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한국사회에 레트로 감성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 있다. 글을 쓰고 있는 나는 해당되지 않지만 딱 나의 부모님 세대의 언저리 혹은 그들의 아래 세대를 사로잡았던 드라마. 총 3번의 시리즈마다 각각의 히트를 쳤던 신원호 PD의 '응답하라' 시리즈이다.
그나마 가장 최근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응답하라 1988' 이전에는 '응답하라 1994'가, 그 이전에는 '응답하라 1997'이 있었다. 보통 내 주변과 온라인 상의 반응들을 보면 개인의 포인트에 따라 각자 재미있게 본 시리즈가 모두 다 달랐다.
그 가운데에서 나는 '응답하라 1997'을 압도적으로 좋아했다. 이것도 일종의 초두효과라면 초두효과일까 아니면 내가 좋아하던 연예인 서인국이 나와서 그랬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나 분명했던 것은 극 중에서 HOT를 좋아하다 못해 그들의 존재 앞에 죽고 못살던 여고생, 성시원(정은지)의 모습에 '강력한' 동질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동질감은 6년이 지난 지금까지 응답하라 1997에 대한 나의 애정이 더 나아가 깊은 여운으로 남을 수 있게 한 강력한 계기이도 하다.
'팬'(Fan) 혹은 '빠순이'
극 중 HOT 공식 빠순이 '성시원'(정은지)
극 중 HOT 공식 빠순이 '성시원'(정은지)
사실 나도 만만치 않은 '빠순이'의 역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공방을 뛰며 따라다닌 적은 없었다. 다른 차원에서 격하게 응원했던 류의 빠순이.)
현재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도 나와 있는 내용에 따르면 빠순이의 정의는 이러하다.
빠순이: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등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따라다니는 극성팬 중 여자를 속되게 이르는 말.
문장 중간중간 보이는 단어 몇 가지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어찌 됐건 팬으로서 진득하고 열성적이며 순수한 마음을 강조하고자 가져온 개념이다.
실제로 요즘에는 부정적인 개념보다는 대상 불문하고 그를 향한 '열혈 한 팬심'을 드러내기 위해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우선 필자 또한 연예인에 대한 지나친 열망 및 집착을 포함한 비도덕적인 팬심은 명백히 잘못되었다고 바라보는 입장이다.) 최근에 '처돌이'이라는 새로운 키워드 등장이 빠순이를 대신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말이다.
현재 26살인 나의 빠순이 역사는 약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교 때가 벌써 14년 전인 나이가 되었다니.. 회상을 해보자니 문득 현타가 왔다. 아무튼 2005년에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참고로 나의 초년기였던 2000년대가 얼마나 대단하고 힙했던 시기였냐하면 다음과 같다.
'풍선 색'으로 대표되던 팬덤
'풍선 색'으로 대표되던 팬덤
2003년 12월 동방신기 데뷔 2005년 11월 슈퍼주니어 데뷔 2006년 8월 빅뱅 데뷔 2008년 5월 샤이니 데뷔 2008년 9월 투피엠 데뷔 2009년 비스트 데뷔
물론 2000년대 생이 현재 대학교 1학년을 지내고 있는 오늘날, 이들에게는 지금의 나에게 '젝스키스' 혹은 'HOT'의 느낌일 것이다. 그러나 나의 2000대에 있어서 소위 '레전드'로 칭할 수 있는 이들의 목록이다. 정말 어마어마했다. 그중에서도 동반신기, 슈퍼주니어, 빅뱅은 당시 문화의 선구주자였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90년대 생이라면 모두가 박수를 치며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나의 친구들만 해도, 이들 가운데 한 명은 '반드시' 그들의 오빠였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오늘날의 사회 논란에 기여하고 있는 이들이 몇 명 속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 볼 때마다 유감이다.
그래서 이들 가운데 나의 '오빠'는 누구였냐고 한다면, 없다.
열에 아홉은 모두 지극히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인기를 누린 이들을 좋아했지만 나는 그 팬덤 문화의 바운더리에 있던 사람이었다. 당시의 내 또래들이 나의 오빠에 대해 전해 들을 때면 하나 같이 '잉?????' 하고 반문을 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저 취향이 다른 것뿐인데 주류문화에 편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질책하던 친구들이 너무했던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때는 그런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어느 순간 어린 나의 눈에 들어와서 '팬'으로서 초석을 다지게 해 준 나의 첫 연예인이자 오빠들이 그저 좋았을 뿐이다. 그것은 빠순이로서 나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명확한 계기도 없이 '훅!'하고 들어와서 나의 초년기는 물론 중년기까지 풍요롭게 해주고 있는 내 인생의 '오빠'들은 지금까지 조금씩 변화해 왔다.
따라서 나는 현재 진행 중인 빠순이다.
나의 첫 '오빠'는 누구였는지, 그들은 어떤 사건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 변화해 왔는지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 이어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써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