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강아지스러운 이름은 지어 주지 않겠다는 다짐 하에 부모님의 성함 한 글자씩 따서 지어 준 이름
‘복곤’
복곤이와의 첫 만남을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나는 '강아지' 라면 그저 어떤 종류든 예뻐하지 않고서는 못 배겼던 사람이다. 하지만 주변에서 종종 보게 되는 그 언젠가의 마지막을 감당해낼 수 없는 두려움이 더 컸었기에 강아지를 직접 키울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러다 내가 20살이 되던 해, 부모님은 강아지 키우는 것에 대해 줄곧 강력히 호소해 왔던 동생의 목소리에 두 손 두 발을 드셨고 새 식구를 맞아들이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을 보이셨다.
그 무렵, 큰 이모네가 키우고 있던 강아지 '몽실' 이가 새끼를 낳았고 이 아이들 중 한 마리를 데려 오기로 결정이 났다. 몽실이가 낳았던 총 여섯 마리의 새끼들 가운데에서도 외양이 빼어났던 아이가 있었던 반면, 덜 빼어났던 아이들도 있었다.
덜 빼어났던 아이 중 하나가 지금 우리 ‘복곤’이었다.
집으로 데리고 온 생후 3개월의 복곤
집으로 데리고 온 생후 3개월의 복곤2
복곤이를 처음 마주했을 때 그는 태어난 지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았던 핏덩이였다. 시츄임에도 불구하고 시츄 트레이드 마크인 눈 가 갈색 색소가 많이 부족했고 유난히 자그마한 체구에 털도 부족했던 터라 ‘못 생겼지만 자꾸 보게 되는’ 아이였다. 그를 데리고 돌아가는 길의 차 안에서는 너무나 작아 만지면 부서질까, 다칠까, 노심초사 그 자체였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이 조그만 아이가 나를 살게 하는 삶의 중요한 원동력이 될 줄이라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울타리 탈출을 감행하던 복곤
우여곡절 끝에 집으로 온 그는 한동안 작은 울타리 안에서 지내게 되었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 이 울타리는 그가 품었던 세상을 향한 호기심과 흥미를 실현해내기에는 그저 비좁았던 제약이었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울타리 위를 타고 탈출을 감행하던 복곤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여전히 작디작았던 몸으로 말이다. 그의 도전은 며칠간 계속되었으며 아마도 그가 세상에 태어나 가장 처음으로, 가장 많은 힘을 들였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모습이 너무나 대견하기도 하고 웃겼지만 한편으로는 울타리 안에서 그가 느꼈을 답답함이 예상되어 미안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 가족의 복곤이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은 확장되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