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서 받는 긍정의 에너지

그녀가 말했다. You deserve to be loved!라고.

지난 1월부터, 나는 전화 영어를 꾸준히 하고 있다. 나의 담당 선생님은 필리핀에 살고 있는 '루'이다. 나는 영어회화를 위해서 스피킹 학원을 다녀본 적은 있어도 전화 영어를 해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아니 거의 한 달이 다 되어갈 무렵에도 긴장감이 역력했다. 특히 전화라는 것이 가진 힘이라고 해야 할까, 목소리와 목소리의 교류를 통해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이 생각보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서도 카톡이나 메시지 같이 단순한 텍스트를 통해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는 것과 전화 상으로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는 데에는 작지만 아주 큰 차이가 있듯이 말이다. 바로 '감정'의 교류에 있어서 그러하다.


그렇게나 긴장감 역력하던 전화 영어를 5달 동안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루의 영향이 매우 크다. 처음 해보는 전화 영어에, 오랜만에 하는 스피킹에 머릿속이 하얘져서 줄곧 버벅거릴 때부터, 루는 늘 괜찮다는 듯 차분하게 나를 기다려주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지금도 변함없다. 그뿐만 아니라 습관적으로 등장하는 일종의 징징거림에 가까운 부정적인 문장들을 기꺼이 받아주며 응원해준다. '습관적'이라는 것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내 퍼스널리티의 일종으로 굳어져서 쉽게 의식하지 못했던 행동들이다.


나는 아주 부정적인 성향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긍정적일 수 있는 사람은 못 돼서 정해진 에너지가 고갈되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좋지 않은 생각들을 하곤 한다. 이것은 특히,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무의식적인 투정으로 드러난다. 이를 테면 'How are you?'라는 그녀의 질문에, 'It's not bad today' 라던가, 'I'm tired, because~' 혹은 'I'm nerverous, because' 등의 문장이 나의 주된 대답이었다. 결코 완전한 긍정의 문장은 나올 수 없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언제는, 나의 계획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뒤 'But, i am not sure' 혹은 'I worry about it'이라는 말을 자주 덧붙이곤 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덧붙임으로써 상대방에게는 그와 상반되는 긍정의 말을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자신이 없는데, 괜찮을까'라는 말이 사실은 '괜찮을 거야'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 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 말을, 루는 지금까지 꾸준하게 해주고 있다. (어쩌면 긍정주의자와는 거리가 먼 우리 엄마의 밑에서 길러진 영향력이 큰 것 같기도 하다.

엄마는 늘 아주 현실적인 조언들에 기초하기 때문. 가끔씩 힘이 빠질 때도 많다. 물론 지금은 적응이 되어 아무렇지 않지만, 아직까지 나는 맹목적인 응원만을 듣고 싶어하는 어린 자식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의 불확실한 생각들과 불안함이 내재된 문장의 끝에는 항상 그녀의 응원이 있었다. 그녀는 우리의 삶을 불확실하지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인생의 아름다움이라고 이야기하며 그 무엇보다 '나'가 우선순위에 놓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내가 중심에 있어야만 어떤 일에 크게 화나지도, 슬퍼하지도, 후회하지도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You deserve to be loved!'


이성보다는 감성이 지나치게 발달된 사람이라서 무엇이든 자주 슬퍼지려는 나에게, 그녀는 슬퍼지지 않을 수 있는 권리를 찾아주며 근원을 알 수 없는 에너지를 전달해준다. 눈에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지만 그 질감과 색감을 상상해보자면, 어쩐지 반듯하게 다듬어져 투명하고 찬란한 밝음을 지니고 있을 것만 같은 어떤 에너지를 말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1
이를테면 이런 것들.2
이를테면 이런 것들.3

사실 나는 그래 보이지 않지만 낯선 것에 대해 꽤나 경계를 많이 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SNS를 통해 형성되는 관계망이라던가 온라인 상에서 익명으로 진행되는 채팅이라던가 커뮤니티 등을 크게 선호하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과의 유선 상 전화나 메시지를 통해서 힘을 얻었다는 류의 글들을 보며 그것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진짜 가당한 일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목소리와 단어들이 때로는 얼굴을 아는 누군가보다 나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어쩌면 이것 또한 나의 '복'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원래도 인복이 없는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조금 더 확신하는 바이다.) 이러한 까닭에 나는 오늘도 전화 영어를 한다.


이제 곧 6개월이 다 되어가는 전화 영어를 하면서 영어 실력이 크게 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가끔씩 수업을 쉬고 싶을 때마다 혹은 영어를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나의 의지를 다시 돌아오게 하는 나의 선생님, 루가 있다는 것이다.





어느덧 그녀는 나의 인생 멘토까지 된 듯하다. 수업을 시작할 때마다 늘, 빠짐없이 'Happy Day!'라고 이야기해 주는 그녀 덕분에, 12시간은 행복하지 않았어도 남은 12시간은 반드시 행복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가끔씩은 전화를 시작하자마자 내가 먼저 'Happy Day!'를 외칠 수 있게 되었다.


새삼 누구와 함께 하는지, 누구와 대화를 하는지에 관한 부분은 인생에 있어서 생각보다 중요하구나라는 것을 깨닫는 요즘이다. 나도, 나에게 곁을 내주고 있는 나의 사람들에게 힘은 못 줘도 위로가 될 수 있는 사람만은 되고 싶다.


때로는 위로 그 자체가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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