 적이 있는데, 그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 이번 기회에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사이트에서 내 정보를 확인하니, 잘 등록되어 있었다. 


*소생 가능성 없는 와상환자 부모님이라면? 의식이 있다면 본인이 뜻을 밝혀야 한다. 의식이 없다면 가족 2인이 평소 부모님의 의사를 대신 전하면 된다. 대다수 부모는 ‘누워서 기저귀 차고 살기 싫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입으로 먹지도 못하는데 억지로 살면 뭐하냐’고 하셨을 확률이 높다. 의식이 있는 환자에게 알리지 않고 가족이 대신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할 수는 없다. 


*연명의료를 중단했는데 오래 산다고? 연명의료를 중단한 환자에게도 통증완화, 영양분, 물, 산소 공급은 유지하도록 되어 있다. 영양분 공급은 또다른 문제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대다수 와상 상태인 노인 환자들에게 소위 ‘콧줄’로 불리는 L튜브를 통한 영양공급이 이뤄지면 대소변 관리와 심한 욕창 등이 발생, 불필요한 고통이 연장되기도 하는 것이다. 와상 상태의 임종기 환자에게 L튜브를 꽂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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