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으로 시작하던 말들

내가 좋아하게 된 단어에 숨은 진실


사람들은 저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단어들이 있다. 그게 하나든, 두 개든, 몇 개든, 수많은 문장들 중에서도 자기의 귀에 꽂히고 괜히 마음이 가는 그런 단어들 말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이를테면'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비슷한 의미로 '예를 들면', '가령' 이 있기는 하지만 유독 '이를테면'에 마음이 가는 이유가 있다면 그건 친한 오빠와 대화를 할 때면 그가 자주 언급하던 단어였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본인은 무언가를 설명해야 할 때, '예를 들면'이라는 단어를 줄곧 써왔고 그 때문에 같은 맥락에서의 '이를테면'은 나에게 생소한 단어였다. 그런데 같은 사람에게서, 같은 단어를 몇 년 동안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익숙해진 단어가 되었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뭐 특별한 애정을 가지게 된 계기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동안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렇게 생각을 하다 보니 문제는, 단어를 자주 들었던 것에 있는 게 아니라 단어를 자주 썼던 인물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글에 등장하는 친한 오빠라는 사람을 A라고 두자면, A는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친절할지언정 나에게는 마냥 친절하지 않은 사람이다. 무슨 말이냐하면, 그는 친한 사람일수록 덜 친절해지는 경향이 있고 나는 그 친한 사람 중 한 명에 속하기 때문에 덜 친절함을 경험하는 사람이라는 거다. 대체로 내가 하는 말의 8할은 그에게 하찮은 것이 되고, 그가 하는 말의 8할 또한 나에게 하찮은 것이 될 때가 빈번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A가 진심으로 친절하고 상냥해 보일 때가 있는데, 내가 질문한 것들에 관해 대답해줄 때다. 평소에 나는 생각만큼이나 궁금한 것들이 너무 많아 큰일인 사람인데, 이 궁금증들은 특히 친한 사람과 있을 때 더욱 두드러진다. 그들과 대화를 하면서 무의식적으로 떠오른 궁금증들을 우선 뱉고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A 또한 그들 중 한 명이었다는 말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일종의 '물음표 살인마' 같은 느낌도 없지 않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나란 사람의 이해력은, 넘쳐 나는 호기심을 따라가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에 간단한 답변으로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기가 힘들었다. 그럴 때면 '알긴 알겠는데,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어.. 뭐 대강 이런 건가?'라고 말을 하는데, 이때 그의 '이를테면' 이 등장하는 거다. 언제나 찰떡 같이 설명을 해줘도 개떡 같이 알아듣곤 하는 동생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주는 친한 오빠이자 선배의 노오오오력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아무튼 '이를테면'이라는 말에서부터 시작해 1에서 10까지의 설명을 해주는 A를 볼 때면 그냥 그 상황이 너무 고마웠다. 나와는 다르게 내가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듣는 사람이자 간결한 것을 좋아하는 그는, 설명을 해주면서도 설명하기 귀찮다며 화를 내기도 하고 욕을 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내가 궁금해하는 것들 끝까지 이해시켜주는 사람이었다.


늘 친절하고 상냥한 사람은 아니지만, 아니 늘 친절하고 상냥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를테면'을 중심으로 한 그의 이야기들이 나에게는 몇 배로 의미 있게 다가왔던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나에게 '이를테면' 은 단지 설명을 위해 존재하는 부사가 아니게 되어 버렸다. 왠지 모르게 가깝고 친절하게 느껴지는데 이건 아마도 문득, A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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