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사람의 취약함에 관하여

몸 근육뿐만 아니라 마음 근육까지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어렸을 적 나의 꿈은 부모님보다 딱 하루 전날 죽는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부모님이 없을 미래의 '언젠가'가 자신 없었기 때문이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 중에서도 가까운 사람의 부재를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해야 한다는 사실이 늘 나를 숨 막히고 힘들게 했고 그러다 생각한 게 고작 부모님보다 먼저 죽는 것이었다. 너무 많은 차이가 나면 안 되니까 딱 하루 간격으로 맞춰 죽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가끔씩 이런 소리를 할 때면 엄마에게 등 한 대씩을 맞곤 했다. 그리고 어렸을 적의 꿈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지금도 크게 달라진 건 없다. 달라진 게 있다면 대상의 폭이 넓어졌다는 것이다. 종종 어쩌다 죽음을 생각하게 될 때면 부모님 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모든 대상들보다 며칠만 먼저 죽고 싶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내가 얼마나 취약하고 이기적인 사람인지, 다시 한번 깨닫는다.




성숙하다는 것은 다가오는 모든 생생한 위기를
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것을 의미한다 -프리츠 쿤켈


나에게 일침을 가하고자 만들어진 것 같은 프리츠 쿤켈의 명언에 따르면 나는 완전히 미성숙한 사람이다. 줄곧 주변 사람들보다 먼저 죽고 싶었던 이유는 내게 먼저 올 수도 있는 그들의 죽음과 부재를 나는 도저히 직면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죽음과 부재뿐만이겠는가.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일련의 중대한 사건들에 있어 나는 회피할 수 있는 한 회피하려 하고 어쩌다가 직면하게 될 때는 있는 힘껏 불안해한다.


올해로 27살이 되는 내 인생에 있어 나름대로 성숙한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스쳐가는 사건사고들이 하나하나 있을 때마다 '거봐, 너는 아직 성숙해지려면 멀었어! 이 미성숙한 어른 아이야.'라는 세뇌를 당하는 느낌이다.




문제의 시츄

사실은 언젠가 밤에 우리 집 시츄의 호흡 문제로 24시간 동물병원에 다녀왔다. 올해에 7살이 되어 어느덧 중견 포스를 풍기는 프로 반려견으로 진화했지만 그동안 자잘자잘한 질병 치레를 제외하고는 꽤 건강한 편이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말로 형용할 수도 없었던, 그저 충격적이었던 이벤트였다. 밥도 잘 먹고 산책도 잘 다녀온 저녁에 늘어져 자고 있다가 갑자기 일어나서는 별안간 호흡곤란 증상을 보였다. 무언가 목에 걸린 것처럼 호흡은 점점 가빠지는데 걸린 것이 없어 뱉어낼 것도 없었기에 그야말로 정말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사이에 나를 제외한 가족들이 바빴다. 동생은 증상에 대해 부리나케 인터넷 검색을 했고 엄마는 병원을 알아보며 전화를 했다.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한시라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던 이 둘 사이에서 나는 몇 초간 벙쪄있을 뿐이었다. 내 앞에서 호흡이 가빠 어찌할 바 모르던 그 작은 몸의 개를 마주한 순간, 끝도 없이 사로잡힌 두려움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이 개가, 우리 집 시츄가 당장 어떻게 되어버리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나는 한 치 앞만을 내다보며 불안에 떨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느 누가 인간을 자유 의지에 의해 살아가는 존재라고 말을 했는가? 물론 마음만큼은 이미 동물병원에 데려가 상담을 받고 치료까지 끝낸 상황에 놓여 있었으나 정신 차리고 보니 나는, 우리는 엄마가 발견한 24시 동물병원으로 가기 위한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난리 끝에 결국 24시간 동물병원을 도착했다. 말만 들어도 세상에 빠른 치료가 시급한 동물들은 다 와있을 것만 같아 초긴장 상태를 불러일으키는 '응급진료'의 순번을 기다려야만 했다. 그리고 약 1시간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다. 그 시각에도 병원에는 다양하고 많은 반려동물과 주인들이 있었다. 다들 각자의 급한 사정이 있어서 왔겠지만 모두가 차분히 진료와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속에서 나만 또 혼자 내적 유난스러움의 끝을 달리며 안절부절못하는 보호자가 되었다. 혹시라도 이 밤이 우리 가족 전체에게 있어 유독 차갑고 무서웠던 가을의 한 기억으로 남아 버릴까봐 몇 시간을 기다려도 좋으니 무사히 이 밤만은 넘기게 해 달라며 간헐적으로 믿고는 했던 신들을 불러 모아 기도를 했다. 냉탕과 온탕을 몇 번씩 번갈아가며 들어간 밤이었다.



