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는 시간

꽃의 아름다움을 비로소 인정하기까지

지난 주말이었다.

이사 후, 한창 '베란다 꾸미기'에 빠진 엄마와 함께 어느 꽃 집에 들렀다. 그간 들여놓은 화분들이 꽤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안개꽃과 장미꽃이 섞인 다발을 만들어 가야겠다며 열심히도 구경하는 엄마였다.


꽃 집에는 우리 외에도 몇 명의 손님들이 더 있었다. 이 꽃의 이름은 뭐고, 저 꽃의 이름은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한 아주머니 손님과 여자친구에게 선물하려는지, 기대반 머쓱함반의 얼굴로 괜찮은 꽃다발의 조화를 묻는 한 남자 손님이 그러했다. 그들의 부름과 물음에 사장님은 꽃 냉장고에 보관되어 있는 여러가지 꽃들을 꺼내서 저마다 세상 예쁘게 포장해주기 바빴다.


그 손길의 끝에는 아무리 연습해도 어쩐지 내가 따라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전문적인 섬세함이 묻어있었다. 마음먹고 따라 해 보겠다고 노력해도 나 같은 곰손은 평생 따라잡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다른 차원의 섬세함이었다.


내게 있어 꽃은 참 신기한 존재였다. 한철 화려하게 펴 놓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맥없이 시들어버리고 마는 존재. 이토록 허무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같은 맥락에서 선물로써 꽃이 갖는 함의 또한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유독 꽃을 주고, 받고 싶어 하는지 말이다. 어차피 금세 시들어버리고 말 텐데 각종 영양분과 물을 투여하고 가꾸며 오랜 시간 정성을 들이는 행위 또한 나에게는 여전히 물음표로 남아있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었던 생각들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과거 나의 물음표들은 어떤 존재에 대한 나의 지나친 오만과 어리석음이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동안 내가 꽃을 좋게 보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다른 누군가에게 있어서는 꽃을 좋아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가 되고 있었던 것이다! 피어 있을 때만큼은 그 어느 미물과도 비교할 수 없이 화려하고 아름다우니까. 아직까지도 '미'를 지칭하는 단어로써 꽃이 가장 많이 비유되는 것만 보아도 이것이 갖는 함의가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다.


또, 사람들은 상대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꽃을 찾는다. 혹감사함과 존경을 표하기 위해서, 혹은 누군가의 마지막을 추모하기 위할 때도 그러하다. 어떻게 보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고 멋진 일들을 꽃이 전적으로 맡아하고 있는 것이다. 이따금씩 꽃은 주고받는 행위의 '매개체'가 되어 어떤 관계의 가치와 소중함을 드러내고 그 자체로 상징이 된다.


가장 예쁘고 싱그러울 때 열렬히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내고 미련 없이 져버리는 모습은 사뭇 용기 있게도 느껴진다. 어쩌면 이것은 꽃 스스로의 자부심으로부터 도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렇게 아무런 미련도 없이 시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도 꽃처럼만 살고 싶다. 있는 힘껏 예쁘고 건강하고 멋지게 살다가 내려놓을 때는 용기 있게 내려놓을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눈 앞에 놓인 순간들과 행복들을 함부로 재고 따지는 일 없이 말이다.


지금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꽃을 좋아하고 자주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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