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라는 실체와 정면으로 마주해버린 그 순간
"언니가 먼저 시작한 거잖아~!! 진짜 짜증 나"
"어쩌라고~~ 그래서 어쩌라고~~ 메롱"
언뜻 보면 흡사 초등학생 자매의 말싸움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건 현재 26살의 나와 4살 차이인, 22살 여동생의 대화다. 그것도 싸움이 아니라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우리 둘의 '대화'. 언제부터인가 말싸움과 그렇지 않은 것의 경계가 모호해진 우리는 말싸움을 하듯 대화를 하고 대화를 하듯 말싸움을 한다. 이 대화에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라는 우리 둘의 암묵적인 동의 및 친밀감이 내재된다.
그러나 딱 한 사람, 우리 엄마는 그렇지 않다. 가장 오랜 시간 우리의 곁을 함께 한 사람으로서 이제는 익숙해질 법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우리만의 대화를 여전히 싫어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러한 대화가 싸움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정작 우리는 아무렇지 않은데 엄마만 유난이라고 덧붙이며 엄마를 안심시키는 동시에 또 장난 섞인 대화로 넘어가곤 했다.
그런데 그 날따라 뭔가 이상했다.
뭐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으나 그저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라고 넘겨버리기에는 이상하리만큼 분위기가 무거웠다. 평소에는 1도 발달하지 못한 나의 '촉'이란 것은 이상하게도 그날 유난스러웠다. 우리의 대화가 끝난 지 약 20분이 지나도 엄마는 아무런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등을 돌리고 있는 엄마의 주변에는 얼핏 방에서만 보아도 어둡고 스산한 분위기마저 감도는 느낌이었다. 나는 곧장 엄마에게 가서 가볍게나마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야 할 것만 같은 '강력한' 느낌이 들었고 앞으로는 동생과 부드러운 대화를 해보겠다는 말을 전하려 거실로 나갔다.
"엄마 화났어~~?"
"엄마 왜 그래~~!!!
미안해, 앞으로는 조금 더 부드럽게 대화할게."
괜찮다면 진작에 대답이 나와야 할 엄마의 입은 요지부동이었다. 내가 다시 사죄의 말을 꺼내려던 순간 입을 꾹 닫고 서 있던 엄마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어정쩡하게 쪼그린 자세로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이내 울음 섞인 목소리를 토해냈다. 그것은 요 근래에 처음 들었던 아주 또렷하고 날카로운 목소리이자 처음 보았던 엄마의 묵직한 눈물이었다. 바닥에 주저앉기 일보 직전으로 '엉엉' 눈물을 흘리며 서럽게 울던 엄마의 모습이 너무 위태로워 보였다. 순간 나와 동생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엄마를 안아주는 것뿐이었고 그러면서 우리는 너무도 크고 무거운 죄책감에 휩싸였다.
'진작에 그만하라는 엄마 말을 들을걸'이라고 후회하며 연신 엄마의 등을 토닥였다. 사과를 한지 약 5분가량이 지났을까, 우리는 엄마를 주저앉게 한 또 다른 무언가가 있을까 싶어서 그 이유를 물어봤다. 그러자 엄마는 아까보다는 약간 진정이 된 얼굴로 대답했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어.
정말 특별한 이유는 없어.
,
갑자기 막 몸에서 열이 났고
그게 화가 돼서 눈물이 쏟아진 것 같아.
갱년기에 무슨 구체적인 이유가 필요하겠어."
엄마의 대답을 들은 나는 머리가 띵했다. 그렇다. 50대 중반을 향해 가는 엄마는 이제 약 2년 차 갱년기에 접어들었다. 종종 엄마가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밖에는 선선한 바람이 불고 심지어 집에는 에어컨도 틀어져 있었음에도 엄마는 뜬금없이 덥다는 말을 자주 했다. 가끔씩은 내가 그렇게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엄마 답지 않게 예민하게 화를 낼 때도 있어서 서운했던 적도 몇 번 있다. 그때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내 머리를 스치면서 '아 우리 엄마, 지금 갱년기지.' 라는 생각을 상기시켰다.
