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생이 있다면, 연어를 꿈꿔본다.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ㅡ인간으로서 현생에 대해 회의하면서 다음 생이 주어진다면, 과연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에 대한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이었다.


아니면 돌로 태어날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바위가 될까?

비가 오건, 눈이 오건, 발이 묵일 새 없이 허공을 떠 돌 수 있는 한 마리의 새가 될까?

2층짜리 계단으로 이어진 대저택에 사는 패리스 힐튼의 강아지가 될까?

아니면 그 누구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동물의 왕, 호랑이가 될까?
(개인적으로 사자보다는 호랑이가 더 위엄 있어 보였기 때문. 지금은 우위를 잘 못 정하겠다.)


마치, '1억이 생기면 가장 먼저 뭘 할래?'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1억이 생긴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릴없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누구도, 아무도 내게 다음 생을 살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나는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르는 내 다음 생에 대해서까지 현생의 내가 책임지고 결정해 놓아야 하는 의무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음 생이 있다면~'으로 시작되는 그 질문이 나에게는 일종의 철학적인 물음과도 같아 보여서 누군가에게, 나는 이미 나의 다음 생의 인생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찰을 해 보았다고 비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이유가 어찌 됐건, 틈만 나면 생각을 했던 끝에 나는 연어로 태어나고 싶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실 그 이전부터 비슷한 생각을 하긴 했었다.




우선 연어란 회를 먹을 줄 몰라서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 나에게, '이렇게 맛있는 회가 있을 수도 있구나!'라는 깨달음을 전해 준 생선이다. 입에 넣자마자 녹아버리는 부드러운 식감에 세상 황홀해하며 다 먹어 치우곤 했던 연어.


이것이 한때, 내가 연어가 되고 싶어 하는 1차원 적인 이유였다. 연어란 뱃살마저도 쓸모 있게 내어주며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내어주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앞세워서 늘 장난 삼아서 연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한동안은 '이렇게 뱃살이 많을 거, 차라리 연어로 태어날걸'이라는 문구가 유행하기도 했을 만큼 나 포함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한 번씩은 했었을 다짐일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와 같은 이유가 연어가 되고자 하는 전부는 아니다.



꽤 오래전 스쳐가며 들었던 연어의 삶에 대해 인상 깊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저 그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하건대 연어의 삶은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단한 것이었다.


연어는 대게 민물의 상류에서 태어나 젊은 날의 대부분을 바다로 이동해서 보낸다. 여느 물고기들이 그러하듯이 알을 낳고 번식시키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들의 삶 어딘가에는 비범함과 특별함이 내재하고 있다. 알을 품고 낳아야 할 무렵이 되면 이들은 분주히도 자신들이 태어났던 곳으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 고향에서 알을 낳고자 하는 목적의식이 매우 강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일종의 '회귀본능'이라고 할 수 있는 이 행동을 특별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고향을 찾아가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아서이다. 쉽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매우 힘들고 어렵다. 역류하는 물길을 헤엄쳐 가야 하는 것은 물론 잡아먹히고 상처 입을 것들을 각오해야만 하는 여정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렇기에 고향에 도착을 하고 무사히 알을 낳을 수 있는 확률 또한 희박하다. 이러한 사실 또한 그들은 본능적으로 느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감행한다. 확률이 낮다고 해서 혹은 위험하다고 해서 그들의 목적의식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살점이 찢겨 나가는 고통을 겪으며 온몸으로 자신들의 삶을 받아들인다. 오로지 번식을 위한 회귀본능으로 인해서 말이다.


물론 지극히 인간의 관점에서 보자면 온전히 번식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목숨을 감수하고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이러한 행위의 중심에는 본능이 놓여있다는 점에서 이해하기 힘들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순전히 맹목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위험하기도 하다.


그러나 목적의식의 중심에 본능이 놓여있다 한들 목숨을 담보로 하여 운명을 거스르는 연어의 행위는 그 자체로 나에게 '센세이션'이었다. 무모함을 알면서도, 몸을 던질 수 있는 용기. 이것은 지난날 삶을 대해왔던 나의 태도를 돌이켜볼 수 있게 했다. 동기부여라고 할 수도 있겠다.



어떤 때는 무모하다가 또 어떤 때는 겁이 많은 사람.

횟수로 따지자면 후자에 더 경험이 많은 나는, 내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됨으로써 불러올 어떤 파장과 위험요소들을 줄곧 두려워해 왔다. 그렇다. 책임감의 문제였다.


과거, 나의 초상이랄까.
과거, 나의 초상이랄까

그래서 때로는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도무지 바뀔 것 같지 않은 어떤 일들을 인지했었음에도 불구하고 놓쳐야 했던 것들이 많았고 꽤나 많은 날들을 후회와 자기비판 혹은 비난, 자책 등으로 보낼 때도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은 자기 확신의 결어로부터 오는 지극히 방어적인 감정이었다. 어떤 일에 대해서 에너지를 쏟고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한 개인으로 하여금 굉장한 책임의식을 동반하게 한다. 그것이 물리적인 방식이던 정신적인 방식이든 간에 말이다.


나는 이러한 책임의 무게를 견딜 자신이 없었다. 어쩌면 책임 그 자체보다도 내가 생각했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을 때 마주하게 되는 갈등적인 상황이 두려워서 애초에 무게를 가늠해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와 같은 까닭에 과거엔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던 연어의 일대기가 시간이 지날수록 유난히 먹먹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져서라도 이루고 싶은 혹은 이뤄야만 하는 무언가를 기꺼이 좇는 모습은 어쩌면 '생을 살아낸다'라는 말에 가까운 것 같다. '살아간다'라는 말과 비교하자면 왠지 모르게 더 많은 역경과 감내를 통한 성숙의 메커니즘을 내재하고 있다.


최근에 와서 내가 좋아하게 된 말이기도 하다.

생을 살아낸다는 것은 힘들 것 알면서도, 상처 받을 것 알면서도 혹은 상처 받을지도 모르겠다는 추측을 하면서도 직면해버리고 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라는 말처럼 때로는 두려움보다도 더 중요한 목적의식과 기대에 기꺼이 몸을 던져볼 필요가 있음을 그리고 이 모든 과정 또한 언젠가 하나의 과거가 되어 담담해질 수 있음을 늘 기억하고자 한다.


진정으로 책임질 줄 아는 사람만이 자신의 삶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브런치에 올렸던 산문들 외에 시에도 관심이 많았던 터라, 기회가 닿아 공저시집 출판에 참여했습니다! 제목은 <그런 마음이 날 눈물짓게 해> 이며 온라인 서점은 물론 오프라인 서점의 신간시집 매대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6명의 작가 모두 사랑과 삶에 대한 각자의 태도 및 경험에 기반을 두어 모든 문장에 진심을 꾹꾹 눌러 완성한 시입니다.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적어도 후회하시지는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


평소에 시에 관심이 많으셧던 분들!

<그런 마음이 날 눈물짓게 해>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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