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꽤 지나야만 보이는 것에 관하여
우리 아빠는 자상하지만 자상하지만은 않은 사람이다. 그가 하는 말과 표현은 마냥 자상하지 않지만 동반되는 행동만큼은 자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아빠는 대놓고 살가운 성격의 사람은 아닌 것이다. 요즘 말로 '츤데레'(평상시에는 퉁명스럽고 새침하게 상대방을 대하면서도 가끔 애정표현을 하면서 부끄러움을 는 성격)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나의 툴툴거리면서 잘해주는 기질 또한 아빠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옛날에는 이런 아빠에게 서운할 때가 많았다. 이상형을 말할 때면 늘 '대놓고 다정한 사람'이 최고라고 말하는 나는, 우리 아빠 또한 흔히 '딸바보'의 표본이라고 불리는 아빠들처럼 그저 있는 힘껏 자상한 사람이었으면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나이 먹어온 만큼이나 오랜시간을 지켜봐 온 아빠는 단지 조금 다른 사랑의 표현을 해 왔을 뿐, 하지 않은 말들의 총합보다 더 큰 가치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생각해보면 아빠는 분명 귀찮을 법한 일을 전혀 귀찮은 일이 아니라는 듯이 여겼다. 이를테면, 새 학기가 시작되었던 재작년 봄은 아침 수업이유독 많았던 학기였다. 우리 학교는 지하철로 가면 시간이 꽤 걸리지만 애석하게도 차를 이용하면 30분 만에 갈 수 있는 흑석동에 있는 까닭에평소 지하철을 타던 나는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나와야만 배차 시간에 맞춰 넉넉하게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나를, 아빠는 아침이 됐건, 점심이 됐건 시간이 될 때마다 태워다 주었다. 어떤 한 달은 일주일의 4번을 내내 등굣길에 함께 하기도 했다. 말이 30분이지, 오고 가는 시간을 합하면 아빠에게는 1시간 남짓 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아빠는 늘, 하나도 피곤한 일이 아니라는 듯 그리고 아무것도 문제 될 것 없다는 듯 나를 데려다주고 다시 돌아가곤 했다.
"오늘도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마시고 싶네~"
그 무렵 수업에 들어가기 전, 아빠와 사 먹었던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마카다미아 쿠키의 기억이 여전하다. 평소에 커피 특히 아이스커피라는 것을 막 즐겨 마시지 않는 아빠는, 이상하게도 학교에 동행할 때면 시원한 아메리카노가 마시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정확히 '현충원 국립묘지' 쪽을 지나 막 흑석동 '명수대 현대아파트'에 들어설 때쯤에 늘 하던 말이었다. 물론 아빠의 음료 취향이 변했는지도 모르는 문제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그 8할의 이유는 공부한다는 대학생의 신분을 앞세워 늘 피곤함을 내비추던 큰딸, 나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때마다 학교 정문 못 가 차를 세워두고는 근처 카페의 커피와 빵을 사서 함께 먹었다. 가끔 커피의 양이 지나치게 넉넉할 때면 첫 교시 수업이 다 끝날 때까지 마실 때도 있었다. 덕분에 나는 매일 가도, 매일이 고되고 힘들었던 아침 수업의 저항을 이겨내며 그 해 한 학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졸업을 코앞에 두어 전전긍긍하던 와중에도 커피와 빵 하나만으로 행복한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던 당시의 잔상들이, 어렴풋하지만 구체적인 것으로 남아있다. 사실은 커피와 빵 덕분이 아니라 자주 곁에 있어 줬던 아빠 덕분이었겠지만 말이다.
언뜻 보기에 아주 사소해서 너무나 당연하다고 느꼈던 아빠의 사람들이 지금에 와서 얼마나 깊고 튼튼한 나의 토대가 되었는지 누구보다 잘 안다. 내 기준에서 정의해 놓은 '이상적인 아빠'의 모습에 갇힌 채 정작 중요한 것을 바라보려고 하지 않았던 나의 태도가 얼마나 어리고 미성숙했는지, 지금에 와서는 너무나 잘 안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더하는 말과 망설임 없이 행동해 온 아빠의 모습 그 자체가 이미 그의 사랑을 전부드러내고 있었는데 말이다.
옛말에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이라고 했는데, 돌이켜 보면 괜히 오래 살아남은 속담이 아님을 느끼는 요즘이다. 듣기 좋은 말과 달콤한 말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할 수 있다. 하지만 행동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종의 희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군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당신을 위해 기꺼이 '행동'한다면, 그는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빠의 성격을 그대로 닮은 나 또한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으로 진심을 전할 수 있는 딸이 되어야겠다고 늘 생각한다. 앞으로는 쉽게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한마디의 말 따위에 연연하지 않고 상대방의 행동으로 진심과 애정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