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말로, 소위 '반 오십'이라고 하는 나이를 하고도 딱 1년을 더 먹었다. 부모님에게 있어서는 번데기 앞, 주름잡는 소리일 수도 있겠으나 번데기의 눈가 주름 정도에는 빗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는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19살의 고3을 훨씬 전에 지나고, 지나버리면 세상이 끝나버릴 것만 같았던 20살의 시절도 지나 어느덧 20대 후반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나도 나이 들어가나 보다!
내가 어릴 적, 부모님을 비롯하여 이모와 삼촌 그리고 할머니로부터 종종 들었던, 종종이라고 이야기하기에는 귀에 딱지가 앉힐 정도로 많이 들었던 말이다. 그때까지도 나는 이것이 온전히 그들의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 도대체 나이 들어간다는 느낌은 무슨 느낌인 것인지, 그토록 궁금해했지만 알턱이 없었다. 그런데 그 말을 지금에야 조금씩 알 것 같다. 그저 '한 해가 바뀌면 그래서 설 날을 맞이하면 나이 드는 거겠지' 혹은 '생일이 지나면 나이 드는 거겠지'라고만 생각했던 과거의 내가 새삼 부끄러웠다.
요즘 들어 '아, 내가 나이 들어가는구나!'라는 생각이 스쳤던 순간들이 몇 개 있다. 나도 몰랐던 내 무의식 속 취향의 변화가 온몸으로 그 변화를 드러내고 있었다.
콩나물 해장국
들어있는 게 얼마 없어서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모르겠다던 콩나물 해장국을, 들어있는 게 얼마 없어서 가장 시원하다며 말할 수 있게 된 것
소주
소주는 너무 써서 곧 죽어도 단독으로는 못 마시겠다고 말하며 도대체 어느 누가 소주가 달다고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는데 거짓말처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누군가, 소주가 아직 쓰다면 인생이 덜 힘든 것이라 말했다. 그렇다면 나의 인생은 그만큼 힘들어진 것일까?)
따뜻한 아메리카노 - 줄여서 따-아
겨울에도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도대체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모르겠다며 줄곧 혀를 내둘러오다가
언젠가 겨울부터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즐길 수 있게 된 것
꽃
언젠가 시들어버리는 꽃이 뭐가 좋은 지 모르겠다며, 선물이라면 꽃 보다 음식이 최고라고 말을 했는데, 꽃집을 지날 때마다 눈에 밟히는 꽃들에 시선을 거두기가 힘들어지게 된 것. 줄곧 어르신들의 취미라고만 생각했던 봄날의 꽃 사진 촬영을, 이제는 내가 하고 있는 것. 날 좋은 날, 길을 가다 마주치는 한 송이의 꽃만 있어도 어느새 카메라를 찾아 찍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 외
자식의 입장보다 부모님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되는 경우의 수가 더 많아진 것
과일 특유의 새콤함이 싫어서 손이 잘 안 가던 과일들에
어떤 날은 초콜릿보다도 더 손이 가게 되는 것
화가 날 수 있는 여러 가지의 상황에 태연하게 반응하며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게 된 것
남들이 뭐라 해도 나의 취향만큼은 일생동안 변하지 않을 것이라 호언장담을 해 왔건만, 그러기에는 태도 변화가 너무 분명하여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나이 들어가는가 보다. 취향의 변화가 부쩍 많이 느껴질 때면, 가끔씩 낯설기도 하다.
그동안 브런치에 올렸던 산문들 외에 시에도 관심이 많았던 터라, 기회가 닿아 공저시집 출판에 참여했습니다! 제목은 <그런 마음이 날 눈물짓게 해> 이며 온라인 서점은 물론 오프라인 서점의 신간시집 매대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6명의 작가 모두 사랑과 삶에 대한 각자의 태도 및 경험에 기반을 두어 모든 문장에 진심을 꾹꾹 눌러 완성한 시입니다.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적어도 후회하시지는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런 마음이 날 눈물짓게 해>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