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이런 우정도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나를 손가락질한다고 해도 믿어주는 한 명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성공한 삶이라고 일컫는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가기도 한다. 나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다. 햇수로 12년이 되어가는 친구.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가장 친하고 오래된 사이가 됐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보통 '친한 친구'라 하면 교집합이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보다 큰 영역을 공유하는 개념인데 나와 친구와는 교집합을 제외한 나머지의 영역이 더 크기 때문이다. 즉 비슷한 구석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이런 거다. 친구는 워낙에 입이 짧고 먹는 것에 흥미가 없어서 크게 좋아하는 음식도 없다. 그러나 나는 입이 짧은 적이 없다 못해 길기까지 한 사람이자 좋아하는 음식은 어찌나 많은지, 자면서도 먹는 것을 생각하면서 자는 사람이다. 또, 나는 길거리에 지나가는 개만 보면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인 반면에 친구는 지나가는 고양이만 보면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나는 고양이를 싫어하고 친구는 개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다만 개와 고양이에 관한 관심사가 취향의 호불호를 나누는 데 있어 대표적이지 않는가?)
다행이라고도 할 수 있는 차이점 중에 하나는 이상형도 다르다는 것이다. 친구가 말하길 자기는 보통 똘망똘망한 이미지의 남자('이상윤' 배우)를 좋아하는 반면 나는 눈이 약간 풀려 있고 나른한 이미지의 남자('하정우'배우와 '박정민'배우)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다. 생각도 못했었는데 그러고 보니까 대체로 맞는 것 같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우리가 극-대노하면서 크게 싸웠던 기억이 거의 없다. 아마도 그건 8할이 서로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 때문일 것이다. 노력이라 하면 여러 가지를 담고 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이해하는 것, 더 나아가 존중해주는 것. 이 모든 것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무척 힘든 일이다.
성격적인 면에 있어서 나는 꽤나 덜렁거리는 사람이다. 여행을 가도 하루에 하나씩은 꼭 잃어버려야만 '나다움'을 잃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곤 하니까. 그런 나를 친구는 가장 오랜 시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다. 이말은 곧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친구에게 끼쳤던 민폐들이 하루 이틀 얘기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친구는 개의치 않고 내게 필요한 것들을 엄마만큼이나 잘 챙겨줬다. 심지어 스스로도 미처 챙기지 못했던 부분들까지 날 신경써줬고 그렇게 10년동안의 나와 함께 했다. 늘 " 천천히 생각해도 괜찮아"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반면, 성격적인 면에 있어 친구는 다소 예민한 성격의 사람이다. 특히 낯선 사람들, 맞춤법, 도덕적인 것, 음식 등에 예민하며 이것들의 변수에 따라서 기분의 높낮이 정도가 달라진다.(친구는 '예민한 게 아니라 섬세한 것입니다'라는 책을 추천하며 자기는 섬세한 것 뿐이라고 말한다.) 그럴 때면 대체로 모든 것에 무딘 내가 조금 맞추면 그만이었다. 이것으로 친구가 편안해지면 그걸로 나는 충분하니까. 나에게 중요한 것은 친구의 '예민함'이 아니라 예민한 성격의 '친구'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성격 또한 그녀인 것이며 그런 사람이 내 친구일 뿐이다.
상대방이 아무리 큰 약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장점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친구다. 마음에 안 들어서, 나와 맞지 않아서 쉽게 손 놓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않는 대로 나와 맞지 않으면 않는 대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때로는 바꿔 나가기도 하는 것이 친구인 것 같다. 서로의 모서리를 깎아 기어이 둥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서리에 손 내밀어 잡아줄 수 있는 그런 사람 말이다.
며칠 전 친구와 만나 맥주 한잔을 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살아 큰 명분이 없어도 자주 보고는 했지만 시간다운 시간을 내서 맥주를 마시는 것은 꽤 오랜만이었다.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눴다. 물론 1분에 한 번꼴로 주제가 훅훅 바뀌기는 했지만 '아무말대잔치'면 어떤가. 내 앞에 갓 나온 크림 생맥주와 감자튀김 그리고 소중한 친구의 삼박자가 더할 나위없이 충분했다.
두 잔의 맥주에 금방 배가 부른 우리는 근처 공원으로 이동하고자 마음먹었다. 그리고는 간단한 먹을거리를 사러 편의점에 들렀는데 무심코 눈에 들어온 민트초코아이스크림 바 두 종류를 두고 '어느 것이 보다 합리적인 맛인가?'를 논하며 더 진한 민트 초코의 맛을 판별하는 데에 15분을 썼다. 결국에는 고군분투하던 두 가지를 샀지만 말이다. 사면서도 '우리가 이렇게 바보인 사람들인가?'하는 찝찝함은 떨쳐낼 수가 없었으나 서로의 민트 초코에 대한 맛을 논하면서 공원으로 갔다.
아무래도 입이 있어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하기 때문이 입이 있는 모양이었다. 방금 전까지도 그렇게 많은 수다를 떨었던 우리인데 밤 11시가 되었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대화의 막을 내릴 수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지극히 소소하고 평범한 우리의 술자리 루틴이었다. 친구와 함께 하는 것에 있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별거 아닌 장소에서 별거 아닌 주제들로 별거 아닌 이야기 꽃을 피우는 것이다. 우리가 가장 잘하는 것이기도 하다.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 앞으로의 이야기들을 함께 써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가장 가까이에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행복한 일이다.
나의 지난 북 토크를 축하하며 당시에 친구가 건네준 꽃과 쪽지의 마지막에는 이런 말이 써져 있었다.
"어떤 길을 가든 응원해주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그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지지 않을까?
내가 그렇게 항상 너의 곁에서 응원함을 잊지 마"
상대방이 슬플 때 위로해 주는 것은 생각보다 쉽다. 그러나 행복한 일이 있을 때 진심으로 축하해주기는 힘들다. 내가 슬플 때는 물론이거니와 행복한 일이 있을 때마다 친구는 단 한 번도 빠짐없이 자신의 일처럼 축하하고 기뻐해 줬다. 그렇기에 나 또한 그녀가 어디에서 어떤 길을 가게 되던지 이유와 배경을 따져 묻기보다는 응원과 지지를 먼저 보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우리 둘 다 어디서 뭘 하건 자신의 행복함을 제1원칙으로 할 수 있는 현명한 사람이자 현명한 친구가 되었으면 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