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원인 모를 향수병의 근원을 좇아서
평소에 지인들로부터 취향이 독특하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특히 냄새에 관해서 그렇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두 종류의 냄새가 있다. 비 오기 전을 암시하는 공기 냄새. 특히 땅에서부터 풍기는 축축하고 약간 습한 흙의 냄새와 비슷하기는 한데 지하실 특유의 지하 냄새. 나는 이 두 가지로부터 비롯되는 공통적인 퀴퀴함이 좋다.
봄이라고 하기에는 살짝 더운, 4월에서 5월로 넘어가는 그 시기 저녁 무렵에 불어오는 바람 냄새와 가을이라고 하기에는 명백히 쌀쌀한, 10월에서 11월로 넘어가는 그 시기 저녁 무렵 불어오는 바람 냄새도 좋다. 전자는 가벼우면서 무거운 공기의 공존이 좋고 후자는 새삼 차가워진 공기의 냄새 그 자체가 매우 설레기 때문이다. 어쩌면 저녁과 밤이 지니는 낭만성 때문일 수도 있겠고 또 어쩌면 내가 추억하는 행복한 장면들의 주된 시간대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가장 분명한 것은 이 냄새들이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얼마 전에 알았는데, `프루스트 현상`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 우연히 맡게 된 냄새를 통해서 과거의 기억들을 연상하고 기억해내는 현상이다. 가끔 위와 같은 냄새들이 나를 스쳐 갈 때면 의식하기도 전에 나의 역사들이 펼쳐져 있다. 마치 기억의 파노라마처럼 말이다.
어떤 날은 6살의 내가 엄마 손 잡고 거닐던 외할머니 댁 근처의 골목 시장이 그려지고 어떤 날은 11살의 내가 고모와 손 잡고서 마트 가던 길 풍경이 그려지며 또 어떤 날은 22살의 인생이 힘들었던 내가 정처 없이 넋을 놓고 있었던 저녁 놀이터 풍경이 그려진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기억하고 있는 연상 반응의 메커니즘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특정 공기와 냄새가 아니였다면 기억해내지 못했을 이미지들을 결국에는 끄집어 내고야 마는 것.
마치 우연히 청소를 하다가 평소에는 어디 뒀는지도 몰랐던 케케묵은 사진첩을 발견하고 그것을 집으려던 찰나에 툭 하고 튀어나온 아주 오래된 가족사진 한 장을 발견하는 일과 같다. 이러한 순간이 시발점 되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될 때면, 알 수도 없고 구체적이지도 않은 향수병에 빠지기도 한다. 한여름 밤의 꿈을 꾸고 일어난 듯한 그런 아쉬움과 몽롱함에 휩싸인 채 말이다.
현재의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소한 냄새들이 과거 어느 날의 내가 '이미'스쳐 갔던 것들이라 생각하면 이것만큼 기분이 오묘해지는 것도 없다. 어찌됐건 모든 것은 다름아닌 내가 지나온 기억의 냄새이자 현재 내 삶의 근간이 되는 냄새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동시에 가끔씩 아주 힘들어지곤 하는 나의 일상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냄새이기도 하다. 때문에, 삶은 아직 낭만적이라 말할 수 있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