아이들에게 '사춘기' 시절이 중요한 것처럼 부모님, 특히 여성들에게 많이 온다는 '갱년기' 또한 엄마에게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에 대해 좀처럼, 자주 신경 쓰지 못했다. 엄마는 비교적 괜찮은 줄로만 알았다. 괜찮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엄마니까. 이 얼마나 무지하고 철딱서니 없던 생각이었는가. 지금 생각해보면 '성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머리에서 나올 수 없는 것이었다.
언젠가 외할머니와 전화로 말다툼하며 힘들어하던 엄마의 모습과 그 상황이 무섭고 싫어서 방에 누워 혼자 숨죽이며 눈물 흘리던 때가 있었다. 엄마는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우는 것만큼은 어떻게 그렇게 귀신 같이 아는지, 내가 울던 평소와 마찬가지로 그날도 어김없이 방으로 찾아와서는 침대 옆의 휴지를 뽑아 속절없이 흐르던 내 눈물을 닦으며 안아주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나를 위로해주던 엄마였다.
"혹시 또 울었니?
울보도 아니고, 언제까지 그렇게 울 거야.
오늘 같은 날은 네가 엄마를 달래줘야지~"
그러나 이어지는 엄마의 말을 다 듣고 있자니 가까스로 멈추려고 했던 눈물이 확 틀어버린 수도꼭지처럼 터져 나왔다. 가슴이 그냥 '턱' 도 아니고 숨을 쉴 때마다 '턱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반박조차 할 수 없이 너무나 사실이었다. 돌이켜보면 엄마가 슬퍼하고 위로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나는 늘 위로받을 줄만 알았지, 엄마를 진심으로 위로해주지를 못했다. 그 사실이 화가 나는 동시에 속상했다. 내가 수많은 TV 속 슬픈 장면들을 보면서, 친구와 한바탕 다투고서, 아빠에게 서운해서, 동생이 군대를 가서(오히려 엄마는 울지 않았다.),집에서 맥주를 마시다 갑자기 울컥해서, 여러가지 이유로 울 때마다 엄마는 내 눈물의 역사를 기꺼이 함께 해줬다. 눈물과 콧물이 뒤섞인 휴지를 들고 안아주면서 말이다. 그러니까 그동안 나는 자식이라는 이유로 내 눈물을 위로받기에만 여념 없었던 것이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는 말을 늘 달고 살며 심지어는 인생의 모토로 삼고 살아가는 내가. 더 나아가 '큰딸'이라는 타이틀을 지닌 내가.
스스로에 대한 한심함이 목 바로 아래까지 차 올랐을 때 그제야 나는 결심했다. 이후로 엄마가 힘들거나 우는 일이 생긴다면 묵묵히 휴지 몇 장을 챙겨 엄마의 눈물을 닦아준 뒤 그저 안아주겠노라고. 내 26년 평생을 엄마가 그래 줬던 것처럼 말이다. 그 결심을 비로소 지금에서야 실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갑작스러웠던 엄마의 무너짐과 통곡에 당황스럽기는 했으나 한편으로는 다 내려놓고 시원하게 울어준 엄마가 너무너무 고마웠다. 엄마 또한 실컷 울고 나니, 오랜만에 기분이 정화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얼마 안 있다 우리들 방에 들어와 '고마웠다'라고 이야기했다. 그 말에 나는 더 고마웠다.
물론 이것으로 그동안 엄마에게 받았던 것들을 되갚았다고 말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역부족이다. 그녀에게 갚아야 할 빚들은 이 세상의 셈으로 불가능할 만큼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1000 정도는 갚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 이유 없이 화가 치밀어 눈물이 났다는 엄마의 말을 묵묵히 들으며 최선을 다해서 엄마를 안아주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내가 우는 일 없이 말이다. 비로소 이렇게 어른이 되어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마 앞으로는 엄마가 울지 않았던 시간들보다 울게 될 시간들이 많아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것은 곧 엄마가 나를 위로하는 시간보다 내가 엄마를 위로하게 될 시간들이 많아질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눈물은 굳건히 거둔 채, 하루의 몇 시간이고 엄마의 눈물을 위로해주는 데에 기꺼이 할애할 것이다. 엄마는 그저 아무 이유도 없이 그녀를 화나게 하는 갱년기의 형체가 흐려질 때까지 실컷 울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춘기 시절, 끝도 없이 방황하고 힘들어했던 나를 빠짐없이 들여다 봐주었던 엄마처럼 어떤 이유에서든 엄마가 흔들릴 때마다 그녀와 함께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