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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버톡 주인장 Jan 08. 2024

나의 늙어감을 인정한다는 것

몸은 늙는데 마음은 왜 그대로일까?

지난 연말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 모임은 근황 토크로 시작되었다. 후배 한 명이 최근 엄마가 허리수술을 받고 입원 중이라 걱정이 많다고 했다. 의자 위에 올라가서 높은 곳에 있는 물건을 꺼내려다가 그만 의자가 뒤로 빠지면서 그대로 주저앉으신 것이다. “아니, 엄마 나이가 몇 인데, 왜 위험하게 의자에 올라가고 그래!!” “평소에도 맨날 그렇게 했는데 여태 아무 일도 없어서 그랬지 뭐.” 아픈 엄마에게 타박을 하고 보니 미안해졌다는 후배는,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명언을 남겼다.


어제 했다고 오늘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자!


그건 특히 우리 엄마를 위한 문장이기도 하다. 얼마 전 밤새 눈이 제법 내린 다음날 엄마와 버스를 타야 할 일이 있었다. 다행히 날이 푸근해 눈이 녹기 시작했지만 조심 또 조심해야 하는 상황. 평소라면 나와 손 잡을 일이 없는 엄마가 내 손을 꽉 쥐고 걸었지만, 그것도 잠시. 마른 길바닥이 나오니 바로 내 손을 탁! 뿌리치시고(정말 무슨 원수의 손이라도 되는 양 야멸차게 뿌리친다) 혼자 걸어간다. “엄마, 손을 잡아. 그러다가 넘어진다고!” 내 목소리 톤이 높아지면, 엄마도 질세라 한 마디 하신다. “걱정마라. 내가 여태까지 한번도 안 자빠지고 잘 걸어다녔다” 

아, 진짜! 오마니, 어젠 안 넘어졌지만 오늘은 넘어질 수도 있다고!! 입밖에 내봐야 동의하실 리 없으니 속으로 외칠 밖에.


“옆집 할머니는 노인정 생전 안 나가더라. 나도 이제 발 끊으련다. 가봤자 노인들만 앉아서 눈만 껌뻑이며 텔레비전이나 보고 있으니 도움되는 거 하나도 없어. 노인들이 할 일이 없어서 큰 일이야.” – 본인은 노인이 아니라는 전제의 유체이탈 화법 구사. 


“버스 기사가 힐끔거리며 보더니 할머니 어디 가시냐고 물어보는 거야. 내가 내릴 데 모를까 봐 신경쓰는 눈치야. 내릴 데 모르면 버스를 안 타야지. 그것도 모르고 탔을까.” – 혼자 버스 타신 거의 마지막 기억을 아직도 소환하며 언짢아하심.


“날만 풀리면 조계사고 불광사고 내 마음대로 다닐 거야. 네가 안 데려다줘도 아직 그 정신은 있다.” – 지난 가을 혼자 조계사에 가셔서 깜짝 놀라게 하시고는 귀갓길을 잊어버려 작은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으나, 아무튼 지금도 자신감 뿜뿜이다. 


엄마의 몸은 하루하루 늙어가는데 왜 마음은 다른 세계에 있는 걸까?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는 게, 타인의 도움을 받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그냥 구순하게 절에 가고 싶으니 좀 태워줄 수 있냐고 묻고, 길이 미끄러우니 손을 잡아달라 하고, 버스 기사가 친절하다고 생각하면 되는 일 아닌가. 


하긴 부모가 자식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일 수도 있겠다. 오랫동안 자신이 관계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는데 이제는 입장이 바뀌어 자식의 말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 때로는 자신의 무용함을 인정해야 할 수도 있을 터이다. 그러나 어쩔 도리 없는 일 아닌가. 인간이 평생을 자신이 무얼 하는 사람인지 존재증명하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이를 많이 먹으면 몸이 아프고 치매가 오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내가 오래 살아서 큰일이다. 이렇게 하는 일도 없이 밥만 축내고 텔레비전이나 보면서 세월을 보내니, 짜증스럽다.” 엄마의 단골 멘트를 들을 때마다 답답하고 안타깝다. 구십 나이에 크게 아픈 데 없는 일상이 얼마나 고마운지 엄마는 모르는 걸까? 한편으로 엄마의 건강이 내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나는 감사하고 있는 걸까? 


흔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들 한다. 60 중반을 향해 가는 나의 결론은 ‘그럴 리가!’다. 젊다고 착각하지 말고 내 몸에 맞춰 마음도 행동도 함께 잘 나이 들어야 한다. 지하철 들어오는 소리가 나도 급하게 서둘면 안 되며, 보행신호가 깜빡이는데 길 건너겠다고 횡단보도로 뛰어들어도 안 되며, 낮은 계단 턱도 조심해야 하고, 초행길 야간운전도 삼가해야 한다. 자리에서 일어날 때면 두고 나오는 건 없는지 둘러봐야 하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니 휴대폰 메모장과 일정표를 내 몸처럼 섬겨야 한다. 내 기억을 믿고 함부로 주장하지 말 것이며 타인의 입장을 존중하고 무탈한 일상에 감사해야 한다. 


어제 했다고 오늘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어제 별일 없었다고 오늘도 평온하리라는 생각은 지금 당장 아웃이다. 몸과 함께 내 마음도 잘 단속하며 새해를 맞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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