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당연해야 할 관계는 어디에도 없다.
사람들은 대개 본능적으로 편안함을 추구한다. 편안하면 편안할수록 생각하려 하지 않고 의심하려 하지 않는다. 마치 자신의 형태를 본뜬 몰드에 몸을 꼭 맞추고는 움직이려 하지 않은 채, 본떠져 있는 그대로를 좇는 모습이다. 특히 인간관계에서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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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저마다 임의대로 만들어 놓은 편안한 인간관계의 틀을 지닌다. 보통은 오랜 시간을 함께 공유해 온 이들에 의해 구조화된 것이다. 세월만큼이나 그 틀의 깊이는 깊다. 그러나 강도는 그렇지 못하다. 다른 말로 하자면 언제든지 여러 방향으로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알고 지낸 세월이 많다고 해서 혹은 깊이가 깊다고 해서 그 자체로 온전할 관계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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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알고 지낸 게 몇 년인데, 당연한 거 아니야?`라고 너무나 당연하게 말을 한다. 그러나 `알고 지낸 게 몇 년`이기 때문에 당연할 수 없는 것이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이것은 오래된 사람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그래야만 한다. 이들과의 관계야말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것보다 훨씬 예민해져야만 한다.
어떤 문제에 `예민`해진다는 것은 곧 그것이 나에게 중요한 문제라는 사실을 방증한다. 내 삶과 직접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안전에 예민해지고 끼니에 예민해지고 돈에 예민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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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누군가`에게 예민해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아마도 두 가지의 갈래에 들어설 수 있다. 첫 번째는 히스테리를 부리거나 신경질 내는 행위로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의미하며, 두 번째는 사전적인 정의에 따라 `무엇인가를 빠르게 느끼고 파악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그리고 후자가 내가 생각하는 오래된 사이에서 필요한 감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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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좋아한다던 말과 행동을 하기보다도 싫어한다던 말과 행동이 무엇인지를 곱씹어 보는 일, 잘 먹는 음식을 챙기는 것보다도 잘 못 먹는 음식이 무엇인지를 곱씹어 보는 일 나아가 언제 가장 행복해했는지를 생각하기보다도 언제 가장 힘들어하고 상처 받아했는지를 곱씹어 보는 일에 관한 것이다.
누군가에게 예민하다는 건 무엇보다 그 사람의 취약함에 대해 먼저 생각하고 챙길 줄 안다는 것이다. 오래된 사이일수록 상대방이 싫어하는 것을 최소화하고 좋아하는 것을 최대화함으로써 세월의 깊이에 맞는 '안정성'과 '신뢰성'을 보장하고자 하는 노력이 동반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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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곳에만 고여 있는 물은 언젠가 썩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겹겹이 쌓인 세월의 편안함에 도취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세월이 또 다른 흐름을 타고 보다 견고하고 단단한 형태로 나아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되돌아보고 반성하고 노력해야 한다. 노력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나이뿐이다.
제가 참여한 공저시집입니다. 나이도, 성별도, 지역도 모두 다른 6명의 작가들이 6가지의 개성으로 엮어낸 사랑,청춘,인간관계, 삶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어요! 하나하나 진심을 담아 쓴 시 입니다. 홈페이지에 대표시들이 수록되어 있으니, 자유롭게 보시고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