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들으면 슬픈 노래

어떠 노래는 시간을 거스른다

내가 어렸을 때 엄마와 고모는 ‘섬 집 아기’라는 노래를 불러주곤 하셨다. 오늘날에도 자장가로 통용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그 노래를 나는 참 싫어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서웠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들려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 잠이 듭니다.


'아무리 굴이 중요하다고 해도

어떻게 자신의 아기를 혼자 두고 가지?'


'바다의 노래가 무서워서 아기가 울면 어떡하지?'


당시에 많이 어렸던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아기에게 감정 이입했다. 머릿속에는 아기에 대한 우려들로 가득 찰 뿐이었고 그렇게, 제발 좀 자라고 불러주시던 어른들의 자장가에 매번 제대로 응하지 못했다. 잠에 들기는커녕 나름의 심란함으로 가득 차고는 했었다.

혼자 잠들기에 충분한 나이가 된 지금은 무섭지 않으냐고 한다면 그것도 아니다. 이 노래의 가사와 특유의 분위기는 유년시절의 긴장감을 금방이라도 불러와 오늘밤도 날 잠 못 들게 할지 모른다. 여전히 무섭기는 하다. 이제는 실체도 알 수 없는 적막함마저 느껴져 사뭇 쓸쓸하기도 하다.


럼에도, 변화라면 변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어렸을 땐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엄마의 상황을 이제서야 생각해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혹은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의 방증이 아닐까 한다.


이 노래를 듣던 과거의 나는 순전히 그를 혼자 내버려두고 간 엄마를 원망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아기를 혼자 두고서도 굴을 따러 갈 수밖에 없었던 엄마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나 할까. 아이의 곁을 지키던 유일한 존재인 바다를 뒤로한 채 빈 집에 아기를 혼자 두고 섬그늘로 행해야만 했던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에 대해서 말이다.



세상에 어떤 엄마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신의 아기를 혼자 두고 마음 편하게 외출을 할 수 있을까. 다만 외출하지 않으면, 굴을 따러 가지 않으면 안됐기 때문에 엄마는 어쩔 수 없었다. 어쩌면 바다는 그런 엄마의 울음과 미련을 대신 삼켜주며 있는 힘껏 아이를 지켜냈을 것이다.


이것은 마치 과거에 봤을 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영화 속 주인공을 성인이 되고 나서 다시 본 영화를 통해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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