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보니 글이 되었고, 그런 글이 좋아서 썼다

작가, 그 이름에 대한 유년시절로부터의 추적


사실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명확하고 커다란 계기는 없다. 다만 어느 불특정 한 시점에, 무언가 되어 있을 나의 모습이 작가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줄곧 해 왔다. 마침표가 찍히면 그 문장이 완성되고 마는 것처럼 작가로서 삶을 마침표로 두고 있던 나는, 어쩌면 계기라는 게 필요 없을 만큼 오래전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이것은 나의 유년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생이 되면 자기 글의 시발점이기도 한 '일기'를 쓴다. 비록 글보다는 그림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는 하지만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부모님의 숙제이기도 한 일기가, 나에게는 그 당시 핫했던 애니메이션인 '라이온 킹'을 보는 것만큼 즐거웠던 일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주제로 글과 실을 쓰고 거기에 맞춰 그림까지 그려 넣은 순간 여느 예술가 부럽지 않은 만족감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중학생이 되면 더 이상 의무적으로 제출할 일기가 없어진다. 이에 몇 달은 자유로웠다. 그러나 이 자유로움은 숙제로부터의 단순한 해방이기보다, '해야 한다'라고 규정되어 온 학교 숙제의 관습이나 강압성 그 자체부터 벗어난 해방에 더 가까웠다.


따라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늘 해오던 것을 하지 않아서 해소되지 못하던 욕구의 일부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내심 답답했던 것이다. 일기라는 것을 원해서 쓰기 시작했던 것은 아니지만, 뭣도 모르고 약 6년의 시간을 기록했던 까닭에 어느새 내 일상이 되었다는 것을 중학교 2학년에 올라갈 때 즈음 깨달았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아마도

시키는 이 하나 없었음에도, 그럴듯한 일기장을 하나 만들어서 나의 일과를 적기 시작했던 것이 말이다. 당시 내가 쓴 글은 단순한 일상이 아니었다. 소위 '베스트 프렌즈'인 이들의 이야기, 좋아하던 아이의 이야기, 연예인 이야기, 동생의 이야기 등이 기록된 그 시절 나의 인생이었다.




그리고 지금, 여기의 나는 여전히 내 인생을 기록하는 중이다. 내가 지금까지 글을 쓰는 가장 큰 이유는 시간이 너무나 빠르기 때문이다. 이 속에서 정신 차리고 남기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고 결국에 남는 것은 하나도 없다. 나는 나와 가족, 친구 더 나아가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세상의 찬란함을 남기기 위해서 글을 써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장맛비가 내리면 비의 무거움을 못 이겨 글을 쓸 것이고 날이 밝으면 햇살의 눈부심을 못 이겨 글을 쓸 것이고 달이 밝으면 중력을 못 이겨 글을 쓸 것이고 비 오는 날 마시는 술이 맛있어서 글을 쓸 것이며 유난히 보고 싶은 얼굴이 떠오를 때도 글을 쓸 것이다.





1월의 오후12시 풍경


누군가는 말한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남는 건 '사진과 글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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