집에 와서 피곤한 시츄

그렇게 안전부절하며 기다리다 보니 언제 숨을 못 쉬었냐는 듯, 지겨운 병원을 나가서 놀고 싶다는 표정을 한 우리 집 시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안정된 호흡을 찾은 모습에, 다행히 당장 발견되는 위험한 증상은 없다고 하는 말에 사건은 일단락됐다. 그러나 집에서 동물병원에 가기까지, 그 주변에 정처 없이 휘날렸던 마음들을 한데 모으기 시간들이 필요했다.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는 막연하게 불안해했다. 불안해할 수 있었다. 과거 내 곁에 있던 엄마와 아빠는 여전히 젊었고 건강했으니까. 그리고 나는 그들 밖에는 가장 소중한 존재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미래가 걱정은 되지만 막연하게 상상하고 막연하게 불안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안다.


시간은 흘렀고, 흐르고 있고, 흐르기 때문이다. 그 사이 나는 아주 꾸준히 나이를 먹어왔고 우리 집 시츄를 포함한 소중한 대상들이 여럿 생겨버렸다. 누군가 그랬다. 세상에서 가장 두려움이 없을 사람은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라고. 그러니까 아이러니하게도 가진 것이 많을수록 두려움이 많아진다는 소리이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약간 아쉽지만) 자본을 제외하고는 꽤 가졌다고 생각하는 나는 필연적으로 잃게 될 것들이 많아 때때로 너무나 버겁고 힘이 든다. 언제쯤 프리츠 쿤켈의 명언 앞에서 '맞아, 나도 지금에서야 비로소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었지.'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매도 많이 맞으면 '맷집'이라는 것이 생기고 운동도 자주 하면 '근육'이라는 것이 생기듯 '어쩔 수 없는 것들'이라고 불리는 일들의 반복 속에서는 언젠가의 위기에는 담담해질 수 있는 '담력'이 생길 것이다. 생겨야만 한다. 이것은 곧 앞으로 내가 지켜내야 하는 것들에 관한 미래지향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틈만 나면 도망가버리기에는 이제 스스로 책임지고 직면해야 할 문제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는 작년보다 행복한 일이 조금 더 많기를(단단해지더라도 미처 다 확보하지 못한 행복은 보상받고 단단해지고 싶다. )





가장 최근(?)이라고 할 수 있는 브런치 글을 뒤로하고, 그동안 좀처럼 글을 쓰고자 했던 의지들이 생겨나지 않았던 나날들이라 본의 아니게 휴먼 계정에 진입해있었습니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그래도 꾸준히, 다양한 글들을 올렸고 올리려 노력해왔는데 이번에는 많은 게으름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상 제가 브런치 내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작가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제 계정을 구독해주시고, 또 자주 봐주시던 분들께 인사 겸 안부를 남기고자 글을 덧붙입니다.


앞으로는 조금 더 머리를 굴리고 좋은 글감들을 생각해내서, 굳이 긴 문장들이 아니어도 잊지 않고 글을 써 내려가는 계정 주인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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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참여한 시집 구매링크로 이어집니다.

평소 시에 관심이 많은 분들께 작가의 이름으로 추천할 수 있는 책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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