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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믿음이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믿고 보는) 박상영, 『믿음에 대하여』후기 


-이렇게까지 이해되지 않는 상황 앞에서도 나는 정말 왜 웃고 있지

-내가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관한 것들. 내가 내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 된 게 언제부터였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견딜 수 없이 분노에 찬 상황에서도 별것도 아닌 말에 입을 막아버린 은채. 그 모습을 보며 한영은 지금껏 은채가 겪어온 시간과 지금 겪고 있는 압박에 대해서, 사원들에게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새삼 알게 되었다.

-눈은 손바닥에 닿자마자 녹아 없어졌다. 순간 나는 영원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또다시 믿음에 대해서 생각했다. 언제고 깨어지고 흩어져 버릴 유리조각 같은 믿음에 대해서. 한영과 황팀장은 강아지처럼 신나하며 웃고 있었고, 나는 카메라의 뷰파인더에 눈을 갖다댔다. 뺨으로 물 한줄기가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눈이 짰다.

『믿음에 대하여』中


"인간이 끊임없이 숭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도달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욕망이 아닐까(백은선,『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中)".『믿음에 대하여』에서 말하는 믿음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그중에 하나가 아닐까 생각했다. 방식은 다르지만 우리는 저마다 하나 이상의 믿음을 가지고 산다. 작게는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믿음에서 크게는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까지. 믿음은 끊임없는 자기 암시를 가능하게 하고, 이를 통해 어떤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쉽게 동요되지 않게 하는 힘이 있다. 무엇이든, 믿고 있는 사람은 이 사회에서 대체 불가능한 소속감과 그로 인한 안정감을 느끼며 이러한 태도는 자아실현으로 이어진다. 그런 면에서 믿는다는 것은 현재를 볼모 삼아 미래를 기획하게 만드는 미래 지향적인 태도인 것이다. 이러한 지점에서 우리가 숱하게 말하는 믿음이 사실상 타인에 대한 불신을 인정하는 데에서 발현되는 가치임을 생각하게 됐다. 과한 부정은 긍정이라고 하는 것처럼 어떤 것에 대한 유독 강한 믿음은 그게 상황이 되었든, 사람이 되었든, 정체성이 되었든, 개인의 결핍된 면들을 드러내기 마련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믿음에 대하여』에서는 이러한 믿음의 양상을 대유행 질병인 '코로나'를 중심으로 조금 더 내밀하게 그려낸다. 남준과 찬호, 한영과 철우. 이 두 게이 커플이 성 소수자로서 여전히 이 사회에서 갖는 계급적 취약함이 코로나라는 상황적 취약함과 맞닿으면서 생기는 여러 가지의 사건들을 서술한다. 그러면서 현재의 불확실함을 담보로 계획한 미래와 그 속의 사랑이라는 게 얼마만큼의 지속가능성을 지니는지에 대해 일상적인 모습과 언어로 드러낸다.

매번 서로에 대한 결속과 안정성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던 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주 믿음과 멀어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더욱더 함께하고자 했고 가까워지려 최선을 다했다. 누구 하나 구태여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으나 애초에 그들 관계의 시작이 누구보다 불안정했다는 것을 서로가 너무 잘 알고 있었으므로. 이들의 모습을 통해 '믿음'이라는 가치 하나만 내세워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미래의 숱한 시간을 약속하는 데 개인이라는 세계가 얼마나 연약하고 복잡한지를 섬세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확실한 것보다 확실하지 않은 게 더 많은 이 시대에서 믿음을 이야기하는 일이, 때로는 확실해져 가던 것마저 불확실하게 만드는 태도는 아닐까. 하지만 그마저도 이야기하려 들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살 수 있을까. 하는 두 가지의 생각이 공존했다. (ps. 개인적으로는 『대도시의 사랑법』 다음으로 인상 깊게 읽었다. 박상영 작가님이 또 '박상영'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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